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컬 ‘명성황후’가 올해로 11살이 돼 관객을 찾는다. 아직은 해외 뮤지컬들로 넘쳐나는 우리 공연계에 한국 창작 뮤지컬의 장기 공연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뿐만 아니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해외 무대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뮤지컬의 본고장인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와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그리고 아시아 각국에 진출, 갈채를 받았다. 뮤지컬 분야에서 한류 바람을 일으킨 선두주자인 셈이다. 후폭풍도 일으켰다. 명성황후에서 비롯된 뮤지컬 열풍은 국내 공연계에 ‘뮤지컬 르네상스’를 연출하고 있다. 올해 국내 뮤지컬 시장 규모는 1000억원대가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뮤지컬이 하나의 문화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 디딤돌을 명성황후가 제공했다는 평가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4년 간의 준비를 거쳐 1995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처음 올려졌다. ‘설마’라는 걱정 속에 올려진 이 작품은 관객을 끌어 모으며 국내 뮤지컬의 신기원을 열었다. 10년 동안 660회를 공연했으며, 국내외 관객 88만명을 맞았다. 아시아 뮤지컬 최초로 뉴욕 브로드웨이와 런던 웨스트엔드에 선보여 화제를 낳기도 했다. 이문열 원작에 김희갑 작곡, 양인자 작사를 바탕으로 윤호진 에이콤 대표가 창작한 이 뮤지컬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매년 작품 내용을 수정해 나갔다. 꾸준한 업그레이드를 통해 한국 고유의 정서를 박진감 넘치게 표현함으로써 세계 무대에서도 호평받을 수 있었던 것.지난해 10주년을 맞았던 명성황후는 올해부터 새로운 10년을 다시 시작한다. 그에 발맞춰 배우들의 세대 교체도 대폭 단행했다. 그동안 수많은 뮤지컬 스타들을 배출해 낸 대표적 스타 산실이기 때문에 명성황후의 ‘뉴 페이스’에 갖는 기대가 크다. 대원군 역에는 국내 뮤지컬 배우 1세대로 통하는 남경읍이 캐스팅됐다. ‘사랑은 비를 타고’ ‘환타스틱스’ 등 30여 년 동안 수많은 작품을 통해 전문 배우로서의 기틀을 닦아 온 그는 뮤지컬 스타 남경주의 형이기도 하다. 남경읍이 연기하는 대원군은 기존과는 차별화된 모습이 될 것이다. 대원군의 정치적 모습보다 한 인간으로서 겪는 고뇌와 번민에 포커스를 맞춘다는 계획이다. 강한 눈빛이 살아있는 일본의 악랄한 미우라 장군 역은 ‘카르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에서 관객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를 발휘했던 김법래가 맡는다. 악역이지만 극중 가장 강력한 이미지를 연기하는 미우라의 변신을 기대해 볼 만하다. 명성황후와 애틋한 감정을 소통하게 될 홍계훈 장군에는 ‘겨울 나그네’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이상현이 합류하게 된다. 이 밖에 명성황후는 이태원과 이상은이, 고종은 윤영석과 오성원이, 홍계훈 장군 역에는 이필승이, 미우라 역에는 이종문이 더블 캐스팅됐다. 이들 캐스트는 예술의전당 공연뿐 아니라 중국 베이징, 상하이 공연 및 지방공연을 통해 ‘명성황후’의 명성을 이어갈 예정이다.10년 간 명성황후에 올인해 온 이태원은 브로드웨이에서 먼저 이름을 알린 전문 뮤지컬 배우. 줄리아드음대와 피바디 컨서버토리에서 학사, 석사 학위를 받은 재원으로 1995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왕과 나’로 첫발을 내디뎠다. 풍부한 성량과 독특한 음색을 자랑하는 그녀는 1997년 8월 명성황후 뉴욕공연에 합류하면서 뉴욕타임스 전면에 다뤄지는 등 이목을 집중시켰다. 더블 캐스팅된 이상은은 각종 국제 성악 콩쿠르와 오페라를 통해 차세대 성악가로 주목받아 오다 명성황후를 통해 뮤지컬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평소 이태원을 존경해 오던 이상은이 명성황후의 LA공연을 보면서 뮤지컬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어 오디션을 통해 합류한 것. 그녀는 역대 명성황후 역 중 섬세한 여성적 감수성과 외유내강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배우로 정평이 나 있다.뮤지컬 명성황후는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 구한말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이권 다툼 속에서 국모를 지키지 못했던 한 많은 사건을 가슴 찡하게 풀어낸다. 서곡과 함께 막이 오르면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장면이 스크린을 채운다. 1945, 1944, 1943…. 빠른 속도로 줄어가는 연도. 1896년에 멈춘다. 무대가 밝아지면 장소는 히로시마 법정. 명성황후 암살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재판은 암살자들의 무죄로 끝나고 천왕에 대한 충성의 소리만 울려퍼진다. 시대는 다시 거꾸로 흘러 1866년 봄. 당시 한반도의 정세는 각 국의 이권다툼으로 혼란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대원군은 강력한 쇄국정책과 함께 집권세력 유지를 위해 친인척 민자영(명성황후)을 고종과 결혼시킨다. 궁정 생활에 적응한 명성황후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아름다운 여성으로 성장하고 수태 굿을 치르면서 건강한 옥동자를 잉태한다. 이때 명성황후는 고종에게 친정을 권하게 되고 이로 인해 대원군과의 갈등이 깊어진다. 결국 대원군의 하야와 함께 고종은 정권을 잡는다. 이어 명성황후의 활약은 날로 커져 각 국 대사들에게 두각을 나타내는 총명한 외교적 인물로 성장한다. 이때 한반도를 발판으로 침략의 야욕을 불사르던 일본은 명성황후가 친러 정책을 펼친다고 판단하고 경계하기 시작한다. 1895년 명성황후의 외교적 노력으로 삼국 간섭이 체결되면서 경회루에서 축하연이 벌어진다. 이제 일본의 국제적 입지는 더욱 약화되고 한반도 침탈 야욕을 접어야 하는 곤란한 처지에 이른다. 결국 일본의 국가 정책상 큰 걸림돌로 지적된 명성황후를 조용히 암살하기로 결정하고 한반도는 비극적인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성공은 기존의 뮤지컬 공연관객층을 넓혔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이 공연의 관객들이 대부분 유료 입장객이었으며 뮤지컬을 처음 접한 관객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은 우리 공연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