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린 체구, 나풀거리는 단발머리, 천진난만한 눈, 하얀 치아가 돋보이는 미소…. 바로 ‘통통 튀는 팔방미인’ 탤런트 한지민(24)의 매력이다. “저는 개띠거든요. 올해가 개띠 해니깐 뭔가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아요. 올해는 ‘배우 한지민’으로 비상할 겁니다.”그녀는 2003년 드라마 ‘올인’에서 송혜교의 아역으로 연기생활을 시작해 ‘좋은사람’ ‘대장금’ 등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지난해 ‘부활’과 현재방영되고 있는 ‘늑대’에서는 여주인공 자리를 당당히 꿰찼다. 첫 영화 출연작인 ‘청연’에서는 장진영과 김주혁이라는 톱스타들에게 주눅 들지 않고 물오른 연기를 보여줬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의 새별로 주목받은데 대해 그는 “갑자기 사람들로부터 주목받는 것이 너무 기분 좋다”고 솔직히 말한다. 청순한 소녀에서 당차고 매력 있는 여인으로 성장한 한지민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본다.“어릴 적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아서 그런지 어른들을 공경할 줄 안다는 말을 주위에서 들어요. 3대가 함께 모여 살고 있는 덕분에 사회생활도 무난하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그녀의 가족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언니까지 모두 여섯 식구다. 서울 토박이인 그녀는 3대가 모두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을 정도로 한 곳에서만 뿌리 깊게 살아왔다. 서울여대 인간개발학부 사회사업학과 02학번인 그녀는 현재 학교를 1년 휴학 중인 상태. 올해 4학년으로 복학할 예정이다. “연예인들이 바쁜 활동 때문에 학교에 자주 빠진다는 편견을 심어주었기 때문에 전 오히려 더 악착같이 학교에 나갔어요. 대학 4년 동안 휴학도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죠. 바빴지만 연극영화과 같은 방송 관련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교수님들의 배려를 바랄 수 없었어요. 혹여나 출석을 못하게 되면 리포트를 많이 내는 작전으로 학점을 땄죠.” 가족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노인 문제나 아동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 그녀는 요즘도 짬이 나면 서울 은평구의 한 노인복지회관에서 봉사할 정도로 전공에 애착을 갖고 있다. “오드리 헵번이나 안젤리나 졸리 같은 ‘스타폴리틱스’가 제 꿈이죠. 사회사업에 스타로서의 가치를 적극 활용하고 싶어요.”‘스타폴리틱스’는 스타들의 정치행위를 일컫는 말로 스타들의 영향력이 커지며 생겨난 신조어다. 사망할 때까지 제3세계 아이들을 돕는데 힘쓴 오드리 헵번이나 유엔 친선대사로 적극적으로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는 안젤리나 졸리가 한지민의 ‘롤 모델’인 셈.얼마 전 개봉한 영화 ‘청연’에 그녀가 캐스팅된 데에는 재미난 비화가 숨어있다. 그녀가 연기한 이정희는 주인공인 박경원(장진영 분)과 애증의 감정을 교류하는 비중이 큰 인물이다. 감독이 캐스팅에 심혈을 기울인 것은 인지상정. 당시 무려 500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던 이정희 역 공개 오디션에서 적임자를 찾지 못하자 조감독의 추천으로 한지민은 단독 오디션을 보게 된다. 오디션 당일 그녀에게 주어진 과제는 트로트 가요 부르기. 이정희가 극중 선술집에서 동료 비행사들과 함께 ‘떳다 보아라 안창남’을 부르는 신을 위한 연기 테스트였다. 그녀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소양강 처녀’를 멋들어지게 불렀고 감독은 즉시 오케이 사인을 던졌다. 500명을 보고도 성이 차지 않았던 감독의 마음을 단번에 움직인 것. “이정희는 식모살이로 각고의 노력 끝에 돈을 모아 자신의 꿈인 여류비행사가 되려고 일본 비행학교로 유학을 가는 독립심이 강한 여성이죠. 잡초처럼 강인한 여성인 이정희를 연기하면서 지금까지 몰랐던 내면을 알게 됐어요. 늘 착하고 여린 여성을 연기해 와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갈증이 심했던 차에 단비처럼 찾아온 배역이었어요. 제 연기 인생에 전환점이 된 작품이었죠.”실제로 그녀는 이 영화를 찍은 뒤 수많은 언론사들과 주변 지인에게 끊임없는 갈채를 받았다. 오히려 주인공인 장진영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았을 정도. 청연의 윤종찬 감독 또한 “이번 영화의 가장 큰 수확은 한지민의 발견”이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운칠기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운도 좋았지만 신인답지 않은 연기 욕심과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이 그런 평가를 낳았다. 일화가 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지난해 12월 중순께 얇은 여름옷만을 걸친 채 비를 맞는 장면을 찍어야만 했다. 촬영이 끝나면 몸에 있던 열기가 빠져나가 머리카락에 금세 살얼음이 얼 정도의 추위였다. 그녀는 시종일관 이빨을 부딪치며 떨고 있었지만 감독에게 재촬영을 부탁할 정도로 적극성을 보여 스태프들을 놀라게 했다. 결국 그녀는 이 영화를 기폭제로 호평 받는 영화배우로 거듭났다.요즘 그녀는 서울과 통영을 오가며 ‘늑대’를 촬영 중이다. 160cm, 41kg의 아담하고 가녀린 체구의 소유자인 그녀가 빡빡한 스케줄과 힘든 촬영을 견딜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뭐든지 잘 먹고 어디서나 잘 자요. 세상에 맛있는 게 정말 많더라고요. 요리는 못하지만 먹는 것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죠. 만두와 치킨 귀신이고 베트남 쌀국수와 곱창을 즐겨 먹어요. 요즘은 제대로 된 수면시간이 하루에 두세 시간밖에 되지 않지만 이동 중에 ‘쪽잠’을 자서 보충하죠. 쿠션을 활용해 좌석을 침대처럼 만들어주면 배기는 거 하나 없이 침대보다 편해요. 큰 담요 하나 덮어주면 어떤 상황에서도 깨지 않고 푹 잘 수 있죠. 잘 자고 잘 먹으면 웰빙 아닌가요?”재치가 넘친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과중한 스케줄에 지치고 스트레스를 받을 법한데 그런 기색이 전혀 없이 생기 발랄, 톡톡 튄다.“힘든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디는 법을 이영애 선배한테 배웠어요. 대장금 촬영으로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친언니처럼 믿고 따랐거든요. 어떤 난관에 부닥쳐도 톱스타인 이영애 선배는 촬영장에서 전혀 내색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어느 날 선배가 직접 읽던 명심보감에 ‘새겨 읽으면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을 적어 선물해주셨죠. 그때부터 명심보감을 항상 곁에 두고 읽고 있어요.”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을 묻자, ‘박하게 베풀고 후한 것을 바라는 자에게는 보답이 없고, 몸이 귀하게 되고 나서 천했던 때를 잊는 자는 오래 계속하지 못하느니라’ 라고 대답한다. 바른말 잘했던 당찬 의녀 신비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순간이다. “배우는 남들에게 보여주는 직업이에요. 어떻게 나를 드러내야 할지 잘 알고 있죠. 얼굴이 어려보이는 편인 데다 작은 체구가 콤플렉스였는데 오히려 그런 면이 더욱 사랑스러워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키가 작아서 와이드샷보다는 클로즈업 신이 잘 어울리고 비주얼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눈빛 연기’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결심했죠.”콤플렉스를 장점으로 승화시키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자세가 돋보이는 연기자다. 예쁜 얼굴만큼이나 마음도 예쁜 한지민. ‘늑대’에서 백화점 사주의 외동딸로 3개월밖에 살지 못하는 시한부 인생을 연기하며 안방극장을 장악하는 것도 시간문제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