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몬테팔코 대표와인 ‘사그란티노’
탈리아 움브리아는 토스카나 지방의 바로 오른편에 붙어 있다. 위치상으로 반도의 중심에 있기에 이탈리아의 심장이라고도 한다. 움브리아 지방은 시간이 멈춘 곳이다. 움브리아인들은 정신적으로는 기원전 에트루리아시대에, 문명적으로는 중세에서 멈췄다고 말한다. 즉 그들은 중세의 석조 건물 속에 살면서 로마보다 한 시대 앞섰던 에트루리아인을 조상으로 받들며 산다.이러한 역사의 흐름에는 와인이 함께하고 있다. 와인은 그들의 삶 깊숙이 자리잡은 라이프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움브리아 와인 역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현대에 와서 여러 토착 품종 중에 특히 사그란티노(sagrantino)에 대한 연구가 지금 몬테팔코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몬테팔코(Montefalco)는 글자 그대로 송골매(falcon)가 사는 산(mountain)이다. 자그마한 시골 도시 몬테팔코에 오르면 주변의 광활한 움브리아 대지가 먼 곳까지 보인다. 몬테팔코 시장의 집무실이 있는 팔라초 델 코뮤네의 꼭대기에 올라 주위를 바라보라. 그러면 맨 먼저 테라코타 지붕으로 된 돌집들이 발 아래 펼쳐진다. 황갈색의 기와가 비바람에 깎여 고풍스러움이 더해 보인다. 눈을 조금 들면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들이 보인다. 남서향, 남동향의 경사면에는 주로 포도나무를 심었다. 동쪽 멀리 보이는 병풍 같은 산은 아펜니노 산맥의 줄기이다. 이탈리아 남북을 달리는 산맥은 백두대간과 비슷하다. 공기의 빛깔이 푸르스름해질 정도로 거리가 멀다. 아펜니노 산맥 중턱에도 마을이 들어서 있는데, 그 중에는 분수 이름으로 유명한 트레비도 있다.평온하기만 한 몬테팔코에서도 지진이 있다고 하는 날이면 난리가 난다. 물론 아이들 학교를 먼저 살피고 그 다음으로 교회로 달려간다. 보티첼리와 동시대 작가이자 선배격인 고촐리(Gozzoli)가 그린 프레스코 명화들이 잔뜩 전시된 성 프란체스코 교회로. 르네상스를 찬란하게 펼쳐놓은 프레스코화가 균열될까 노심초사하며 말이다. 몬테팔코에서 품질이 보장된 와인으로는 몬테팔코 로소와 몬테팔코 비앙코가 있다. 마을 이름을 딴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이다. 지역에 널리 퍼져 있는 포도밭에서는 사그란티노와 산지오베제를 재배한다. 메를로로 쉽게 키울 수 있다. 청포도로는 그레케토(Grechetto), 트레비아노, 샤르도네 품종이 쓰인다. 특히 그레케토는 쌉쌀한 쓴맛과 보디를 갖추어 대부분의 음식에 무난하다.지역 최고의 와인은 사그란티노 디 몬테팔코이다. 해석하자면 몬테팔코에서 나온 사그란티노로 만든 와인이다. 사그란티노 100%로 만들었다. 이런 작명법은 토스카나에도 있다. 몬탈치노에서 나온 브루넬로로 만든 대표적 와인이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다.사그란티노의 어원은 사그라(sagra)로 이는 ‘축제의’ 그리고 ‘신성한’이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결혼식 혹은 즐거운 명절에 사그란티노를 즐겼다고 한다. 예전에는 달게 만들었지만 오늘날에는 드라이 버전과 스위트 버전(파시토라고 함) 두 가지가 나오고 있다. 이 마을을 유명하게 만든 와인은 드라이 사그란티노여서 사그란티노 디 몬테팔코라고 하면 대부분 드라이 버전을 의미한다.세코(secco)라고 부르는 드라이 사그란티노를 맨 먼저 양조한 곳은 스카치아디아볼리(Scacciadiavoli)이다. 악마를 내쫓는다는 뜻인데, 꼭 처용가를 떠올리게 한다. 1884년에 설립돼 1925년에는 미국과 일본에 사그란티노 와인을 수출했다는 문헌이 있다. 현재는 팜부페티 디 아밀카레(Pambuffetti di Amilcare) 가문이 소유하고 있다.오늘날 몬테팔코 사그란티노를 이탈리아의 고급와인 반열에 올린 이는 아르날도 카프라이(Arnaldo Caprai)이다. 지금은 그의 아들 마르코가 이끈다. 사그란티노의 풍부한 타닌, 진한 색깔, 상당한 숙성력, 복합적 향취를 간파한 카프라이는 소출을 줄여 그 집중성을 배가해 더욱 강한 와인을 양조했다. 그리고 보르도 특급와인의 오크 통 숙성 시스템을 도입해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와인으로 변모하는데 성공, 와인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아냈다. 특히 양조장 건립 25주년을 기념해 출시한 25 Anni(25년이란 뜻)는 이탈리아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로버트 파커는 움브리아 와인 중 최고의 점수인 97점을 부여하기도 했다.보험회사 사이 아그리콜라(SAI Agricola)가 양조하는 콜페트로네(Colpetrone)를 수확연도별로 시음해보니 10년 전 빈티지인 데도 숙성의 흔적이 별로 없었다. 여러 해가 지나 색이 바래거나 묵은 향취가 풍길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여태껏 꼿꼿하게 그 구조를 유지한 것을 보고 숙성력에 좀 놀랐다.사그란티노는 놀랄 정도로 많은 폴리페놀을 함유하고 있다. 폴리페놀은 심혈관 질환에 특효가 있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사르란티노는 포도알의 크기가 블루베리처럼 작다. 콩알만한 작은 알에 포도씨가 겨우 하나 들어 있을 정도다. 그래서 껍질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그러니 타닌의 함량이 높은 것은 불문가지. 색깔도 아주 진하다. 무겁고 텁텁하고 아주 드라이한 와인을 반긴다면 사그란티노만한 것이 없을 정도다. 입안을 채우다시피 하는 강한 질감과 기름 같은 점성은 아르헨티나 말벡을 연상시킨다. 농익은 사그란티노는 알코올 도수 14.5%에 쉽사리 도달한다. 아주 기름진 칭기알레(지역의 멧돼지) 바비큐를 뜯으면서 마시는 사그란티노는 기름 범벅인 입안을 금방 개운하게 만들며 동시에 다시금 갈비를 뜯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에트루리아인들의 동굴 벽화에는 포도넝쿨, 포도를 따는 사람들, 포도 담는 바구니 등이 그려져 있다. 수확은 단순한 행위, 하지만 거기엔 복합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일년 노동의 보람이 결실을 보는 순간이다. 나는 벽화 인물이 되어 손으로 직접 포도를 따고 있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