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소송을 둘러싼 협잡과 음모 런어웨이

국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 어느 날 갑자기 해고를 당한 것에 앙심을 품은 한 사나이가 자신이 근무하던 증권 회사를 찾아가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으로 졸지에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부인은 총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총기 회사가 패소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처음부터 무모한 승부였다. 변호사 웬델 로(더스틴 호프만 분)는 총기 회사가 고용한 배심원 전문 컨설턴트인 랜킨 피츠(진 해크만 분)를 상대로 힘겨운 법정 승부를 펼친다.‘런어웨이(원제: Runaway Jury)’는 ‘야망의 함정’ ‘펠리칸 브리프’ ‘타임 투 킬’ 등 당대 최고의 스릴러 작가인 존 그리샴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법정 스릴러물이다.어스름한 어둠이 내리는 어느 초가을 저녁, 미국 남부의 한 저택으로 검은 색 리무진들이 줄을 지어 들어선다. 이번 총격 사건 소송에 휘말린 미국 최대의 총기 회사 사장 집이다. 거실에는 이번 소송에 함께 연루된 5대 총기 회사의 오너들이 모여 있다. 그들 앞에는 이번 사건 역시 승소할 것을 약속한 랜킨 피츠가 윤기 흐르는 고급 정장 차림으로 의뢰인들을 마주보며 앉아 있다.사장A: (굵은 시가를 손가락에 낀 채 거만한 모습으로 피츠를 노려보며) “당신 요구는 올 때마다 커져만 가는 군. 1200만 달러나 더 청구하다니. 우리 다섯 회사가 그동안 꼬박꼬박 지불해 온 돈만 해도 벌써 2000만 달러에 이르오. 당신 동네에선 뭐 그 정도 갖고서 거액 운운하느냐고 하는지는 몰라도 이곳 캘리포니아만 해도 2000만 달러면 배심원 전체를 몽땅 매수하고도 남을 거액이란 말이요.”상대의 제안에는 일단 플린칭(Flinching)으로 대응하라상대방이 제시하는 가격, 납기, 사양 등에 대해 지나친 요구란 것을 표시하는 방법의 하나로 당황하거나 놀라는 반응을 보이는 행위다. 만약 당신이 상대방이 제시한 사항에 대해 지나친 요구 혹은 터무니없는 요구라는 듯이 놀라는 기색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 제의가 타당하다는 의사를 전달하는 셈이 된다. 조목조목 논리적인 반박을 하는 동시에 다소 격앙된 표정과 목소리를 사용하면 심리적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효과가 있다.피츠: (여유 있는 웃음을 띤 채) “3만이란 수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사장 A: (종잡을 수 없다는 듯) “3만, 무슨 얘길 하는 게요?”피츠: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만한 숫자죠? 매년 발생하는 총기 사고 사망자 수입니다.”가만히 듣고 있던 총기 회사 사장들의 얼굴에 순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제대로 먹혀들었다고 느낀 걸까. 피츠의 굵은 목소리가 한층 힘을 받는다.피츠: “작년 한 해 동안 남녀노소 불문하고 여러분이 판매한 총기에 의해 불구가 된 사람들은 10만 명입니다.”1200만 달러라는 추가 비용 요구를 어떻게든 낮춰 보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던 사장들. 그러나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아무에게나 무분별하게 판매된 총기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있다는 얘기에 가슴이 뜨끔한지 아무런 대꾸도 못한 채 잠자코 듣고 있다. 기실 자신들이 실질적인 범죄자임을 대놓고 말하는 피츠가 이젠 조금 두렵기까지 하다.유인책으로 상대의 관심을 돌려라(Decoy)상대의 협상력이 우세한 주제나 상황에서 당신에게 유리한 주제나 상황으로 상대의 관심을 떼어 옮겨라. 특히 상대에겐 치명적인 약점이나 위협이 될 수 있는 충격적인 정보나 솔깃한 자료를 제시, 새롭게 맞닥뜨린 문제 상황에 혈안이 돼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 더 나아가 심리적 공황(Panic)과 위기(Crisis) 의식을 조성하라. 당신이 제공하는 일련의 정보가 객관적이고 또한 중요하다고 느끼게 되면 될수록 당신에 대한 전문가적 신뢰도(Expertise Power)도 함께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러는 사이, 상대가 당초에 느끼고 있던 협상력의 우위는 점차 약화, 혹은 망각되며 따라서 문제를 보는 관점이나 태도의 변화를 이끌게 된다.피츠: (득의양양해진 피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있는 다섯 사장의 의자를 하나씩 건드리며 걸음을 옮긴다. 그러면서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한다.) “그것도 아니면 1이란 숫자에 주목해 볼 수도 있죠. 왜냐하면 그들이 절실히 원하는 건 단 한 번이기 때문이죠. 단 한 번의 승소 단 한 번의 선례.”결론은 가능한 ‘1’이란 숫자로 끝내라(The Law of small numbers)여러 가지 경우의 수로 요점을 흐리지 마라. 사람들은 한 가지의 단순 명료한 최종 결론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특히 전반부에 다양한 상황 변수를 제시한 후 결론으로 던지는 단 한 가지 제안, 사례, 결과, 목표, 방안은 상대로 하여금 더 이상의 고민 없이 당신의 제안을 최선의 혹은 최종적 결론으로 인식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상담이나 협상 말기에는 가급적 단 하나로 결론을 마무리 짓도록 노력하라.피츠: “이유는 일단 피해자들이 한 번만 승소하면 그때부터 온 나라가 총기 소송이란 소송은 다 걸게 될 것이고 결국 20억 달러란 돈이 소송비나 보상비로 한 푼도 남김없이 다 날아가 버릴 겁니다. 바로 매년 여러분들이 총기와 탄약을 팔아 벌어들이는 바로 그 20억 달러 말입니다.”감춰진 두려움을 일깨워라(Intimidation)상대의 저항이 강하거나 당신의 협상력이 약할 경우 상대의 감춰진 두려움을 일깨워라.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생각하기도 싫은 원치 않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음을 때로는 분명히, 때로는 넌지시 반복하여 인식시켜라. 누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극도의 두려움을 안고 있다. 그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숨기게 된다. 재정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건강, 사회적 위치나 신분, 인간관계 등 두려움의 원천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결국 상대를 공포에 떨 수 있게 한다면 상대를 제어하기는 한결 수월해진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며, 생각조차 하기 싫은 바로 그 상황. 극도의 두려움 속에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어떤 비용과 수고를 감수하고서라도 해결책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당신의 협상력이 약하면 약할수록 상대의 두려움을 찾아내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피츠: (만면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소 비굴하게) “우리로서도 그 정도면 거액이죠. 제가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돈은 곤란한 판결이 야기할 비용에 비하면 정말 푼돈이죠.”지불 비용보다 얻는 이득이 더 큼을 보여라(Less cost, much greater gain)당초에는 지나친 요구로 혹은 과다한 비용으로 인식됐으나 막대한 금전적 손실, 사업 도태 등이 현실로 닥쳤을 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손실과 고통이 불가피하다는 걸 깨닫게 되면, 이제는 충분히 지불하고 수용할 만한 조건으로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다.게다가 처음엔 상대의 기만이나 설득에 넘어가선 안 된다는 방어적이고 회피적인 태도였으나 이제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위기 상황을 방지하려는(극복하려는) 결단력과 협력적인 태도의 변화를 갖게 된다. 즉, 초기엔 당신을 경쟁적이며 적대적인 협상 상대로만 인식했으나 이제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협력자이자 파트너로 인식이 전환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나오는 피츠의 여러 협상 기법은 한마디로 리프레이밍(Reframing)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상대의 기존 관점이나 태도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리프레이밍 기법’은 적절히 구사하면 너무나 자연스러워 상대로 하여금 현재 협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거의 주지 않고 오히려 당신을 사업의 협력자로 인식되게 한다.박상기 BNE컨설팅 대표위스콘신 매디슨 MBA졸전경련 국제경영대학원 협상교수역서: 협상의 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