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마트 안영환 사장의 경영비법

마트 대전점 매니저 차경옥 씨는 작년 6월 본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차경옥 씨~ 축하합니다. 경옥 씨가 대전점 점장으로 임명됐습니다.”‘내가 입사 2년밖에 되지 않은, 그것도 고졸 학력이 전부인 내가 정말 점장이 됐단 말이야.’ 차 씨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그녀는 잠시 지난날을 떠올려 봤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회사 사무직과 강남 코엑스에 있는 메가박스, 의류업체 아이겐포스트 등을 전전하던 그녀는 2004년 2월 우연한 기회로 ABC마트에 입사했다. 이후 그녀는 ‘ABC마트와 결혼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일했다. 그 결과가 입사 2년차 ‘새내기 점장’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제 그녀는 더 큰 매장의 점장으로 승진할 꿈을 갖게 됐고 ABC마트에서라면 분명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열정과 땀을 소중히 여기는 ABC마트의 총사령탑 안영환 사장의 경영 철학을 믿기 때문이다.ABC마트는 유통 업계의 새로운 강자로 주목 받고 있는 기대주다. 이 회사는 일반 소비재인 신발에 카테고리 킬러라는 유통 기법을 적용,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카테고리 킬러란 백화점, 슈퍼마켓과 같이 다품종 다량 판매가 아닌 소품종 다량 판매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전문 매장을 말한다. 단일 품종의 다양한 제품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있다는 점에서 멀티숍으로 불리기도 한다.안 사장의 신발 사랑은 올해로 20년째다. 1986년 대학 졸업 후 금성사(현 LG전자)에서 냉장고 수출을 담당했던 그는 노조 파업으로 직장이 잠시 문을 닫는 바람에 1988년 선경(현 SK네트웍스)으로 회사를 옮겼고 거기서 처음 맡게 된 것이 신발 수출 업무였다.“원래 회사에서는 경력을 살려 가전 부문을 맡아주길 바랐지만 전 언젠가 신발이 큰돈을 벌어다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입사하자마자 그는 미국·유럽 일변도였던 기존 판로에서 탈피, 일본의 비중을 넓혔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정열적으로 세일즈를 하던 1990년 어느 날 그는 평생의 동지를 만나게 된다. 현재 신발 유통 회사로는 유일하게 도쿄증시 1부에 상장한 일본ABC마트 설립자 미키 마사히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일본ABC마트는 도쿄도 내 57개를 비롯해 일본 전역에 250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최대 신발 유통 기업이다. 연간 매출은 4000억 원, 경상이익은 1200억 원에 이른다.재일교포인 미키 사장은 안 사장의 열정적인 모습에 감동받았고 결국 1991년부터 안 사장은 일본ABC마트에 신발을 납품했다. 미키 사장과의 인연은 선경을 나와 신발 제조 회사인 삼영인터내셔널을 설립한 후로도 계속됐다.“미키 사장이 제 열정에 불을 붙여줬다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직원 1명만을 데리고 단돈 1000만 원으로 차린 삼영인터내셔널이 5년 만에 직원 50명, 연간 5000만 달러를 수출하는 우량 기업으로 성장한 것도 미키 사장의 조언이 있었기에 가능했죠.” 이후 그는 삼영인터내셔널을 연구개발(R&D)을 담당하는 개발연구소로 개편하고 중개무역을 담당하는 메이슨 인터내셔널을 새롭게 설립했다. 물론 일본ABC마트도 해를 거듭할수록 놀라운 성장을 기록했다.2000년 일본ABC마트는 해외 진출을 모색하게 됐고 첫 사업 기지로 한국을 선택한다.“어느 날 미키 사장이 ‘한국 시장에 진출할 생각인데, 괜찮은 사업 파트너를 찾아봐 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당시만 해도 꽤 규모가 컸던 업체를 몇 군데 소개해 줬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저한테 ‘당신이 한번 해보지 그래?’라고 제의해 오더군요. 미키 사장과 일본ABC마트의 저력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두 말하지 않고 회사를 설립했습니다.”이렇게 출발한 ABC마트의 설립 자본금은 30억 원. 회사 지분은 미키 사장이 51%, 안 사장이 49%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경영은 전적으로 안 사장이 책임진다.ABC마트는 설립 이듬해 15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작년에는 700억 원의 매출 실적을 기록하는 등 놀라운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경상이익도 2004년 23억 원에서 작년에는 3.5배가 넘는 84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850억 원으로 2위 업체의 목표치(300억 원)와 비교해 볼 때 압도적인 1위다. 2002년 12월 압구정동에 처음 문을 연 이후 매장수도 크게 늘었다(직영점 27곳, 백화점 매장 6개, 대리점 3개, 온라인 쇼핑몰 1개).안 사장은 ABC마트의 이 같은 성공 요인을 △차별화된 판매전략 △랜드마크 지역 선점 △품질 향상 등으로 요약했다. 그중에서 강북·강남의 랜드마크인 명동과 강남역 부근에 매장을 오픈한 것을 가장 큰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 “사업 초기 일본ABC마트로부터 300억 원을 지원받아 200억 원으로 강남역에 전용 매장을 마련했고, 100억 원은 명동점의 전세보증금으로 사용했습니다.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매장을 오픈한다는 것이 제가 가장 강조하는 마케팅 원칙입니다.”안 사장이 특히 중시하는 경영의 키워드는 스피드다. 카테고리 킬러의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재고 물량 처리도 빠르다. 판매가 정체를 보인다 싶으면 파격적인 할인을 실시해 ‘땡처리’해 나간다.“우리 매장에서는 신제품이 출시돼 6개월이 지나면 물량의 85%를 판매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하나의 브랜드에서 제품이 수백 개씩 쏟아지는데 신속하게 판매하지 않으면 재고에 허덕일 수밖에 없습니다.”이 때문에 그는 재고 관리를 매장 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이 밖에도 그는 애프터서비스, 전산, 물류, 직원 교육 등을 중점적으로 챙긴다.또한 직원들의 현장 감각을 높이기 위해 본사 직원의 10%를 매장에서 선발했다. 본사 직원들은 매달 2~3회씩 의무적으로 현장 근무를 해야 한다. 그 역시 하루 일과 중 대부분을 매장 둘러보는 데 사용한다. “현장 직원들의 의견을 경영에 반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매장을 둘러보는데, 그러다 보면 유행 흐름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매장에 자주 가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직원들도 저를 부담 없이 맞이합니다. 사장이 아니라 마치 삼촌 대하듯 말이죠. 제 싸이(싸이월드)에 일촌을 맺은 직원들만 30명이 넘습니다.”앞서 차경옥 점장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사 제도 역시 파격적이다. 그는 능력만 있다면 학력과 나이 등은 문제 삼지 않는다. 고객과 함께 하는 마케팅도 그의 아이디어다. ABC마트는 손님을 찾아가는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박수 고함 등이 동원되기 일쑤다. 매장 내에선 언제나 신나는 댄스음악이 흐른다. 유통 구조의 혁신에 재미(Fun)와 이벤트(Event)라는 소프트웨어를 가미한 것이다. 일례로 명동을 지나다 보면 ABC마트 점원이 매장 밖으로 뛰어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외치는 소리를 종종 듣게 된다. “자~ 지금부터 반스, 호킨스 이월 상품을 70% 세일합니다. 어서들 오세요.” 손뼉을 치며 사람들을 호객하는 것이 영락없는 동대문·남대문시장의 모습이다. 이윽고 신나는 힙합음악이 쩌렁쩌렁 울리면서 매장 안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자~ 골라보세요. 단 2시간만 할인합니다. 물건 떨어지면 끝입니다. 골라보세요.”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와 고함 소리가 울려 퍼진다. 박수·고함소리와 파격 세일 등은 이젠 ABC마트의 문화 코드로 자리 잡았다. 이런 역동적인 마케팅 전략 때문인지 이 회사 직원들의 평균 나이는 불과 26세다.ABC마트의 마케팅이 성공을 거두면서 나이키와 리복 등 메이저 브랜드 업체와의 관계도 역전됐다. 한때는 이들 업체로부터 제때 물건을 공급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젠 서로 물건을 공급해 주려고 난리다. 미국 보드화의 대명사인 반스와 캐주얼 스포츠화로 유명한 호킨스는 아예 ABC마트가 독점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각 테마 쇼핑몰도 ABC마트 매장을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ABC마트와 안 사장에게 올해는 특히 중요한 해가 될 전망이다. ABC마트는 2009년 상반기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매출 신장에 더욱 역점을 둘 방침이다. 안 사장은 현재 추세대로라면 5년 후 매출액이 3000억~4000억 원을 쉽게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 같은 성장세에 맞춰 현재 15%대인 영업이익률을 20%대로 끌어올리는 게 과제일 뿐이다. 안 사장은 이를 위해 직영점 위주에서 탈피해 대리점 수도 조금씩 늘려나갈 계획이다. 또 중국 시장 진출 문제도 일본ABC마트와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일본은 지주회사로서의 역할만 할 뿐 모든 마케팅은 ABC마트코리아가 맡기로 합의했습니다.어떻게 중국 시장에 진출할지 고민 중인데, 현재로선 단독법인을 설립하는 것보다 현지 업체와의 공동법인 설립이나 미국 신발 유통 회사를 인수·합병(M&A)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또 2009년 상장을 통해 조달된 자금은 ABC마트 전용 매장을 짓는 데 사용할 계획입니다.”안영환ABC마트 대표연세대 행정학과 졸업선경물산 신발수출사업부 근무삼영 인터내셔널 대표메이슨 인터내셔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