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 ‘갤러리 瓦(와)’ 관장의 사진예술 사랑

마 전 방배동에 사는 지인의 초대를 받은 적이 있어요. 집에 들어가보니 사진 작품을 컬렉션 해 벽면을 멋지게 장식해 놨더군요. 앞서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아파트 평수나 집안 가전제품이 삶의 질과 직결되는 시대는 지났어요. 취미와 투자,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예술 사진에 주목할 때입니다.”사진 전문 화랑인 ‘갤러리 와’의 김경희 관장(54). 사진 예술의 성장 가능성과 투자 가치를 내다보고 작년 10월 경기도 양평에 갤러리를 오픈했다. 김 관장은 평소 취미로 사진을 즐기다 해외에서 사진이 회화 작품 못지않게 각광받는 것을 보고 전문 갤러리 오픈을 결심했다.“일본에는 사진 박물관도 있어요. 그 박물관은 1970년에 기린 맥주에서 부지를 내놓고 도쿄 시민들이 3만 엔씩 기부해 지어졌는데 세계적 사진작가의 작품을 컬렉션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30년이 흐른 이 박물관의 소장 작품들은 어마어마한 가치를 갖게 되었습니다. 또 일본을 여행하는 수많은 관광객이 이 박물관을 찾고 있죠.”그의 말대로 세계 미술품 시장에서는 요즘 사진 컬렉션이 각광받고 있다. 100여 년 전 사진인 미국의 ‘달빛 연못’이라는 작품은 최근 약 29억 원에 소더비에서 경매됐으며, 작년 가을 뉴욕 경매에서는 아날로그 빈티지 사진이 경매를 통해 100만 달러에 낙찰됐다. 현재 해외에서는 40% 이상의 갤러리에서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이런 경향은 국내에도 상륙해 예술 사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유명 건축물이나 호텔에 가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그동안 인테리어에 주로 회화나 조각을 활용하던 곳에서 요즘은 사진 작품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사진에 관심이 높아지는 데 비례해 이제는 수많은 사진 작품들 중에 옥석을 가리는 안목이 요구되고 있다.“사진의 가치를 따질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바로 ‘작가’입니다. 무엇을 이야기하는 작가인지 따져봐야 하죠. 배병우 배준성 구본창 민병헌 등 이미 인정받은 작가들의 작품도 좋지만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잠재력이 있는 젊은 작가에 투자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종선 황규태 현관욱 등의 작가들이 투자 가치가 높다고 봅니다. 새로운 작가에 도전할 때는 일단 객관적으로 인정받은 작품 위주로 고르는 게 좋습니다. 전시경력이나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에게 평가받았는지를 살펴보고 작가의 활동영역 폭도 고려해봐야 하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보기에 좋으면서 봤을 때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작품이 컬렉터와 궁합도 잘 맞고 가치가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이 밖에도 김 관장은 사진 작품에 투자할 때 주의할 점 몇 가지를 소개했다. 첫째, 에디션 수가 5~10장 내외로 희소성을 가진 작품을 골라야 한다. 에디션은 작가가 전시를 하면서 갤러리와 약속을 함으로써 정해진다. 국내 젊은 작가의 경우에는 대개 첫 장이 80만 원부터 시작해 마지막 몇 장은 150만 원까지 가격이 상승한다. 둘째, 작가의 대표작을 고르는 것이 투자가치를 높여준다. 셋째, 인화 상태가 좋은지, 친필 서명이 있는지, 독창성을 지녔는지 면밀히 따져보는 것이 현명하다. 또한 상업 사진보다는 다큐 사진의 발전 가능성이 무한하다.한국전쟁 때 외국 작가들이 찍었던 다큐 사진들이 지금은 값을 매기기 힘들 정도로 비싸졌다. 요즘은 국내 젊은 다큐 작가들도 코소보 등의 분쟁지역이나 난민캠프촌에 찾아가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김 관장은 “난민촌에서 포탄 껍데기를 줍느라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마치 발레를 하는 것처럼 유연하고 생동감 있으며, 분쟁지역의 철조망 사이로 모녀가 입을 맞추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진한 감동과 여운을 준다.”고 말했다.해외 사진 작품에 관심이 있다면 유명 작가들의 모임인 ‘매그넘 그룹’에 대해 알아 둬야 한다. 사진 작가들 사이에서는 이 그룹의 멤버가 되는 것이 곧 유명작가로 인정받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그룹의 대표 사진작가는 헝가리 출신의 마틴 파와 로버트 카파다. 이 밖에도 미국의 여성 사진 예술가인 낸 골딘과 신디 셔먼의 작품 가격이 높게 형성돼 있다.해외에서는 이미 사진 컬렉션 붐이 일어 크리스티나 소더비 등 경매 시장을 통해 유통이 안정돼 있는 상태다. 하지만 아직 국내 사진 시장은 제대로 된 유통의 장이 마련돼 있지 못하다.“국내에는 사진을 유통할 수 있는 장이 거의 없는 게 현실이죠. 이는 사진 예술이 저평가되고 있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경매 등 2차 시장이 형성돼야 투자가 좀더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최근 사진계의 동향을 보면 내년 안에 2차 시장이 형성될 것 같습니다. 이후 5년 정도는 지나야 성숙기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되고요. 이 숙제만 해결된다면 국내에 사진 르네상스가 열리는 것도 시간 문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