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정재호의 미학세계

누가 더 높이 올라가는지 경쟁이라도 하듯 하늘 높이 치솟는 아파트를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주거 공간으로 생각하는 이가 있는 반면 재산 증식을 위한 수단과 소유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도 있다. 커다란 화폭 가득 아파트를 그리는 작가 정재호. 그가 바라보는 아파트는 어떤 대상일까. 화면 속에 등장하는 그곳은 왠지 모를 음울함이 묻어나고 곧 무너져 버릴 듯한 폐가의 느낌도 난다. 서울대 미대와 동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이력을 떠올리며 ‘수묵화적 느낌을 살리려고 했나’라고 생각해 보지만 그의 그림 속에는 분명 시대의 우울이 담겨있다. 그렇다면 그는 아파트 혐오론자인가. “한동안 야산이나 그리 높지 않은 건물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야경이나 낮 풍경을 그렸습니다. 지금과 같은 아파트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03년께부터죠. 자하문 터널 위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를 우연히 발견하고 호기심에 그곳에 가보았습니다. 철거 대상 아파트로 당시 한 동에 한두 가구 정도만이 거주하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버리고 간 물건들을 들춰보다가 그 속에서 앨범을 발견했습니다. 70년대부터 현재까지, 누군가의 30여년 삶이 담긴 사진들을 보면서 어렸을 때 생각이 떠오르더군요.”어린 시절 달동네 월세방을 옮겨 다니며 살던 그에게 아파트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해인 1978년, 동네 산 아래에 들어선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주인집 아들과 싸우면 이유를 불문하고 그의 잘못이 되어 부모님이 집주인에게 사과하지 않아도 됐다. 교문 앞에서 바라다 보이는 아파트를 가리키며 “저 집이 우리 집이야”라는 한 마디만으로 뿌듯함도 느낄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함께 떠오르는 오래된 아파트는 추억의 공간으로서, 그에게는 ‘사는 집’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아파트에 밴 의미들“2년쯤 전 어려서 살던 동네에 다시 가봤어요.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널찍한 길이 나있었지만 제가 살았던 고려아파트는 아직 그대로 있더라고요. 그곳에 있으니까 그 안에서 소년 시절의 제가 튀어나올 것처럼 그때 기억이 생생해지더군요. 일반적으로 서민 아파트를 ‘노후하여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빨리 철거되거나 재건축되어야 하는 도시의 흉물’이라고 말하지만 그곳을 찾아다니면서 오래된 아파트가 지닌 풍부한 의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청운시민아파트, 한남맨션, 삼일아파트, 회현시범아파트, 대성맨션아파트, 금화시민아파트…. 한국화의 매체로 지역성, 시간성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그에게 해법을 제시한 것이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에 지어진 이런 아파트들이다. 경제적 가치를 상실한 늙은 아파트는 도시의 쓰레기로 빨리 치워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그 앞에 바짝 다가서서, 그리고 그 안을 거닐면서 낡은 창틀과 어지러운 베란다와 스티로폼 화단으로 이루어진 그곳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 그가 그린 ‘냉천동 기념비-금화시민아파트’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집집마다 창문의 크기와 모양이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린 것이 아니라 실제 모습을 그대로 그린 것이다. 건축비를 절감하기 위해서 시에서 아파트 프레임만 만들어 주고 속 구조는 그곳으로 이주해 들어오는 사람들이 각자 미장공이나 설비공을 불러서 완성했기 때문에 이렇게 다채로운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맨 꼭대기층 집은 베란다 위에 슬레이트 지붕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슬레이트 지붕은 판자촌의 주거 양식이 아닌가. 아파트라는 새로운 곳으로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살던 생활 방식이 드러난 것이다. 정재호가 서민 아파트에 이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비슷한 시기에 민간 업체의 자본으로 지어진 시범 아파트다. 판자촌 철거를 목적으로 시에서 건설한 서민 아파트와 달리 당시 유학을 다녀 온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각과 아이디어를 발휘해 설계한 이런 아파트는 다양한 건축적 시도가 드러나 있는 게 특징이다. 남산 순환도로에서 남대문으로 내려가는 길 아래편에 있는 회현시범아파트는 남산으로 이어지는 경사면에 옹벽과 축대를 쌓아 지반을 다진 후 세워졌다. 건물 중간에 구름다리가 그려진 ‘회현동 기념비’라는 작품이 바로 이곳을 모델로 한 것이다. 아파트가 중앙도로면보다 낮게 세워져 있어서 수위실을 지나 구름다리를 건너 들어가면 1층이 아니라 6층으로 연결된다. 덕분에(?) 10층 아파트이지만 엘리베이터가 없어도 생활하는데 불편이 크지 않다. “출입구는 1층으로 이어진다는 고정 관념을 깨고 지형에 따라 특징적인 건축을 한 것도 재미있을 뿐더러 다리 아래에는 중정(中庭)이 있어요. 그곳에는 주민들이 내다놓은 장독대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땅 속 깊이 파묻혀 있는 김칫독도 있습니다. 장독대가 베란다에 놓여있는 일반 아파트와 달리 점차 사라져 가는 장독대 문화가 이런 도심의 한복판 아파트에서 이어지고 있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실제로 예전에는 주민들이 공동으로 장독대를 사용하면서 김장철이 되면 이곳에 모여 김장을 담그곤 했다고 합니다.”기념비적 근대 건축물아파트라는 건축물을 그리는 것이라 처음부터 큰 화면을 염두에 두고 그린다는 정재호는 한지에 목탄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동양화 물감이나 아크릴 물감으로 색을 입혀서 그림을 완성한다. 마치 행주를 쭉 짜면 구정물이 흘러나오듯 그가 그린 쇠락한 아파트에서는 시간의 때가 묻어난다. 우리나라에는 고궁만 있지, 어렸을 때 살던 집이나 우리 부모가 살던 집은 오래도록 남아있지 못하고 없어지는 것이 아쉽다는 정재호. 그는 오래된 아파트의 일부를 남겨서 70년대의 주거 공간 모습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건물로 두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그러나 서민 아파트는 실패한 근대 주거 건축물의 산물이라는 비판 속에 2006년 말까지 모두 철거된다. 실물이 모두 사라진 몇 년 후 그의 작품을 보면 더욱더 애틋하게 느껴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