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장과 신탁, 어느 쪽이 유리한가

2009년 6월 25일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세 명의 어린 자녀들을 남겨놓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가 유언장을 대신해 ‘마이클 잭슨 가족신탁(Michael Jackson family trust)’이라는 신탁계약서를 남겨 놓았다는 것이다. 잭슨의 사례를 통해 생전신탁에 대해 알아 본다.
[FAMILY BUSINESS CONSULTING] 마이클 잭슨의 유산 플랜서 배운다
가족신탁계약서란 유언을 대신해 유산을 분배하고 관리하는 방식에 관해 기술한 계약서를 뜻한다. 마이클 잭슨의 가족신탁계약서는 1995년 11월 1일 최초로 작성됐지만, 이후 전면 개정돼 사망 당시의 것은 2002년 3월 2일자로 최종 수정된 것이다. 가족신탁의 위탁자는 마이클 잭슨이며 계약서에는 수탁자와 수익자의 지위와 역할, 자산 배분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수탁자(trustee)
마이클 잭슨이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자신이 가족신탁의 위탁자인 동시에 수탁자가 되고, 사망을 하거나 불능의 상태가 되는 경우 그와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변호사와 회계사, 음악감독 등 세 사람이 공동 수탁자가 된다. 그리고 그들이 수탁자로 불능 상태가 되면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수탁자의 지위를 승계한다. 그러나 공동 수탁자들이 합의해 한 명 또는 그 이상을 수탁자로 지정할 권한이 있으므로 그들이 수탁자의 지위를 승계할 사람을 지정하면 은행은 수탁자에서 제외된다.


수익자(beneficiary)
마이클 잭슨 생전에 가족신탁에서 나오는 수익은 마이클 잭슨에게 귀속된다. 사망 시에는 제일 먼저 유산의 20%를 어린이 자선재단에 기부한다. 자선단체의 선정 방법은 어머니와 공동 수탁자들이 위원회를 구성해서 함께 협의, 지정한다.

어린이 자선재단에 기부한 20%와 상속세, 병원비, 장례비, 변호사비 등을 공제한 나머지 남은 유산의 50%는 어머니 캐서린 잭슨을 위해 ‘캐서린 잭슨 신탁(Katherine Jackson trust)’으로 분리해서 운영한다. 그리고 어머니를 수익자로 지정해 그녀가 평생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사망한 후에는 남은 재산을 자신의 자녀들 3명에게 동등하게 분배하도록 했다.

나머지 50%는 자신의 변호사와 음악감독이 공동 수탁자가 돼 ‘마이클 잭슨 자녀신탁(Michael Jackson children trust)’으로 분리하고 신탁 재산은 세 자녀에게 3분의 1씩 동등하게 분배한다. 하지만 자녀들은 21세가 돼야 신탁 자산의 운용 수익금을 전액 받을 수 있다. 그때 자녀들이 수익금만으로 적정 수준의 생활이 어렵다면 수탁자들이 협의해 원금의 일정 부분을 추가로 지원할 수 있다. 그리고 신탁 원본은 각 자녀의 30세 생일에 3분의 1, 35세 생일에 남은 잔액의 2분의 1, 그리고 40세 생일에 잔액 전부를 지급한다. 만약 30세 이전이라도 자녀들이 집을 사거나, 결혼을 하거나 또는 사업을 하기 위해 신탁 원금이 필요하다면, 공동 수탁자들이 신중하게 판단해 원금에서 일정 부분을 사전에 지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종적인 결정은 자녀들의 후원자인 어머니 캐서린 잭슨의 동의가 있어야 집행할 수 있다.

만약 마이클 잭슨의 사망 시 어머니와 자녀 또는 후손(손자 등)이 생존해 있지 않다면, 20%의 자선 재산 기부금을 제외한 나머지 신탁 재산은 조카 3명에게 균등하게 나누어 주고 그 지급 방식은 자녀들에게 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지급한다.


이상과 같이 마이클 잭슨은 자신이 사망하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반영해 사전에 철저하게 유산 계획을 수립했다. 그 덕분에 사망한 후에도 그가 남긴 재산은 자신이 지정한 방식과 스케줄에 따라 안전하게 운용, 관리되고 있다. 사실 가족신탁은 마이클 잭슨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다수 자산가들이 유산 계획에 활용하고 있다. 얼마 전 사망한 휘트니 휴스턴도 신탁을 통해 자신의 딸이 21세, 25세, 30세에 일정한 규모의 재산을 지급받도록 사전에 준비해 놓았고, 스티브 잡스도 사망 전 상당한 재산을 신탁에 이전하는 방식으로 가족들을 위한 유산 계획을 세워 놓았다. 생전신탁(living trust)의 한 방식인 가족신탁(family trust)은 가족 분쟁을 예방하고, 어린 자녀가 있는 경우 그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자산을 잘 보존해서 이전하는 데 가장 유용한 수단이다. 부모세대가 상속에 대한 자신의 뜻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사망해 상속분쟁이 끊이지 않는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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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장보다 신탁을 선호하는 이유
유언장과 생전신탁의 공통점은 사망 후 남겨진 가족들에게 재산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사전에 정해 놓는 데 있다. 하지만 두 방식은 작성 방법이나 운용 방식에 몇 가지 큰 차이가 있다.

첫째, 유언은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에 의한 방식으로 제한돼 있고 증인 등 엄격한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무효가 된다. 반면, 신탁은 위탁자와 수탁자 간 재산 운용에 관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서로 의사만 합치되면 법적으로 유효하다. 또한 유언의 내용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2명의 보증인이 필요하지만, 신탁은 기존 계약서에 대한 계약 변경만으로도 수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유언보다 간편하고 심리적 부담감도 낮다.

둘째, 유언은 한 세대의 수증자만 지정이 가능한 반면, 신탁은 여러 세대에 걸쳐 수익자를 지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미국이나 유럽 등지의 자산가들이 가족신탁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셋째, 유언은 사망 후 상속이 집행되면 시효가 만료되지만, 신탁의 경우 위탁자의 상황과 요구에 맞도록 조건, 기한을 다양하게 설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이클 잭슨의 가족신탁의 경우 위탁자인 마이클 잭슨이 지정한 방식으로 사망 후에도 계속 운용되다 마지막 자녀가 40세가 된 때 자녀에게 남아 있는 신탁 재산을 전부 넘겨주고 나면 신탁 계약이 소멸된다. 심지어 패밀리 레거시 트러스트(family legacy trust)는 한 가문에서 100년 이상 수 대에 걸쳐 수익자가 승계될 수도 있다.

넷째, 미국에서는 유언장을 남기는 경우 고인의 재산이나 빚을 수혜자에게 공정하게 나누기 위해 공증(probate)이란 법원의 검인 절차를 받아야 하는데 약 6개월에서 18개월이 소요되고 변호사 비용도 많이 든다. 하지만 신탁의 경우는 공증 절차 없이 상속할 수 있기 때문에 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필자가 세미나에서 가족신탁을 소개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가족신탁 계약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물론 가능하다. 2012년 7월 신탁법이 개정되면서 유언대용신탁(신탁법 59조)과 수익자연속신탁(신탁법 60조), 자기신탁(신탁법 3조) 등의 항목이 신설돼 우리나라에서도 ‘마이클 잭슨 가족신탁’과 같은 방식으로 상속 설계가 가능하게 됐다. 자기신탁이란 위탁자가 자기 선언만으로 수탁자를 겸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마이클 잭슨의 사례를 예를 들면, 그는 생전에는 자신이 가족신탁의 위탁자인 동시에 수탁자가 됐다. 그리고 자신이 사망하는 경우 지인 3명이 공동으로 그 지위를 승계하도록 했다. 이렇게 자기신탁을 활용하는 경우 금융기관을 수탁자로 지정하는 것보다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신탁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신탁이 더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법원의 상속 분쟁 사례가 매년 20~30%씩 증가하는 추세다. 1970~1980년대 기업을 일구거나 부를 축적한 부모세대가 상속에 대한 자신의 뜻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사망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기 때문이다. 만약 남은 가족들이 자산 분배 과정에서 서로 협의하지 못하면 법정 분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할 수순이다. 또한 어린 자녀들에게 아무런 조치 없이 상속 재산을 남겨 놓아 자녀들이 재산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무런 계획 없이 분쟁의 빌미를 남기고 심지어 가족들을 법정에 세우는 불행한 상황을 피하는 방법은 사전에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상속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이클 잭슨의 치밀한 유산 계획은 상속 준비가 소홀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선화 한국가족기업연구소 대표
경영학 박사. 가족기업 컨설턴트.
‘100년 기업을 위한 승계 전략’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