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카발라 / 모나코

본인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를 보면 아우구스투스가 재임하는 기원전 29년에 이르러 로마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황제에 오른 아우구스투스는 지중해 패권을 장악한 후 영토 확장을 중단하고 체제 안정을 위한 정책으로 돌아선다. 50만 명에 이르던 병력을 16만8000명으로 대폭 감축하면서도 법치에 기초를 둔 정치를 실현해 그가 재임한 41년을 포함한 200년 동안을 역사가들은 팍스로마나(로마의 평화)라고 칭송한다. 그렇다면 아우구스투스는 지중해를 장악한 이후 왜 영토를 확장하지 않은 것일까. 이에 대해선 다양한 학설이 제기되고 있으나 현재로선 정복할 가치가 있는 땅이 없다고 판단해서라는 설이 유력하다. 지중해 위쪽 게르만족들이 사는 땅은 산림과 습지대로 이뤄져 있고 사막으로 된 북부아프리카와 추운 러시아, 스칸디나비아의 땅은 평온하고 따뜻한 지중해에 비하면 실효성이 떨어진다. 이처럼 아우구스투스를 비롯한 고대 유럽의 영웅들에 비친 지중해는 풍요와 축복의 상징이었다. 지중해 기후는 사람이 생활하기에 가장 적당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 4대 문명 중 황하문명을 제외한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에게문명이 지중해를 중심으로 형성됐다는 게 이를 방증한다. 이들에게 지중해는 삶의 근원이자 문명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 노래 ‘오 솔레미오’에서 느껴지듯 지중해는 강력한 햇빛과 청명한 바다가 일품이다.선박왕 오나시스를 비롯한 유럽의 거부들은 지중해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 별장을 지어 생활해 왔다. 물론 유럽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호텔들 모두 지중해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중에서도 그리스는 지중해의 꽃으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정치와 경제의 중심 국가였던 런던, 파리와 비교해 보면 그리스는 변방국가에 불과하지만 고대문명의 중심지답게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화려한 일상생활을 뒤로 하고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그리스다. 이마레트호텔은 그리스에서 우아함과 세련미를 갖춘 최고급 호텔로 손꼽힌다. 이마레트호텔은 수도인 아테네에서 비행기로 1시간10분 떨어진 북부 카발라(Kavala)에 위치해 있다. 에게해가 보이는 카발라만에 자리 잡은 카발라는 데살로니카 다음으로 큰 북부 그리스의 항구도시로 14세기 후반부터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고대 로마시대 네아폴리스로 불려진 이곳은 발칸전쟁 당시 불가리아에 점령당하는 등 수많은 외침을 겪은 뒤 비로소 1913년에 가서야 그리스에 귀속됐다. 때문에 도시 곳곳에는 아직도 이슬람교도 지역과 비잔틴문화의 성곽이 남아 있다. 이마레트호텔은 카발라에서 가장 높은 파라기아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이 호텔이 설립된 것은 지난 1817년으로 이 지역 지방관으로 무하메드 알리가 취임하면서 학교와 행정기관 등 새로운 도시정비 작업에 들어가면서부터다. 건립 초기 이마레트는 학교와 모스크, 호텔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됐다. 이후 이마레트는 수차례 리모델링 공사를 한 후 26개의 딜럭스룸과 스위트룸을 갖춘 호텔로 개조됐다. 호텔의 지붕은 그리스식 주택의 전형처럼 돔 모양으로 돼 있다. 이마레트호텔을 방문하는 투숙객들은 곡선과 직선이 조화를 이룬 넓은 다갈색 회벽에 압도된다. 건물 내·외부는 아치로 연결돼 있다. 아치는 직선 건축자재를 사용한 이집트-그리스양식과의 차별화를 위해 사용한 건축양식으로 지중해를 중심으로 널리 사용됐다. 이마레트호텔의 아치들은 복도의 천장, 벽난로와 조명, 심지어는 실내 수영장까지 연결해 주고 있다. 건물에 들어서면 가장 처음 만나는 것은 건물을 연결하는 3개의 정원이다. 그중 수중정원은 화려한 관상식물과 다갈색 회벽에 하얀 패브릭 의자가 멋진 조화를 이룬다. 대리석 분수대가 아름답게 장식된 다른 두 정원 역시 아늑한 그리스의 풍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객실과 스위트룸은 3개의 정원을 따라 각각 배치돼 있다. 객실은 에게해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개방적으로 설계됐고 가구와 벽난로는 각 방의 컨셉트에 맞춰져 있다. 딜럭스룸에서는 창 밖으로 카발라 항의 멋진 야경을 만끽할 수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항구를 드나드는 배들의 불빛과 주변 주택에서 나오는 조명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면서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고 말한다. 이마레트호텔에 있는 무하메드 알리 하우스(Mohamed Ali Pasha House)는 오랜 역사를 가진 최고급 레스토랑으로 지중해식 요리가 일품이다. 과일과 채소, 샐러드, 허브 등은 호텔이 직영하는 오가닉 정원에서 공수해 온다. 멋진 돔 지붕 아래 만든 실내 수영장과 지중해가 보이는 곳에 위치한 실외 수영장은 이마레트호텔의 자랑이다. 특히 실외 수영장은 지중해성 꽃향기와 분수가 내뿜는 시원한 물줄기가 어우러져 환상의 공간을 연출한다. 남는 시간을 이용해 카발라 시내 문화유적을 둘러볼 수도 있다. 이슬람 유적 중 한 곳인 하맘은 오스만투르크인들이 즐겨 찾았던 대중목욕탕으로 당시의 풍요로움을 엿볼 수 있다. 지중해의 소국(小國) 모나코는 이 나라의 왕비이자 할리우드 스타였던 그레이스 켈리의 맑은 영혼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20세기 거장으로 불린 벨기에 출신 화가 장 미셸 폴롱이 고국인 벨기에보다 모나코에서 여생을 보내기를 희망한 것은 우리에게는 낯설게 느껴지지만 유럽인의 정서에서 보면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다. 입헌 군주제 국가인 모나코는 면적이 1.95㎢로 여의도의 70%에 불과한 작은 나라지만 온화한 기후와 아름다운 경치 때문에 유럽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세계적인 부호들과 예술가들이 말년을 보내고 싶은 곳으로 꼽는 모나코에서 SBM(Sosiete des Bains de Mer) 그룹 계열의 호텔은 단연 인기다. 모나코의 보석이라 불리는 호텔 드 파리는 유명 연예인, 스포츠 스타, 예술가들이 투숙하기를 희망하는 호텔이다. 유럽에서도 숙박료가 가장 비싼 호텔로 꼽히는 이 호텔은 지난 1864년 모나코의 중심가에 세워졌다. 모나코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이기도 한 호텔 드 파리는 국왕 샤를 3세가 카지노 사업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위해 건립한 호텔로 건축가 뒤트루로에 의해 설계됐다. 샤를 3세는 그 때부터 관광과 카지노 사업으로 모나코의 경제 번영을 이루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샤를 3세가 건축가 뒤트루로에게 ‘유럽 부호들이 좋아하도록 지어달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관광과 카지노를 통해 부를 창출하고자 했던 샤를 3세의 작은 소망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로 나타나 이 호텔에는 록펠러, 로스차일드, 밴더빌트, 고든 베넷 등 미국, 유럽의 억만장자들이 애용하게 됐다. 비단 이뿐 만이 아니다. 호텔 드 파리는 1, 2차 세계대전에는 세계 석학들의 회담장으로, 망명 정치인들의 은신처, 전후 복구를 책임질 임시 사령부로 사용되면서 세계인들에주목받았다. 이 밖에도 이곳은 모나코의 왕비로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은막의 여왕 그레이스 켈리와 레니에데공의 결혼 20주년 기념식이 열린 곳으로 유명하다. 호텔 드 파리에 있는 윈스턴 처칠관(Winston Churchill Apartment)은 현대와 고전이 조화를 이룬 곳으로 모나코 항과 지중해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점 때문에 가장 인기가 높다. 윈스턴 처칠을 위해 지난 2001년 문을 연 윈스턴 처칠관은 지중해의 아름다운 햇빛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천장을 유리로 설계했다. 호텔 레스토랑인 루이 15세(Louis ⅩⅤ)와 살레 엠파이어(La Salle Empire), 더 그릴(The Grill), 르 코테 자댕(Le Cote Jardin)은 유럽에서도 음식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1874년 SMB 그룹의 창시자인 프랑수아 블랑(Francois Blan)의 아내, 마리 블랑이 만든 와인 셀러는, 단일 호텔의 와인 셀러로는 세계 최대의 규모다. 40만병의 와인을 보유해 다른 SBM그룹 호텔로 공급하고 있다.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별장들을 보고 있으면 여기가 세계 최고의 부촌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게 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모나코의 아름다움을 두고 호사가들은 종종 이 나라 왕비였던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와 비교하곤 한다. 다메스 광장 언덕에서 모나코 궁전을 보며 그레이스 켈리가 했던 말을 다시금 생각해본다.“나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내가 사랑했던 사람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한 여자로 기억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