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익상 한국리서치 대표이사

서울 근교 K 골프장 6번 홀의 호수 왼쪽을 따라 양지 바른 기슭이 있다. 12월 추운 날인데, 장미꽃이 피어 있었다. 싱글 타수 골퍼인 친구에게 “어, 겨울철에 장미가 피어 있네”라고 했더니, “철을 몰라서 그래”라고 답한다. 그게 철인가? 철 든다는 것이 사계절 철에 따라 순응한다는 의미인가? 혼자 생각하면서 그린을 향해 걸었다.

제주 서귀포에 가면 겨울에도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녹색 채소가 돌로 담을 만든 밭 안에서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제주도에서 자란 겨울 채소는 비싼 가격에 육지로 팔린다. 비닐하우스에서 보호를 받으면서 자란 채소와 달리 노지에서 바닷바람을 이겨내면서 자라 그 향이 풍성하단다.

포항의 바닷가에서 자란 시금치의 향미 또한 독특하다. 모래와 해풍의 열악한 환경에서 버티기 위해 그 시금치들은 가능한 모든 영양분을 축적하며 견디었다. 그 축적의 성과가 내면으로부터 나온 향기다. 백령도의 쑥도 그렇다. 알래스카의 블루베리는 우리나라의 인삼과 비교된다. 춥고 추운 알래스카의 눈 밭에서 생명을 견지하면서 견디고 그 속에서 자식을 낳고자 치열한 투쟁을 한, 그 블루베리는 그만큼 진하고 강한 것이다.

이제는 없어진 야생 파. 만병통치의 약이었다고 한다. 그것을 인간이 밭에 심어 대량으로 생산하고 우리는 그 파를 거의 매일 먹는다. 몽골의 사막 같은 야산에 야생 파가 있다. 가이드가 차를 몰고 가다가 기다리란다. 한참 후에 무슨 얇고 하얀 뿌리를 갖고 왔다. 먹어보란다. 아, 그렇게 향이 강하고 좋은 파는 처음 먹었다. 사막에서 자란 야생 파.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쥐어짜낸 강한 향미가 일품이었다. 중국의 쓰촨성에는 버섯이 산마다 가득하다. 십만 명 이상의 군인들을 동원해서 채취할 만큼 버섯이 지천이다. 버섯찌개 같은 음식을 파는 식당도 즐비하다. 그런데 그 버섯에는 향이 거의 없다. 버섯은 버섯인데, 버섯의 향미가 없다. 환경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향을 우려낼 고통이 적었던 것이다.

소리꾼 장사익 선생이 보낸 편지에 “산천은 지뢰밭이다!”라는 오세영 시인의 구절이 있다. 언 땅이 풀리면서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미생물이 움직이면서 흙 속에 있던 벌레들이 기지개를 편다. 그 속에 공기와 물이 배어 들면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딘 식물의 뿌리가 양분을 빨아들여 잎을 키우고, 씨들은 그 양분을 받아 흙 위로 싹을 피어낸다. 현미경으로 보면 가히 지뢰밭의 풍경일 것이다.

철을 아는 식물은 봄이 돼 싹을 낸다. 겨울을 이긴 식물만이 봄에 싹을 낼 수 있다. 봄의 지뢰밭에서 흙 위로 솟아오른 아기 풀들은 아기가 아니다. 영웅들이다. 냉이, 달래, 쑥, 곰취, 참취, 씀바귀…. 촉촉히 젖어 있는 봄나물들이 시장에 나온다. 민들레는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민들레를 먹는 민족이 또 있을까?

냉이에 된장을 풀어 국을 만들면 그 향이 마루에 가득하다. 쑥의 향미는 쑥국의 재료만이 아니라 약재로도 쓰인다. 우리의 선조는 봄이 되면 야산을 휘저으며 사람에게 해가 안 되고 봄의 기운을 듬뿍 느낄 수 있는 갖가지 어린 풀들을 찾았다. 땅 속에서 겨울의 모진 추위를 극복하고 탄생한 위대한 생명들이다. 그 고난의 흔적이 향이다. 냄새다. 봄이 되고 있다. 철이 바뀌고 있다. 우리 선조는 겨울철 움츠러들었던 기와 근육을 봄 나물의 향미로 다시 피어나게 하는 지혜를 가르쳐 주었다.

우리에게는 사계절이 있다. 철이 있다. 그 철에 순응하면서 우리는 철이 든다. 그 싱글 골퍼는 올해 69세. 에이지 슈터를 하겠다고 맹연습이다. 그는 아직 철이 안 든 것인가? 혹은 그 철의 바뀜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