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어릴 때만 해도 세상의 지식과 정보는 대개 사람을 통해 전달됐다. 방학 때 서울에서 유학하는 선배가 내려오면 그의 집은 항상 동네 후배들로 북적댔다. 대학생활은 어떠냐, 주로 무슨 공부를 하고 어떤 책을 보느냐, 하다못해 그 선배가 술값 떼먹고 도망친 무용담이나 미팅에서 만난 여학생한테 보기 좋게 차인 얘기까지도 우리에겐 초미의 관심사였고 닿지 못할 신기루였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지식과 정보가 중요한 만큼 사람이 중요했다. 어떤 사람을 아느냐가 인생을 좌우하고 누구를 섬기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예가 허다했다. 그에 비하면 요즘 젊은 세대들에겐 사람이 훨씬 덜 중요하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정보가 굳이 사람을 매개로 하지 않고도 다른 경로로 얼마든지 전파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미디어나 인터넷이 사람보다 한결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과연 지금 세상은 지식과 정보의 홍수시대다. 컴퓨터를 켜고 검색만 하면 동서고금의 수많은 지식과 정보가 범람하는 세상이다. 오죽하면 지식과 정보가 선택의 영역으로 편입됐으랴. 그러니 사람의 중요도가 과거보다 현저히 떨어지고 그 후유증으로 선배나 어른을 제대로 섬기지 않는 버릇없는 세상이 되어간다. 가정에서는 어른들이 위축되고 사회에서는 원로들이 대접 받지 못하는 이유도 그런 세태의 반영이다. 식당에서 애들이 날파리처럼 날아다녀도, 청소년들이 노인 앞에서 담배를 꼬나 물고 있어도 아무도 이를 나무라지 못한다. 애들에게 예절과 버릇을 가르치는 데는 역사만한 게 없다. 어려서부터 역사를 읽히고 가르치면 애들의 인성교육은 저절로 이뤄진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다. 가령 삼국시대만 해도 김유신이 없고 김춘추가 없었다면 삼국통일은 어려웠다. 그 뒤 문무왕의 대당(對唐) 강경책과 대동화합 정책이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 민족이 존재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고구려가 망한 뒤 삼국 백성들이 힘을 합쳐 당나라를 몰아내지 않았다면, 또는 많은 사람들이 오판하고 있듯이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지금쯤 우리나라는 중국의 변방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역사는 끝없이 물고 돌아가는 수레바퀴처럼 이어져 오늘에 이른다. 할아버지가 하룻밤 마신 약주 한 잔이 아버지를 낳았을 수도 있고, 아버지의 출타가 연분으로 이어져서 자신을 만들기도 한다. 부모 쪽에서야 자식이 누가 나와도 그만이지만, 자식 편에서 자신의 존재를 필연으로 가정하면 이 세상에 내가 살고 있는 것은 확률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자 불가사의다. 부모 대만 해도 그럴진대 그 부모의 부모를 거슬러 조선, 고려, 삼국시대까지 올라가면, 지금 자신이 이 세상 어느 한 곳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가로수를 보고 있기까지, 인간의 머리로는 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우주의 섭리와 도저한 화엄의 진리를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역사엔 흥한 역사만 있는 게 아니다. 망한 역사도 역사다. 그 망한 역사의 이면에도 사람은 있다. 사람이 흥하면 역사가 흥하고 사람이 망하면 역사도 망한다. 그래서 역사를 배우면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는다. ‘병이지성(秉彛之性)’이란 인간으로서 떳떳한 길을 지켜나가려는 타고난 천성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가만히 두어도 저절로 옳고 바른길을 찾아가려는 본성이 있는데 그걸 일컬어 병이지성이라고 한다. 병이지성을 일깨우는 데 역사만한 게 없고, 역사를 알면 사람과 근본을 중시하는 고급 인성교육이 가능하다. 그 바탕 위에서라야 비로소 현대를 살아가는 지식과 정보도 유용해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