한국에서 부촌의 형성은 크게 10년 정도를 주기로 이뤄지는 게 특징이다. 한국의 전통 부촌이라고 할 수 있는 강북의 성북동이나 한남동 등은 그 뿌리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렇게 집값이 비싼 타워팰리스에도 물이 샌다더라. 여름에는 창문을 열지 못해 더워서 살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여보, 그런 얘기 하지마. 없이 사는 티 나잖아.”결혼 3년차인 강남구 일원동 주민 강현우(34)씨와 김혜리(32)씨의 대화다. 강남구 일원동에 있는 단독주택에 전세를 들어 사는 이들은 아이들과 함께 저녁에 양재천 산책을 나올 때마다 타워팰리스를 쳐다보고는 이런 얘기를 한다.“우리는 언제쯤 저런 집에 살아보려나.”(현우씨)“걱정마, 우리도 열심히 벌면 타워팰리스는 아니더라도 강남에 100㎡짜리 아파트는 살 수 있을 거야.”(정은씨)부촌(富村)은 이처럼 이중적인 존재다. 전후 복구가 일단락되고 현대적인 형태의 주거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부자 동네’는 언제나 한편으로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다. 또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집값이 한참 오르던 지난 2004년 민주노총 등 일부 단체들은 타워팰리스 앞에서 빈부격차의 해소를 주장하며, 살풀이굿을 하는 퍼포먼스를 펼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저주의 굿판’에 대한 샐러리맨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1회성 이벤트로 집 못사는 서러움을 배설하기보다는 열심히 벌어서 저런 집을 한 채 마련하겠다’는 상식에 공감한 중산층들이 더 많아서였을 것이다.하지만 ‘경기침체로 집값이 좀처럼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 않는 요즘 같은 때 웬 부촌?’ ‘출산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주택이라는 자산이 투자 메리트를 상실해가고 있는데, 집 사는데 거액을 들이는 게 과연 현명한 일일까?’라는 의문도 많다.이 같은 일각의 의문에 대해 상당수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부자동네에 입성하고 싶은 서민들의 욕구는 강해지는 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집값이 급격히 올라 도저히 소득만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였을 때 샐러리맨들은 일찌감치 내집 마련을 포기하는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집값 안정기라면 사정은 다르다. ‘열심히 벌어 대출을 조금만 받으면 부촌입성은 언제든 가능하다’는 자신감, 또는 욕구가 생기게 마련이다.더 이상 부촌이라는 게 가격만 갖고는 차별화되지 않는 시대가 왔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집값만 갖고 차별화되기 어려운 요즘 같은 시대에는 동네주민들의 소득수준이라든가 교육 인프라, 그리고 주변 환경여건 등이 더욱 부각된다. ‘내 자식도 있는 집 애들과 같이 학교 보내고 싶다’는 매우 이기적인 욕망이 꿈틀거리는 한 부촌의 존재가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한국경제신문매거진의 월간 머니가 창간 1주년을 맞아 ‘한국의 부촌’을 다시 한번 조망해보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대체 대치동은 어쩌다가 부자동네가 됐을까’ ‘성북동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와 같은 원초적인 궁금증에 대한 서민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일은 결국 부자가 되고 싶은 서민들의 욕구를 일부나마 충족시켜주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부촌(富村)’을 규정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일정 규모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부자들이 한 군데 모여 산다는 점이다. 생활수준이나 사고방식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살기를 원하는 부자들의 특성을 감안할 때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부촌이 형성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유사한 현상이다. 미국 드라마를 통해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캘리포니아주 베버리 힐스, 영국의 첼시, 일본의 덴엔초후 등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부촌들이다. 1960년대 이후 단기간에 산업화를 이룬 우리나라의 경우 부촌이 시기별로 바뀌어 온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유행이 빠르게 바뀌는 한국의 특성상 대한민국 부촌의 뜨고 짐은 굉장히 다이내믹한 편”이라는 게 주택 전문가들의 설명이다.한국에서 부촌의 형성은 크게 10년 정도를 주기로 이뤄지는 게 특징이다. 한국의 전통 부촌이라고 할 수 있는 강북의 성북동이나 한남동 등은 그 뿌리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 현대차 LG 등 대기업 그룹 오너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있다.1970년대 들어선 강북의 동부이촌동과 여의도가 인기를 모았다. 이후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에는 압구정동, 그리고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는 대치·도곡동 일대가 부촌의 명성을 이어받았다.이들 부촌은 △신흥 갑부들이 몰려드는 시기에 집값이 단기 급등하다가 △가격 급등 현상이 진정되면 △비슷한 수준의 부(富)를 축적한 사람들 중심으로 동네 구성원이 고착되는 형태로 형성됐다.1990년대 후반 막강한 교육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부촌으로 떠오른 대치동 일대의 성장과정은 이 같은 부촌의 형성 패턴을 잘 보여준다. 이 동네가 처음 뜨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부터 말까지 시기에는 이곳 집값이 자녀교육을 위해 젊은 샐러리맨 부부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급등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후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집값이 부담스러운 수준에 이르게 되자 30∼40대 샐러리맨들의 신규 진입은 자연스럽게 중단됐다. 결국 2005년경을 지나면서 수십억 원대의 집값을 부담할 수 있는 순수한 부자들이 주로 이사해오면서 지금은 연 소득이 억대를 넘는 부자들 중심으로 주민구성 자체가 바뀌어 버린 상황이다.1984년부터 대치동 미도아파트에 살고 있는 K모씨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샐러리맨 등 중산층들도 이 동네에 많이 살았었는데,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집값 급등기를 거치면서 지금은 주민구성이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나 의사 등 전문직으로 완전히 바뀐 것 같다”고 전했다.1970년대와 1980년대를 대표하는 부촌인 동부이촌동이나 압구정동도 부촌의 형성과정은 이와 비슷했다. 이들 부촌은 초기 형성 단계를 지나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어 더 이상 서울의 집값 상승을 견인하지 못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부촌의 바통을 다른 동네에 넘겨주게 된다.주거와 관련된 부자들의 선호도는 지역뿐 아니라 주거 형태 부문에서도 지속적으로 바뀌어 왔다. 한국의 부촌은 지역적으로는 성북·한남동 등 도심지역→동부이촌동→압구정동→대치·도곡동 등으로 변해왔고, 부자들이 선호하는 주택의 유형은 단독주택→아파트→주상복합으로 변해왔다.집을 고를 때 고려하는 가치도 끊임없이 바뀌어왔다. 전통적인 부자들은 자신들만의 생활을 즐길 수 있는 프라이버시를 집을 고를 때의 최고 가치로 꼽았다. 때문에 아파트 등 공동주택보다는 단독주택을 더 선호했다. 자신을 알아보는 주변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는 도시생활의 편의성이라든가, 교육 인프라 등이 부자들이 동네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아왔다. 특히 해외유학 등 고등교육을 통해 부를 축적한 신흥부자들은 자녀들의 교육에 최우선순위를 두면서 교육이 집터를 잡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됐다.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 형성된 대치동이 한국을 대표하는 부촌으로 부상한 이후 아직까지는 부촌의 명성을 이어받을 만한 뚜렷한 후발주자가 나타나지는 않은 상황이다. 청담동 일대 빌라촌이라든가, 파크뷰로 대표되는 분당의 백궁·정자 주상복합타운, 일산의 정발산 단독주택촌 등이 지역을 대표하는 부촌으로 자리매김했지만, 규모 등의 측면에서 ‘최고’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는 모자라 보이는 게 사실이다.그렇다면 대치동의 뒤를 잇는 차세대 부촌은 어느 곳이 될까. 차세대 주자가 어느 곳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주택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망이 극도로 엇갈리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크게 네 가지 시나리오로 나뉜다.첫째는 한국의 부촌이 강북에서 시작해 경부고속도로를 축으로 남하해왔다는 점을 들어 판교·분당라인이 새로운 부촌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두 번째로는 올해부터 속속 입주에 들어가는 송파구 잠실동 일대 옛 주공아파트 재건축 아파트들이 부각될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세 번째로는 한강주변 압구정동과 양재천 주변 대치·도곡라인을 중심으로 강남의 명성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의견이 있고 마지막으로는 국제업무지구 개발이 예정된 용산 일대로 부촌의 축이 넘어갈 것이라는 견해도 눈에 띈다.고준석 신한은행 갤러리아팰리스 지점장은 “미래의 인기 주거유형이 무엇이 될지에 대해서도 전문가들 사이에 주상복합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쪽과 서울 근교의 전원주택들이 인기를 끌 것이라는 두 가지로 전망이 나뉜다”며 “어느 한 쪽 손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