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풍과 신세 한탄은 내용은 다르지만 친구 사이다. 삶의 허무감이 증가했을 때 나오는 현상들인 것. 스스로 요즘 허풍과 신세 한탄이 늘고 있다면 남자의 두 번째 사춘기가 찾아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치열하고 열심히 인생을 산 남성일수록 두 번째 사춘기의 성장통을 크게 앓기 쉬운 법. 그렇다면 어떤 삶의 전략이 필요할까.
[HEALING MESSAGE] 허풍과 신세 한탄 사이, 남자의 두 번째 사춘기
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거짓말을 할까. 영국에서 부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 연구 결과를 보면 남편이 더 거짓말을 많이 한다. 남편은 하루에 평균 6회, 반면에 여성은 하루 평균 3회로 남자보다 적다. 그러나 거짓말 강도는 아내가 세다. 남편의 거짓말은 어설퍼서 금방 탄로가 난다. 그러나 여성의 비밀은 정말 감추고 싶은 것들이기에 그만큼 철저하게 숨기는 경향을 가진다.

남녀가 거짓말을 하는 심리적 동기도 차이가 있다. 남자는 나를 잘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나를 근사하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 보게 하고픈 욕구 때문에 자신에 대해 과장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비해 여성은 내 마음을 공감 받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슬프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남자는 숨기고 멋진 척 하지만 여성은 작은 일을 더 과장해 자기가 매우 힘든 상황인 것처럼 포장을 한다. 다른 사람이 내 감정에 공감해 주기 바라기 때문이다. 남성은 자신의 강함을 드러내 세상을 지배하고 싶어 하고 여성은 자신의 약함을 보여 공감 받고 싶어 한다.


남자는 왜 스피드에 열광할까
한 주부의 사연인데 남편의 허풍에 관한 것이다. “‘내가 책임지고 꼭 행복하게 해줄게’란 말에 넘어가 26년을 살았는데 아직도 ‘인생 뭐 있어, 한 방이지’라고 이야기하는 남편의 허풍에 짜증만 납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술 먹고 와선 인생이 힘들고 잘 안 풀린다며 땅이 꺼져라 신세 한탄을 하니 이 또한 듣기 괴롭습니다. 제 남편, 갱년기가 온 것인가요?”

허풍의 긍정적 심리 효과를 생각해 본다면 자아 팽창(ego expansion)이다. 내 가치의 부피감, 즉 나에 대한 근사한 느낌이 풍선에 공기를 넣으면 팽창하듯 훅 늘어가는 것이다. 남자는 여성과 달리 내가 여전히 힘이 있고 강하다고 느낄 때 자신이 근사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정도의 허풍은 남자에겐 삶의 기본 필수품인 셈이다.

남자가 자동차의 제로백 0.1초 단축에 집착하는 것도 차와 나를 동일시해 자동차가 빠르고 강력한 엔진을 가지면 곧 내가 빠르고 강하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멋지고 빠른 차를 타고 달려가는 남자를 선망의 대상으로 쳐다보는 아름다운 여인의 영상은 자동차 광고의 ‘기본’이다. 즉 빠르고 강력한 차는 남자의 자아를 팽창시키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오래된 냉면집에 가 보면 머리가 하얀 어르신들이 수육에 막걸리 한 잔 하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많이 보는데, 제일 많이 들리는 단어가 바로 요즘 언론에 자주 나오는 정치가들의 이름이다. 다들 지금 권력자들과 친분이 두텁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어르신은 자기가 대통령을 거의 가르치며 키웠다고 이야기한다. ‘왕년에 내가 끝내줬다’라고 서로 끝없이 이야기한다. 그 냉면집에 가면 우리나라의 숨은(?) 권력자들을 언제든 만날 수 있다.

어르신들의 달콤한 술안주인 허풍은 허전하고 허무한 인생에 잠깐이나마 자기 기분을 좋게 해 주는 기능이 있다. 적당한 허풍은 남자에겐 삶의 긍정성을 증폭시킨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늘어나는 과도한 신세 한탄이 곁들여진 허풍은 아내도 힘들게 하지만 본인 스스로에게도 좋지 않다. 허풍과 신세 한탄은 내용은 다르지만 친구 사이다. 삶의 허무감이 증가했을 때 나오는 현상들이다. 스스로 요즘 허풍과 신세 한탄이 늘고 있다면 남자의 두 번째 사춘기가 찾아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춘기, 즉 정체성에 위기가 온 것이다. ‘이것이 내가 살아갈 삶의 방향이요 가치관이다’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달려 왔는데 이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다시 드는 것이다.


최고에서 최선으로 가치관을 튜닝하라
그렇다면 남자의 두 번째 사춘기에 어떤 삶의 전략이 유용할까? 가장 중요한 것이 역할 변화(role change)에 대한 유연한 수용이다. 뛰어난 구질과 체력으로 제1번의 선발 투수를 담당하던 선수도 시간이 지나면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체력은 줄어들었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짧은 시간에 결판을 내는 마무리 투수로 역할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선발과 마무리를 연결하는 불펜 투수로 중간계투를 담당해야 한다.

중간계투는 야구에서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중간계투 선수를 기억하는 관중은 별로 없다. 변화한 내 역할을 소중히 여길 수만 있다면 당사자는 강한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다. 역할 변화에 대한 유연한 수용성을 얻는 것이 두 번째 사춘기의 중요한 심리 발달 과제다. 최고에서 최선으로 가치관을 튜닝해야 하는 것이다.

치열하고 열심히 인생을 산 남성일수록 두 번째 사춘기의 성장통을 크게 앓기 쉽다. 상승 전략만으로 맹렬히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 기업의 인재개발원에 가서 강의할 때면 자주 접하게 되는 문구다. 인생에 대한 상승 전략이다. 평균 수명이 60세라면 상승 전략만으로 달려가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80세를 넘어 100세를 사는 것이 남의 일이 아닌 세상이다. 상승 전략만으론 한계가 있다.

인생의 후반부, 어떻게 부드럽고 안락하게 착륙할 것인가 하는 ‘하강 전략’이 중요하다. 하강 전략 즉 역할 변화에 대한 수용성을 기르는 데 좋은 방법이 자연과 문화를 즐기는 것이다. 자연과 문화 즐기기에 깊이 몰입하면 상처 받은 내 자존감에 힐링이 일어난다. 그 기전을 공통된 인간성(common humanity)으로 설명한다. 사람이 느끼는 통증은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가’ 하는 개인적 시각에서 증가한다. 그러나 자연과 문화에 담겨 있는 철학적 메시지, 즉 삶의 상승과 하강, 그 굴곡의 자연스러움에 대해 느끼게 되면 ‘아, 이 문제가 나만의 문제가 아닌 너의 문제, 우리의 문제, 그리고 인류의 문제구나’ 하는 여유로움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새롭게 변화된 나의 위치에 대해서도 부드럽게 수용하게 되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약해지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움의 결과’라고 삶의 해석이 바뀌면 자연스레 허풍과 신세 한탄도 줄어들지 않을까.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