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55) 대한투자증권 사장은 대학 졸업 후 25년을 은행권에서만 일해 온 전형적인 뱅커다. 그런 그가 증권사 사장을 맡았다는 것 자체가 금융권에서는 하나의 뉴스 거리였다. 그와 이름이 같은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이 증권맨 출신이었던 것과 대비되기도 했다. 은행에서 근무할 때 김 사장의 주특기는 ‘가계 영업’이었다. 외환위기가 막 터졌을 때 잠시 중소기업부장을 맡았던 것과 2002년에 지원본부장을 맡았던 것을 제외하면 경력의 대부분을 가계 영업 전선에서 쌓았다. 이 때문에 하나은행 내에서도 대표적인 개인고객 ‘영업통’으로 꼽힌다. 그의 영업 무기는 넘치는 에너지와 친화력이다. 처음 만난 사람도 그와 단 몇 마디만 나누고 나면 마치 오랜 지기처럼 친숙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런 자신감의 발로인지 그는 하나금융지주 부사장에서 대투증권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단 한 명의 부하직원도 데려오지 않고 혈혈단신으로 입성했다. 취임 일성으로 “현재 회사는 99도의 뜨거운 물인데 온 힘을 모아 온도를 1도만 올려보자”고 말한 그는 곧장 영업 현장으로 내달려 20여일 만에 2000명이 넘는 사람을 만났다. 최고경영자(CEO)로서 의욕에 찬 첫 발을 내디딘 김 사장을 MONEY가 만나 앞으로의 영업 전략과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취임 후 영업 현장부터 돌아다니셨던데소감은 어떤가요.“처음 경험하는 증권회사를 빨리 이해하려면 우선 영업현장부터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영업점을 방문하고 직원들을 만났습니다. 영업점에서 직원들의 건의로 고객들도 많이 만났는데 때로는 부동산 업체, 반도체 장비회사 등도 방문했습니다. 제가 고객을 만나는 게 영업에 직접 도움이 되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영업 직원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주는 효과는 있다고 봅니다.”영업력 강화, 자산관리 서비스 확대,대표 펀드 육성 등의 목표를 발표하셨는데그 중에도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전략은 무엇입니까.“아직 대투증권은 영업이익보다 영업외이익이 더 큰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2006년 지분법 이익과 부동산 임대 수입이 210억 원에 달해 전체 당기순이익(600억 원 예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영업으로 인한 이익이 지나치게 적은 구조인데 이는 자산관리나 브로커리지 분야에서 고임금 구조 등으로 인해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개선하려면 직원들의 역량을 강화해 수익 창출 능력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투증권은 투신 업무에서 출발한 회사입니다. 그래서 투신 업무에 가장 큰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쟁이 격화되면서 시장 점유율이 줄어들었습니다. 이 분야에서 우위를 확고히 해야 이를 토대로 다른 분야로 역량이 확대될 수 있습니다. 현재 펀드시장 점유율이 7.3%인데 2007년에는 10%로 끌어올려 1위 자리를 더욱 공고히 할 계획입니다.”목표를 달성하려면 직원들의 적극적참여가 필요할 텐데요.“저에게 전달된 직원들의 편지를 보면 의욕이 매우 높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영업통이 사장으로 왔으니 영업에서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해 보고 싶다는 직원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의욕이 크더라도 행동으로 전환하지 못하면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마케팅 강의도 하고 지점 특공대 영업조직인 ‘영업점 마케팅 팀장 제도’도 도입했습니다. 마케팅 팀장의 역할은 영업 노하우를 다른 직원들에게 전파하고 상품에 관한 아이디어도 개발하는 것입니다.”은행에서 일할 때 쌓은 영업 비결이 따로 있나요.“모든 일의 해답을 직원에게서 찾고 직원을 변화시켰습니다. 궁극적으로 직원 스스로 자신이 지점장이란 생각을 갖게 해야 합니다. 그 첫 단계는 정보의 공유입니다. 회사가 어떻게 수익을 내는지 직원들이 알게 되면 태도가 달라집니다. 또 직원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위임해 줘야 합니다. 직원들이 알아서 하라고 결정권을 줘야 합니다. 일례로 연말이 되면 고객에게 드릴 선물 용품을 일일이 지점장이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직원들이 알아서 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직원들이 여러 가지 상품을 구입해 고객들의 반응을 살펴보면서 자발적으로 선물 용품을 개선해 나갔습니다. 스스로 배워가면서 책임감도 커지고 능률도 높아진 셈이죠. 상급자가 왜 일일이 간섭하는지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상급자는 권한을 대폭 위임해 주고 나중에 성과에 대해 책임을 물으면 됩니다.”직원들에게 칭찬을 많이 하는 편입니까.“영업점에서 종종 영업 부진 대책회의를 갖곤 하는데 저는 단 한 번도 이런 회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통상 부진 대책회의를 하면 직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이 시간만 지나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끔 직원에게 말할 기회가 주어져도 변명밖에 할 게 없습니다. 이게 조직에 무슨 도움이 됩니까. 저는 대신 영업을 잘 한 사람을 칭찬하고 이 사람의 노하우를 듣는 회의를 합니다. 말하는 사람도 기분 좋고 듣는 사람도 노하우가 전해지기 때문에 열성적으로 참여합니다. 또 여기에 상급자가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일이 즐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일을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합니다. 열심히 일하면 몸만 나빠집니다. 대신 일을 즐겁게 하라고 주문합니다.”좋은 리더가 되기 위한 덕목은 무엇이라고생각하십니까.“리더는 자만에 빠지면 안 됩니다. 내가 우월한 어떤 것을 갖고 있고 이것을 하급자에게 전해주겠다는 생각을 갖는 순간 큰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저도 대투의 잠재력을 키워주는 촉매 역할만 할 것입니다. 사실 리더가 아무리 훌륭한 전문 지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여러 사람의 지혜를 합한 것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저는 직원들의 이야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합니다. 또 직원들에게 사과도 잘 합니다. 상급자도 잘못한 게 있다면 화끈하게 사과해야 합니다. 변명하려고 하는 순간 직원들에게 불합리하게 책임을 묻게 됩니다. 아마 저에게 장점이 있다면 실력이 없음을 시인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대신 저는 남의 장점을 봅니다. 다른 사람의 단점을 생각하면 제 심성만 나빠집니다.”직원의 자율을 존중하더라도 반드시지키도록 요구하는 선은 있을 텐데요.“저는 청렴이란 덕목에 대해서는 매우 단호합니다. 은행에서 인사 업무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는데, 청렴 원칙을 위배한 직원은 단호하고 가차 없이 처벌했습니다. 누구도 봐준 적이 없습니다. 노조 문제에 대해서도 다 용인하지만 경영권 침해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행동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해고했는 데도 아직까지 저를 좋아하는 직원들이 많은 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대투증권의 영업에는 어떤 변화를 줄생각이십니까.“영업점장 회의 등을 통해 지점의 변화를 주문하고 있습니다. 지점 직원들에게 수익의 원천을 공개하고 자율권을 줘서 영업점 직원들이 나름대로 상품 기획을 하고 독자적인 방법으로 영업할 수 있도록 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점장들은 직원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 결론 부분에서만 말을 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은행권 상품의 경우 확정금리형이 많기 때문에 개인의 역량으로 얼마든지 영업을 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투신사의 상품은 리스크가 높은 투자 상품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은행에서는 상품을 판매하고 사후 관리를 해주지 않아도 되지만 투신 상품은 지속적으로 관리해줘야 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고객에게 지속적으로 좋은 정보를 제공해 줘야 합니다. 따라서 점포 내에 지식의 교류를 더욱 활성화해 대투는 안정성이 높고 서비스가 좋다는 명성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