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미술계가 중국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세계 유수의 미술 평론가들을 만나보면 하나같이 중국 현대미술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어요. 중국이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부상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국내 미술계도 이런 상황을 직시하고 중국 진출을 서둘러야 합니다.”표갤러리 표미선 대표(56)는 국내 화랑 업계의 대표적인 ‘중국통’이다. 90년대 초반부터 중국 미술 시장에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인 덕분에 그녀는 중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다. “중국이 가진 파괴력은 상상하는 것 이상입니다. 한국에서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만 중국에서는 매달 강산이 바뀌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미술 시장도 마찬가지예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표 대표가 중국 시장에 관심을 가진 것은 지난 90년대 초반부터다. 우연히 중국에 간 그녀는 중국의 미술 작품을 보고 깜짝 놀랐다.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미술 작가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간섭이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작품으로나마 자유와 민주화에 대해 많이 표현했어요.” 당시 중국 현대미술 작품을 처음 맞닥뜨리면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황금어장을 본 느낌’을 받았다고 표 대표는 회고했다. 표 대표의 판단은 정확했다. 10여년이 흐른 지금 중국은 세계 미술 시장의 중심권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경매업체인 소더비나 크리스티에서 거래되는 중국 작가들의 작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중국 현대미술 시장의 저력에 대해 표 대표는 ‘작가 스튜디오’와 ‘갤러리’의 절묘한 조화라고 말한다.중국 미술 시장의 상징인 다산쯔(大山子) 798은 중국의 대표적 예술단지다. 원래 군수공장이었던 다산쯔 798은 1995년 중앙미술학원의 작업창고가 입주하면서 중국 최대의 예술단지로 변모했다. 798은 공장지대에 붙여진 번호다. 다산쯔 798은 중국 현대미술의 발전에 엄청난 변화를 줘 ‘포스트89’의 대표주자인 팡리쥔(方力均), 웨민쥔(岳敏君), 장샤오강(張曉剛), 왕광이(王廣義) 등은 모두 다산쯔 798이 배출해낸 세계적인 작가다. 이들은 데미안 허스트로 대표되는 영국 신진작가(young British artists)와 네오 라우흐 등 독일 신진작가(young German artists)와 함께 세계 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무기창고를 개조한 다산쯔 798에 가보면 변화하는 현대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갤러리 전시공간에 전기배선 등이 그대로 남아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작가의 창의력 향상에 큰 도움을 주고 있죠. 다산쯔 798에는 과거와 현재가 모두 공존한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공산당 선전문구에서부터 고급 인테리어로 치장된 카페, 갤러리, 음식점까지 중국의 어제와 오늘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관광지로도 명성이 높습니다.”베이징 북동쪽에 있는 예술특구 다산쯔 798은 비단 중국 현대미술 작가들만의 작업공간이 아니라 세계 유수 갤러리의 경연장으로도 유명하다. 2002년 말 일본 도쿄갤러리가 처음 문을 연 이후 지금은 각국에서 온 100여 개 갤러리들과 작업실들로 북적인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함께 하기 위해 표 대표는 지난 18일 베이징 주창지구에 300여평의 갤러리 공간을 마련했다. 유망한 중국 작가들을 선점하는 것은 물론 현지에 국내 작가들을 소개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겠다는 계산에서다. “제가 보기에는 유럽과 미주 지역으로 국내 작가를 내보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곳이 베이징인 것 같습니다. 표 베이징은 국내 작가들의 해외 진출을 위한 전진기지이자 국내 작가들과 중국 작가들의 작품 교류 공간으로 발전시킬 생각입니다.”표갤러리는 베이징 갤러리 오픈과 동시에 5월18일까지 ‘Without Boundary 无界(무계)’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갖는다. “이번 전시에는 국내 작가와 중국 작가 8명이 참여합니다. ‘Without Boundary 무계’라는 제목에서 보듯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 작가와 중국 작가를 특별한 구분 없이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이번 표 베이징 개막 전시회는 지속적인 프로모션을 통해 국내 작가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돕기 위한 표갤러리의 경영방침의 일환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개막식 오프닝에는 세계적 작가인 주밍의 퍼포먼스가 열린다. 메인 전시장에는 한국 작가 김인겸의 덩어리 조각과 스테인리스스틸 조각 작가로 유명한 중국의 웨민쥔, 거친 필체로 유럽에서 호평받고 있는 추이궈타이, 같은 공간에 계속적으로 다른 내용을 담아내고 있는 타먼(라이셩위, 양샤오캉)의 작품이 전시된다. 2전시관에는 음각조각으로 유명한 화가 이용덕이 그림자방 외에 다양한 신작들을 선보인다. 3전시관에서는 알루미늄 스크린의 작업으로 유럽과 홍콩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박성태의 작품이 전시된다. 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기까지는 중국 문화계 인사들과의 지속적인 교류가 버팀목이 됐다. 표갤러리는 지난해 5, 6월 중국 국립박물관인 중국국가박물관과 공동으로 김창열과 곽훈 초대전을 개최했는가 하면 11월에는 이용덕 초대전을 중국 현지에서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외국 작가들에게 문턱이 높았던 중국미술관이 세 차례의 초대전을 연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여기에는 중국 문화계 인사들과 오랫동안 쌓은 신뢰가 큰 역할을 했다. “지난해 11월 열린 서울대 미대 이용덕 교수 초대전은 중국미술관 펑위안 관장의 전폭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펑 관장은 ‘푹 파인 음각이면서도 볼록 튀어나온 양각의 효과를 내는 이것이야말로 음과 양이라는 동양적 사상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작품’이라고 극찬했습니다.”표 대표는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중국 미술시장에서 한류 열풍을 다시 한번 일으킬 계획이다. 이러기 위해선 국내 갤러리들의 인식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현재 문화관광부와 화랑협회는 예산을 편성해 갤러리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갤러리들의 마음가짐입니다. 현재 국내 미술계가 심각한 불황에 직면했다고 한탄하지만 돌파구는 주위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중국 시장 진출이 바로 그런 셈이죠.” 하지만 그녀는 중국 진출 프리미엄을 위해 성급하게 서두르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철저한 준비만이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중국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흔히 ‘중국에서는 관시(關係)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미술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뢰를 중시하는 중국인들의 특성상 무리한 진출은 되레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전 중국에 진출하는데 무려 10년 이상이 소요됐습니다. 10년 동안 얻은 노하우가 상당하죠. 이제 이런 노하우를 후발 주자들에게 제공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