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에서 로스쿨(법과대학원)을 졸업한 신출내기 변호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은 어디일까. 돈을 많이 버는 뉴욕 맨해튼의 유명 로펌(법률회사)일까. 대부분의 변호사들에게는 맞는 답이다. 그러나 각 로스쿨의 ‘수석졸업생’들에게는 아니다. 이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은 수도 워싱턴DC에 있는 대법원이다.재판장의 말석에서 일을 도우는 서기에 불과하지만 대법원을 통해 법조계에 입문하는 것이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엘리트 코스의 시작이다. 실제 미 대법원은 신입 직원을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시카고 등 이른바 ‘톱 5’ 또는 ‘톱 10’ 로스쿨에서 3등 안에 든 학생 중에서만 뽑는다. 11~20위권 로스쿨의 경우에는 1등 졸업자에 한해 겨우 원서를 낼 수 있다.이처럼 들어가기 어려운 대법원 직원 중에는 아시아계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 백인들이다. 그러나 백인들 중 30% 이상은 인구가 미국 전체 국민의 2%에 불과한 유대인이다. 이 같은 비율은 미국 법조인들의 꿈인 대법관 숫자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전체 9명의 대법관 중 유대인은 두 명이다. 비율로 따지면 전체의 22.2%이다. 나머지 7명 중에는 개신교가 4명, 가톨릭이 3명이다.유명 대학 로스쿨에 가보면 상황은 더욱 명확해진다. 전체 학생들의 평균 30%는 유대인 학생들이다. UC버클리 법과대학의 유진 볼로크 교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전체 법과대학 교수의 26%가 유대인이다.유대인 법학도들의 우상은 단연 사상 첫 유대인 대법관인 루이스 브랜다이스(Louis Brandeis)다. 1856년 켄터키 주 루이스빌에서 태어난 그는 1877년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보스턴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노동운동과 여성들의 권익 옹호에 앞장섰으며 대통령에 출마한 우드로 윌슨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수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윌슨은 당선 후인 1916년 그를 대법관에 임명했다.물론 유대인 법률가들이 브랜다이스처럼 모두 인권을 중시하고 핍박받는 소수를 옹호해 주는 것은 아니다. 다른 민족 출신들이 느끼기에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변호사들도 수두룩하다. 미국 사회 일각에서는 ‘유대인 변호사’라는 말이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아주 이기적이고 냉혈한 법률가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이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대형 사건을 다루는 월가 로펌에서 영향력 있다는 평가를 받는 변호사는 거의 유대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회사들이 전체 변호사의 절반 이상을 유대인 변호사들로 구성하고 있다. 소속 변호사 거의 대부분이 유대인인 회사들도 한둘이 아니다. 미국의 주요 기업들이 대부분 유대인들이 경영하거나 유대 자본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이들이 법률 문제를 유대인 변호사와 상의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복잡한 송사에 휘말렸을 경우 반드시 이기려고 하려면 아무리 수임료가 비싸더라도 유대인 변호사를 써야 한다는 것은 미국 사회에서는 하나의 불문율이다.유대인들이 법률에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뉴욕에서 활동하는 마틴 스미스라는 유대인 변호사는 “역사적으로 유대인의 생존은 종교와 법에 의존하고 있다”며 “영토가 없었던 유대인을 지켜준 힘은 바로 종교와 이를 구성하는 율법이었다”고 말한다. 유대 민족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법은 이들에게 종교이자 생활 그 자체였다.실제로 유대 종교는 ‘법’에서 시작됐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꼭 지켜야 할 구체적인 법인 10계명을 주었고, 이 하나님과의 계약인 10계명은 유대인들이 지키는 모든 율법의 근간이 되었다. 통상 율법은 모세 5경으로 일컬어지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기록돼 있으나 율법학자들은 이를 613개의 율법으로 나눠 생활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 이 가운데 ‘~를 하라’는 긍정적인 율법이 248개, ‘~를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율법이 365개로 유대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상당히 구체적으로 명시해 놓고 있다.유대인들이 얼마나 법과 원칙을 중시하는지는 음식문화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들은 지금도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분명하게 구분한다. 먹을 수 있는 것을 코셔(kosher)라고 하는데 이는 ‘적절한 또는 옳은’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카슈르트’가 어원이다.코셔는 음식의 형태가 아니라 재료를 선택하고 다루는 법이다. 그래서 중국 음식도 유대인법에 따라 만들면 코셔가 되고 베이글 같은 전형적인 유대인 식품도 유대인법을 따르지 않고 만들면 코셔가 아니다. 그러면 코셔는 어떻게 구분하는가. 유대인들이 말하는 코셔의 기준과 의미를 따지는 책만도 수백 권이 나와 있을 정도지만 간단히 말하면 크게 7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1)채소나 과일 등 식물성 음식은 무조건 코셔지만 동물은 그렇지 않다. 육류의 경우 발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을 하는 것만 먹는다. 소 양 염소 사슴 등은 되새김 위도 있고 발굽도 갈라져 있다. 돼지는 굽은 갈라져 있으나 되새김질을 하지 않으므로 코셔가 아니다. 어류는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어야 코셔다. 연어 도미 조기 등은 지느러미와 비늘을 모두 가지고 있으므로 먹을 수 있다. 상어 고래 미꾸라지는 지느러미는 있으나 비늘이 없어 먹을 수 없다. 오징어 낙지 문어는 지느러미와 비늘이 모두 없어 코셔가 아니다. 조류의 경우 닭 칠면조 종 가금류는 코셔이나 야생 조류와 육식을 하는 조류는 코셔가 아니다. 코셔인 조류의 알은 코셔고, 코셔가 아닌 조류의 알은 코셔가 아니다. (2)먹을 수 있는 동물은 반드시 유대인 법에 따라 도살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적으로’ 고통 없이 도살하는 것이다. 날카로운 칼로 2초 안에 목을 찔러 죽여야 가장 고통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연사한 동물이나 다른 동물과 싸우다 죽은 동물은 먹지 못한다. (3)어떤 동물이든 피를 완전하게 제거해야 한다. 생명을 귀히 여기는 때문이다. (4)허용되는 동물이라도 신경계와 혈관은 먹지 않는다. (5)(부모와 자식간으로 생각될 수 있는)육류와 우유를 함께 먹을 수 없다. 치즈와 고기를 함께 먹는 햄버거나 치즈버거는 금물이다. 고기를 먹고 나서 곧바로 우유를 마셔도 안 된다. 뱃속에서 섞이기 때문이다. 고기를 먹은 뒤 3~6시간 기다렸다가 우유를 마신다. (6)육류를 먹을 때 사용했던 식기를 우유를 담는 그릇으로 사용할 수 없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유대인 가정에서는 보통 그릇이나 포크 나이프 등이 두벌씩이다. 각각 따로 보관하고 설거지도 따로 한다. (7)유대인들이 만들지 않은 포도주는 먹을 수 없다. 포도주는 고대부터 제사 의례 때 사용한 성스런 음식이라는 생각에서다.유대인들이 지금도 코셔 전통을 지키는 이유는 뭘까.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건강이지만 그것만으로 해석하기는 힘들다. 유대학자들의 답은 “경전에 그렇게 쓰여 있어서”라고 한다. 성서에 나와 있기 때문이지 별다른 이유는 없다는 설명이다. 결국 코셔를 지키는 것은 ‘신성함과 거룩함’을 지키는 것이다.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먹는 행위에서부터 ‘법과 원칙’을 지키고 연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