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 재테크 고수 김상수씨 ‘투자의 정석’

1월 중순 토요일 오후. 재야의 재테크 고수인 김상수씨(49·서울 흑석동)를 여의도의 한 고급 중식당에서 만났다. 김씨는 온화한 인상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황우석 파문’을 꺼내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인 뒤 슬그머니 돈을 번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는 “돈 번 게 별로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평범한 은행원이었다가 재테크로 최소 50억원 대의 재산을 모은 사실을 이미 알고 왔는데도 말이다. 실제로 은행원 출신인 김씨는 자신의 돈 번 얘기가 잘못 전해져 자칫 국세청의 세무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무척 두려워하는 듯했다. 물론 지금까지 탈세해본 적이 없지만, 털어서 먼지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게 김씨의 논리였다. 코스 요리가 중반을 넘어서자 그는 실타래가 풀리듯 재테크 성공 보따리를 풀어놨다. 씨가 재테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은행 임원을 바라볼 나이가 되면서부터였다. 임원 승진을 못할 바에야 은퇴 후 돈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은행원으로 근무하면서 쌓아놓은 인맥과 경험을 재테크에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그는 우선 부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에 안테나를 세웠다. 전경련 상공회의소 등 각 기관이 주최하는 조찬 모임을 부지런히 쫓아 다녔다. 이런 곳에는 ‘부자’들이 모이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을 알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판단했다. 부자들과 식사 약속을 잡았고 이들이 어디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연구했다. 이후 ‘부를 만드는 사람은 남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한때 탐욕스럽다며 부자들을 시기했던 자신을 탓했다. 그때부터 부자들에 대한 자세를 완전히 달리했다. 부자들의 뒤에 ‘줄을 서고’ 그들을 분석하기 위해 노력했다. 부자들의 생각을 읽으면 빚을 내더라도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김씨는 “부자들을 분석하고 그들의 행동을 따라하다 보니 어느새 부자가 돼 있었다”고 회고했다.김씨는 주식투자에 일가견이 있다. 그를 추종하는 세력도 적지 않다. 김씨의 투자원칙은 ‘초기투자·장기투자’다. 가치주를 초기에 발굴해 장기간 넣어둔다는 게 그의 전략이다. 가치주를 고를 땐 기업의 ‘원천가치’에 주목했다. 김씨는 기업이 잘 되려면 △구성원의 능력 △최고경영자(CEO)의 능력·자세 △미래 비전 등의 순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현재의 우량주보다 ‘우량주가 될 가능성이 높은 종목’을 발굴하는 데 주력했다.기업 재무제표 가운데 영업이익을 가장 중시했다. 장사해서 많이 남을수록 가치가 높은 기업이란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업이익이 일시적인 현상은 아닌지, 영업이익이 급증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차분히 분석해 나갔다. 당기순이익을 볼 땐 항상 특별요인에 의한 순익발생이 없는지 살폈다. 버블을 경계한 것이다. 이렇게 고른 개별 종목은 장독에 담아 땅속 깊이 파묻어뒀다. 장기투자 원칙을 지킨 것. 성장 가능성이 높은 우량 종목에 장기 투자하면 우선 매일 주식시세판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니 좋고, 장기적인 수익률이 대체로 높게 나오기 때문에 좋으며, 배당까지 받을 수 있어 일석삼조란 게 김씨의 설명이다.김씨는 올해 주식시장이 작년처럼 활황세를 보이기는 어렵겠지만, 급락하지도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적어도 내년까지는 주식시장이 꺼지지는 않을 것이란 게 김씨의 예측이다. 김씨는 아직 전셋집에 살고 있다. 목돈을 아파트에 묻어둘 이유가 없다는 게 김씨의 소신이다. 대신 목돈을 △상가빌딩 △토지 △주식 등에 분산 투자해 놓고 있다. 특히 부동산에 대해선 종목을 가리지 않고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 김씨는 지금까지 7~8개 대학원 등에서 부동산 관련 수업을 받았다.하지만 부동산 전문가인 김씨도 항상 투자에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990년대 초 상가에 목돈을 넣었다가 투자금을 떼이는 쓰라린 실패를 경험했다. “당시 강남 30평형 대 아파트 한 채 값을 떼였다”는 게 김씨의 설명. 실패 원인을 “분양받아 편하게 살자”는 마음가짐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가치가 상승하지 않는 물건은 투자가치가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때문에 김씨는 개발을 통해 가치를 높이는 부동산 투자방법을 선호하고 있다. 90년대 중반 학원이 밀집한 지역의 건물을 사들여 고시원으로 리모델링했다. 20~30개의 고시원이 연중 풀가동되면서 매년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올리고 있다.2000년 초에는 강남 역세권 인근에 상가빌딩(지상 6층 건물)을 한 채 지었다. 지하철역과 붙어있어 사무실이나 술집, 음식점 등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지상 6층 건물이어서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했지만, 5~6층을 복층으로 튼 후 이 공간을 주거시설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상가주택인 셈이다. 엘리베이터를 넣는 대신 공간의 효율성을 높여 부가가치를 창출했다는 게 김씨 얘기다. 건물 관리인과 경비에겐 남들보다 높은 월급을 주고, 매달 이발 비용까지 챙겨줬다. 건물이 더욱 깨끗하게 관리된 것은 물론이다.김씨는 이 상가주택을 3년 만에 처분해 ‘상당한’ 시세 차익을 올렸다. 특히 매각할 때 ‘내부공간을 이런 식으로 활용하라’는 구체적 지침을 매수 희망자에게 제시해 두 시간 만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도록 했다. 예를 들어 1층 A점포에는 패스트푸드점을 입점시키고, 여의치 않으면 주변 사무직원들을 위한 복집, 이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사무용품 전문점을 추천하는 식이다.최근엔 수도권 일대의 토지(임야)에 목돈을 넣었다. 땅 덩어리가 크다보니 주위 지인들과 공동투자 형태로 매입했다. 이 땅 역시 단순히 주변 개발에 따른 시세 차익만을 노린 게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개발에 나섰다. 김씨는 이 땅을 전원주택지로 개발하기 위해 도로를 내고 터를 닦았다. 물론 개발비용이 적지 않게 들었지만, 이 같은 단순 작업만으로 이 땅의 가치가 세 배 이상 뛰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현재 착 가라앉은 토지 시장 분위기를 감안해 더 오를 때까지 장기 투자할 생각이다.얼마 전 후배가 마포에 상가 한 곳을 계약했다면서 김씨를 찾아왔다. 후배는 삼겹살집을 운영할 계획이었다. 권리금만 2억원 이상 붙어있는 상황이었다. 김씨는 입지 가격 등을 살펴본 뒤 후배를 크게 꾸짖었다. “손쉽게 다른 사람의 노력에 편승하려 한다”고 질타했다. 스스로 가치를 높일 생각은 하지 않고 남이 열심히 일해서 권리금을 높여 놓은 곳을 고르는 후배가 못마땅했다. “거기 가면 망한다”며 계약을 취소하도록 종용했다. 후배는 결국 매매계약을 취소했다.이후 후배와 함께 서울의 다른 곳을 물색했다. 마침 여의도에서 빈 상가가 한 곳 눈에 띄었다. 복집을 운영하다 장사가 안돼 망한 곳이었다. 한 번 망했던 곳이어서 그런지 수 개월째 매수자와 세입자를 찾지 못해 텅 비어 있었다. 김씨는 입지는 나쁘지 않은데 장사가 안돼 망한 곳이니만큼, 후배가 열심히 개척하면 큰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계약을 종용했다. 후배는 이 상가를 계약한 후 음식점을 차려 ‘죽기 살기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장사가 잘 돼 짭짤한 이익을 내고 있다. 주변 중개업소에선 이 상가에 1억원 이상 권리금까지 붙어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김씨는 정부 규제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불로소득을 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상당한 자기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돈 벌기가 어려울 것이란 진단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와의 동업자 시대’는 지나갔다고 했다. 즉 이전에 투자 수익이 발생할 경우 정부가 30% 안팎의 세금을 걷어갔다면, 지금은 최고 60~70%를 가져가기 때문에 이미 정부주도 시장으로 바뀌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이런 상황에서 ‘구름처럼 몰려다니는’ 재테크를 해선 안 된다고 김씨는 강조했다. 배추가격이 높다고 너도나도 배추를 심으면 결국 배추가격이 폭락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 오피스텔 시장이 유망하다고 우르르 오피스텔로 몰리면 결국 정부 규제를 자초하고 만다. ‘들쥐 재테크’를 경계하라는 말이다. 남이 생각하지 않는 ‘틈새’를 발굴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소비자가 이용할 수밖에 없는 부동산 상품을 찾아 개발하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김씨는 귀띔했다. 돈을 쉽게 벌려고 해선 안 되고 끊임없이 연구하되, 한 번 투자하면 최소 2~3년 간 중장기로 봐야 한다는 게 김씨의 지론이다. ☞ 김씨의 투자 노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