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진단 불황터널 빠져나온 미술시장 ④ 세계적인 한국 작가들

미술시장의 세계화는 한국 미술계에도 커다란 변화를 몰고 왔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한국의 미술시장 개방은 해외 미술의 본격적 국내 유입과 함께 국내 작가들의 본격적인 해외 진출의 계기를 마련했다. 화집이나 잡지 등 주로 간접적 매체를 통해 알려졌던 해외 미술품들의 국내 직접 전시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 경향, 가격, 활동 영역 등에 많은 변화를 불러 왔다. 당시 한국 방문 러시를 이룬 해외 미술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미술품을 한국에 소개하는 일과 함께 재능 있는 한국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발굴, 자신들의 미술시장에 소개했다. 때마침 해외 미술계에서도 국제주의가 본격화하면서 아시아 작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조덕현 육근병 김수자 등은 카셀 도큐멘타, 휘트니 비엔날레와 같은 주요 국제 미술제와 주요 미술관 전시에 연이어 초대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적 작가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이들 작가들의 공통점은 한국의 전통적 정서와 미학을 뿌리로 하되 동시대 미술의 국제적 형식을 차용해 세계인의 보편적 이해가 가능한 작품을 만든다는 점이다. 이렇게 한동안 코리안 아트 붐이 조성되다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몰아치면서 주춤한다. 국제 미술계가 IMF 이후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을 돌연 접어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국제 미술계에서 한동안 암흑의 시간을 갖던 한국의 현대 미술은 90년대 말 서구 미술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와 더불어 또 다른 형태의 부활을 이루게 된다. 이때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부상한 작가가 이불 서도호 등이다.이불은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프로젝트 갤러리에 썩은 생선을 넣은 냉장고 형태의 설치작품을 전시했다가 썩은 생선의 악취 때문에 전시 이틀 만에 철수당했지만 이 스캔들로 국제 미술계에서는 되레 인지도를 더욱 높이며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의 대표적 국제작가로 부상했다. 서도호 역시 2000년 뉴욕의 PS 1 그룹전과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고 이후 런던의 서펜타인 갤러리 등 정상급 전시관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국제 미술계의 스타 작가로 자리잡게 됐다. 이처럼 이불 서도호 등이 주요 국제 미술제를 통해 부상한 한국 작가들이라면 국제 미술계의 시장 팽창과 함께 규모가 더욱 커진 해외 아트 페어를 통해 국제적 인기 작가로 떠오른 일련의 한국 작가들도 있다.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국제 미술계의 가장 큰 변화라면 국제 미술제의 양적 증가와 옥션 및 아트 페어의 시장 장악력 확대를 들 수 있다. IMF 이후 국내의 미술시장은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지만 몇몇의 한국 작가들은 국내의 열악한 시장 상황을 박차고 해외 미술시장에서 승승장구했다. 그중 대표적 작가가 전광영이다. 전광영은 50대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참가한 해외 아트 페어마다 연속 매진을 기록하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전광영은 아트 페어 시장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해외의 유명 미술관과 갤러리 등에서 잇따라 전시회를 갖고 있으며 유럽과 미국에서 탄탄한 시장을 구축하고 있다. 해외 아트 페어를 통해 부상한 또 다른 스타 작가는 배준성이다. 배준성은 사진과 회화의 기법을 독창적으로 접목하며 동서의 문화적 결합을 보여준 작품 이미지로 유럽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배준성 역시 아트 페어에서의 성공 이후 유럽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의 전시가 이어지며, 경매에서도 안정된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이 외에 정광호 노상균 등이 해외 아트 페어에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트 페어와 더불어 국제 미술시장에 불어 닥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옥션의 영향력 확대다. 아시아 지역의 대표적 경매인 홍콩 크리스티경매에서 최근 최소영 이용덕 박성태 함진 유승호 김덕용 등의 국내 작가 작품이 많이 팔렸다. 특히 함진은 주요 국제 미술관 전시, 아트 페어, 경매 등 여러 영역에서 조화롭게 경력을 쌓으며 국제적 작가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해가고 있다.미술시장의 세계화는 국내 작가들의 활동 영역 확대와 가격 변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즉 인터넷의 발달 등으로 작가의 활동상과 가격 등 모든 정보가 오픈된 상황에서 소장가들도 더 이상 수동적으로 정보를 얻는데 그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관련 정보를 취하고 있다. 과거 닫힌 울타리 안에서 적당히 작품 가격을 책정하고 근거 없이 가격을 인상하던 방법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 즉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라는 합리적 기준에 따른 가격만이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국제 미술제와 해외 아트 페어, 세계 유명 옥션이라는 다양한 영역을 통해 국제적 작가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면 과연 어떤 경로를 통해 성장하고 있는 작가가 미래의 블루칩이 될 한국의 작가들일까. 한마디로 다양한 채널들을 조화롭게 활용하며 작품성을 키워가는 작가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처럼 작가의 경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전문 에이전트, 즉 전속 화랑이 있는 작가를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다.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해외의 어떤 작가도 전속 화랑이 없는 경우는 없다. 시장은 변덕스러운 것이어서 한때의 인기는 곧 식을 수 있다. 해외 미술관 전시, 국제 미술제 등 작품성과 비평의 영역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하거나 소개되지 못한 채 경매나 아트 페어 등에서만 인기를 끄는 작가들은 반드시 그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전속 화랑과 긴밀한 협조 하에 위에 열거한 모든 경로들을 전략적으로 균형 있게 추구해 가는 작가들이 롱런하며 안정된 시장을 지켜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