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할머니보쌈 박천희 사장의 ‘하이테크 경영’

루미 시게루는 1986년 자그마한 두부가게 ‘시노자키야’를 세워 중견 기업으로 성장시킨 일본 벤처 업계의 신화적인 인물이다. 2003년 11월 일본 두부 업체 최초로 도쿄 증시 마더스에 상장된 시노자키야는 현재 연매출이 200억 엔(1800억 원)으로 커졌고 미국 진출을 통해 글로벌 식품 회사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얼마 전 국내에도 소개된 자서전 ‘두부 한 모 경영’에서 그는 자신의 성공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제품인 두부에 최첨단 디지털 방식을 접목했기에 가능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그는 책에서 ‘진정한 차별화는 기본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고 여러 번 강조한다. 맛있는 두부를 만들기 위해 그는 세계 최초로 천연 간수 제조법으로 연두부를 만드는 등 품질 향상에 전력투구했다.국내 프랜차이즈 업계에도 다루미 회장과 닮은꼴의 인물이 있다. 바로 원할머니보쌈의 박천희 사장이다. 그는 2002년 외식 프랜차이즈 업계 최초로 무선 인터넷(PDA)을 통한 주문 관리 시스템을 개발했다. 가맹점에서 PDA로 식자재를 주문하면 본사 서버를 통해 주문량이 자동으로 집계되도록 설계됐으며 이는 바로 원가 절감으로 이어졌다.2004년 9월에는 WIS를 구축해 조직 관리의 효율성을 높였다. WIS 프로그램에는 급여, 회계, 주문, 생산, 구매, 원가, 가맹사업, 유통사업, 경영정보 시스템을 모두 담았다. 특히 가맹점에 대한 모든 사항을 알 수 있도록 설계된 ‘가맹사업’ 프로그램에는 상권 분석, 개설 상담, 가맹점 이력 관리, 교육 현황 등 원할머니보쌈의 영업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WIS 프로그램의 가동으로 원할머니보쌈은 2006년 1인당 생산성이 3억7000만 원으로 2년 전 2억 원보다 85%나 상승하는 효과를 거뒀다.하지만 PDA를 통한 주문 관리 시스템은 데이터 전송 속도가 늦고 고장이 잦은 것이 단점이었다. 이에 박 사장은 14억여 원의 개발비를 들여 원할머니보쌈에 딱 맞는 전사적 자원관리(ERP) 시스템을 개발했다. 지난해 원할머니보쌈의 매출액은 450억 원, 올해는 전년 대비 43%나 많은 643억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0년까지 매출을 2000억 원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그는 ‘외식 프랜차이즈의 생명은 음식 맛이 결정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보쌈김치는 해물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에 맛이 변질되기 쉽다. 겉절이 김치이기 때문에 신선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사업 초기 박 사장이 수도 없이 고민한 바다. 가맹점의 보쌈김치 신선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가장 큰 난제였다.그는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2001년 11월 서울 성수동에 3300㎡ 규모의 신사옥을 준공한데 이어 2005년에는 220억 원을 들여 천안에 제2공장을 완공했다. 지하 1층, 지상 4층 9900㎡ 규모로 건립된 천안공장은 물류창고, 중앙집중식 냉난방 시설, 급속냉동실 및 냉장실 등 식품 제조 공장의 생산 시스템 등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에어샤워, 미세 조정댐퍼, 손 소독기 등 HACCP(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에 적합하게 위생 설비를 갖춘 것도 신선한 재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원할머니보쌈은 가맹점으로 보내는 식재료의 90%를 공장에서 직접 배송한다. 가맹점은 깨끗하게 가게를 운영할 수 있고 본사는 안정적인 수입 구조를 이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박 사장은 원할머니보쌈에서 사용하는 식자재를 중앙공급식 주방에서 일괄적으로 공급하도록 해 전국 어느 가맹점에서나 동일한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냉장 유통 시스템으로 설계돼 있는 중앙공급식 주방의 생산 라인은 총 3개로 이루어져 있다. 790㎡ 규모인 김치 생산 라인은 5단 자동세척기, 압착기, 혼합기, 호이스트, 냉장실 등의 설비를 갖추고 있어 하루 평균 1만㎏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760㎡ 규모의 족발 생산 라인은 스팀 솥, 버블 세척기, 진공포장기, 멸균포장실, 급랭실 등을 갖춰 하루 최대 1000벌(1벌=4족)의 족발을 생산할 수 있다. 돼지고기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OEM)을 통해 제공되는데 원할머니보쌈은 검수 과정이 깐깐하기로 업계에 소문이 자자하다.원할머니보쌈의 비결은 이게 끝이 아니다. 배송 차량에 GPS 시스템을 부착해 차량의 위치는 물론 차량의 실내 온도까지 컴퓨터로 관리한다. 공장에서부터 고객의 식탁까지 늘 청결하고 신선한 음식을 공급하는 게 비결인 셈이다.신메뉴 개발에도 힘을 쏟아 원할머니보쌈은 양파형 보쌈김치 제조 방법에 관한 특허(2004년), 무김치 제조 방법에 관한 특허(2005년)와 수육 용기에 관한 특허(2005년) 등 총 3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04년 12월에는 외식 업체로는 보기 드물게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이노비즈)’ 과 ‘벤처기업’ 인증을 받았다. 또 2005년 9월 국내 외식 업체로는 최초로 국민은행과 사이버 브랜치(온라인 은행지점) 계약을 체결해 예금계좌 조회, 입출금 거래 내역 등을 모두 온라인에서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그룹 내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그룹웨어를 가동하고 있으며 이 그룹웨어에서 모든 결재가 이뤄진다.박 사장이 보쌈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80년대 초반 그의 장모님이 운영하던 할머니보쌈집 일을 도와주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청계8가에 있던 할머니보쌈집은 서울의 유명 맛집으로 한창 주가를 날리고 있었다. 그는 1984년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보쌈집 사업에 뛰어들었다. 김보배 할머니가 만들어 주는 돼지고기 보쌈은 직장인들의 저녁 술안주 감으로 제격이었고 가게는 매일 문전성시를 이뤘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외국인들로부터도 호평을 얻어 특히 일본인 관광객들에겐 서울 여행의 필수 코스가 됐다.이처럼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자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자는 제의가 쇄도했다. 그러나 그는 가맹점 사업보다는 직영점 체제로 유지하면서 진출 시기를 저울질했다.“당시에도 프랜차이즈 사업이 붐을 이뤘습니다. 이미 보쌈으로 프랜차이즈를 시작한 곳도 몇 군데 있었죠. 물론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숨을 고르고 조직 관리, 상권 분석 등 프랜차이즈의 기본부터 공부했습니다.”프랜차이즈 사업에서 제1고객은 가맹점, 제2고객은 소비자다. 그중에서 박 사장은 가맹점 지원에 올인했다. 가맹점으로부터 막대한 회비를 받아 본사만 살찌우기보다는 마진이 발생할 때까지 가맹비를 받지 않아 가맹점 운영을 본궤도에 올려놓는 데 치중했다. 지금도 원할머니보쌈은 점포를 오픈할 경우 각종 이벤트와 메뉴판, 유니폼 등 모든 판촉 용품을 무상으로 지원하며 가맹비의 80%를 상권 분석, 가맹점 교육 지원, 서비스 교육 등에 재투자하고 있다. 가맹점 수익은 더 나은 서비스로 이어졌다. 본사-가맹점-고객 모두가 ‘윈-윈-윈’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지금까지 원할머니보쌈은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가맹사업분쟁조정위원회에 분쟁조정신청 건수가 단 한 건도 없다. 가맹점으로부터 받는 회비를 최소화하고 내부 시스템 개발에 역점을 둔 것은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자칫 본사의 경영 부실화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직영점에서 번 수익까지도 가맹점 영업 정상화에 투입했다. 대신 원할머니보쌈은 다른 프랜차이즈 업체에 비해 가맹점 수가 그리 많지 않다. 신선한 식자재를 제공하기 위해 지역도 서울 경기 지역으로 집중했다. 아직도 영호남 대도시 중 가맹점이 개설돼 있지 않은 곳이 수두룩하다. 올 6월 현재 전국의 총 점포 수는 257개이며 직영점은 2곳만 운영되고 있다.박 사장은 투명 경영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외식 업계에서는 이례적으로 창업설명회 참석자들에게 회사 정보를 낱낱이 공개해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그는 창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업종보다 본사를 보라’고 충고한다. 창업 자본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장기간 할 사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창업설명회에 가면 창업 예비자들이 묻는 질문 중 상당수가 업종에 관한 것입니다. 뭐를 해야 돈을 벌 수 있느냐는 것이죠. 정작 중요한 것은 본사가 어떻게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지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직영점을 따로 놓고 운영하고 있는 곳이 유리합니다. 두 번째는 맛입니다. 직영점과 가맹점 모두를 방문해 두 곳에서 먹어본 맛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맛이 일치한다는 것은 본사가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급적 유행을 타지 않는 업종이 좋고 사업 초기 창업 전문기관에 자문하면 그만큼 실패를 줄일 수 있습니다.”박 사장의 다음 목표는 ‘다(多)브랜드’의 성공적인 정착이다. 보쌈, 족발의 성공을 바탕으로 원할머니보쌈은 2005년 등갈비, 삼겹살, 존슨부대찌개 전문점 ‘퐁립’을 런칭했다. 퐁립에서 판매되는 모든 육류는 화산석 그릴 위에서 초벌구이 후 고객에게 제공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조만간 중저가 쇠고기 숯불구이 전문점도 선보일 계획이다.해외 진출 계획에 대해서는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돼지고기 보쌈은 다른 육류에 비해 불포화지방산의 비중이 높고 콜레스테롤 함유량이 낮아 웰빙 음식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며 성공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