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걸작품 ‘로버트 몬다비’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이 세계 최고의 와인 메이커를 자부하던 프랑스의 자존심에 또 한번 상처를 줬다. ‘파리의 심판’이라고 불리는 세기의 와인 대결 30주년을 기념해 지난 5월말 열린 시음대회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산 와인이 또다시 프랑스 보르도산 와인을 제치는 이변을 연출했던 것이다. 이 행사는 30년 전 파리에서 캘리포니아산 와인의 품질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아 프랑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던 사건 이후 열린 재대결이었다.하지만 결과는 프랑스에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30년 전에는 캘리포니아산이 1위를 차지했고 2~4위는 모두 보르도산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1~5위를 모두 캘리포니아 와인이 차지했다. 특히 30년 전에 테스트했던 제품을 그대로 시음했기 때문에 장기간 보관하는 프리미엄 제품에 장점을 갖고 있다고 주장해 온 프랑스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와인을 오래 보관하려면 항상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야 하는 등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데 이번 평가로 캘리포니아 와인은 장기 보관 측면에서도 우수성을 입증받은 것이다.캘리포니아산 와인이 이처럼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게 한 일등공신을 꼽으라면 미국인들은 주저 없이 로버트 몬다비를 말한다. 미국 와인 산업 심장부인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도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는 상징적 지위를 갖고 있다. 와인 제조업을 하던 이탈리아계 이민 2세로 미국 버지니아에서 태어난 로버트 몬다비는 스탠퍼드대학에서 경제와 비즈니스를 전공했다. 그의 아버지가 나파밸리의 찰스 크루그 와이너리를 인수한 후 그는 아버지를 도와 와인 제조업에 투신했다. “고급 와인 산업의 전망이 훨씬 좋다.”는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족들간 불화로 로버트 몬다비는 크루그를 떠나 독립을 선언한 후 나파밸리의 ‘토 칼론(To Kalon:아름다움을 뜻하는 그리스어)’ 포도밭을 사들인다.그는 포도밭을 처음 봤을 때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상적인 토양과 적절한 햇빛 및 강수량을 가진 지역에 있는 토 칼론 포도밭은 보물처럼 보였습니다. 포도밭에 들어갔을 때 기름진 흙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는데 이 포도밭이 매우 특별한 곳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신비롭다는 감정을 느꼈습니다.”포도밭을 사고 나서 그는 건축가 클리프 메이에게 설계를 맡겨 와이너리를 건설했다. 1966년부터 와인 생산을 시작했는데 그는 지붕이 완성되기도 전에 설비를 가동할 정도로 와인 생산에 강한 열정을 보였다. 이후 그의 행보 하나 하나는 미국 와인 산업의 ‘혁신’ 사례로 남아 있다. 일례로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는 나파밸리에서 처음으로 관광객들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와이너리 설비의 절반 이상을 관광객들이 직접 방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와이너리 방문이 활성화됐고 나파밸리 전체가 거대한 관광 자원이 됐다. 현재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 방문자만 연간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방문자들은 모두 잠재 고객이 된다.각종 문화 행사도 개최했다. 1969년 여름 음악 축제를 개최했고 1976년부터 미국의 유명한 요리사를 초청해 행사를 벌이는 등 수많은 문화 예술 축제를 주관했다. 로버트 몬다비의 부인 마거릿 몬다비가 이런 문화 이벤트를 주도했다. 마거릿 몬다비는 “우리는 신문이나 TV 광고를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예술이나 음식 관련 행사, 세미나, 시음회 등을 통해 철저하게 구전(word of mouth) 마케팅으로 제품을 알려나갔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노력으로 로버트 몬다비는 와인 메이커가 아니라 예술과 음식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이란 이미지를 굳히게 된다. 최근 열린 로버트 몬다비의 40주년 기념행사 이름도 와인과 음식, 예술의 결합을 뜻하는 ‘taste3’으로 명명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와인의 품질 혁신도 이어졌다. 저온 발효,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 도입, 프렌치 오크통 사용 등 캘리포니아에서 이전까지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기술들이 로버트 몬다비에 의해 활용됐다. 마거릿 몬다비는 “지금 나파밸리 열차는 관광용으로만 이용되고 있지만 이전에 이 열차를 통해 스테인리스 스틸 통이 배달됐는데 정말 장관이었어요. 통이 설치된 후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구경했습니다.”라며 당시를 회고했다.와인 제조 과정에서 맛과 향을 보존할 수 있도록 미세한 진동도 주지 않고 와인을 이동시키는 기술도 도입했다. 또 천편일률적인 맛을 갖고 있던 소비뇽 블랑(백포도주를 만드는 대표적 포도 품종) 와인에 건조 발효 공법을 도입해 고급 드라이 와인을 만드는 등 미국 와인의 품종을 다양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포도를 재배하는 기술도 일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로버트 몬다비는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을 더 발달시켜 마치 자연 상태에서 포도가 자라게 하는 것 같은 천연 와인 재배 기술을 발전시켰다. 로버트 몬다비는 이런 기술을 토대로 나파밸리 지역의 와인업자들에게 환경친화적 와인 재배 기술을 확산시키기 위해 ‘NWSG’그룹 설립을 주도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는 1998년 캘리포니아 환경보호국으로부터 ‘혁신가 상’을 수상했다.로버트 몬다비는 특히 미항공우주국(NASA)과의 공동 연구로도 유명하다. 포도나무 뿌리에 붙어 나무를 고사시키는 해충인 ‘필록세라’를 박멸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NASA 연구진과 함께 원격 센서 기술을 활용, 포도밭의 이미지 및 데이터 확보분석 기술을 발전시켰다. 이 이미지 데이터를 토대로 병해충 관리는 물론이고 가지치기 작업, 물 대기 등 다양한 포도 재배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됐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