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조기유학 허점 미리 피해가기
최 근 들어 신문을 비롯한 각종 언론에 유학 관련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단순히 ‘유학을 많이 간다’는 수준이 아니라 ‘탈(脫) 한국’ ‘유학 러시(rush)’라는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곧 유학 비용이 연간 10조원을 돌파하리라는 예측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10조원은 삼성전자의 1년 치 순이익과 맞먹는 규모다. 교육 현장에 있는 필자로서는 이런 현상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최근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적 능력을 지닌 가정의 경우 열 명 중에서 일곱, 여덟 명이 유학 관련 상담을 한다. 부유층들은 왜 그토록 자녀를 유학 보내려 하는 것일까. 얼마 전 유학을 보내려 하는 중학교 2학년 자녀를 둔 아버지를 만났다. 그 아버지는 국내 명문대를 졸업하고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었다. 사회적 기준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그에게 왜 아이를 해외에 유학 보내려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 대답이 아주 명쾌했다. “우리 집은 내가 자랄 때 부농 축에 들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세상이 바뀌고 있으니 넌 서울 가서 공부하라며 땅을 팔아 서울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정말 아버지 말대로 세상이 많이 바뀌었고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같은 동네에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가니 농촌을 지켜야 한다. 지금 농촌을 떠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던 집의 아이들은 지금도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나에게 세상의 흐름을 읽고 기회를 준 것처럼 내 아이에게도 세상의 변화에 역행하지 않는 방법을 알게 해주고 싶습니다. 비즈니스 현장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국제 시민증과도 같은 글로벌 경험이 아이에게 절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유학을 보내려 하는 또 다른 학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사회에 나갈 때쯤이면 KTX가 러시아까지 연결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해외 네트워크도 없고, 영어 한마디도 가르치지 못하면서 일류대를 논하는것이 우스운 일이 아닌가요.” 대부분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자녀의 유학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공부하는 것도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하게 마련인데,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에서 아이를 공부시킨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상당히 오랜 기간 철저하게 준비하고 보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는 누가 어디로 유학을 갔는데 성공했더라. 그러니 우리 아이도 보내자’ ‘유학이 유행이라 하더라’ 등처럼 주관적이고 즉흥적인 유학 결정으로 경제적인 타격은 물론 아이의 진로도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물거품된 의대 지원의 꿈강남 소재 중학교에서 성적이 상위권이었던 김나영(가명) 학생은 중학교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떠났다. 집안이 부유해 명문 보딩 스쿨(기숙사 학교)에 진학했다. 중3에 해당하는 9학년부터 시작했고 지금 11학년이다. 아이비리그는 힘들더라도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유명 대학에는 충분히 합격할 수 있는 성적을 보이고 있다. 겉으로는 문제가 전혀 없어 보이지만 상담을 해본 결과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문제는 전공이다. 부모나 학생 모두 의대 진학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걸림돌이 많다. 미국 의대는 기본적으로 시민권이 없으면 공립대학 의대에 지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립대학 의대에 진학해야 하는데 입학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확률적으로 어렵다고 보는 것이 맞다. 물론 미국은 의대가 전문대학원의 형태를 띠므로 대학에 진학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아이가 자신의 꿈인 ‘의사’는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미국의사가 되면 한국에서 시험을 치러 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미국에서 의사가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간과한 경우다. 이미 2년을 미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다시 한국으로 와도 한국에서도 현재 최상위층 아이들이 진학하는 의대에 진학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계속 한국에서 열심히 공부했더라면 의대에 갈 실력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결국 아이의 목표를 정하고 아이의 진로 단계상 유학이 필요해 보낸 것이 아니라 일단 떠나고 보자는 식으로 유학을 결정한 것이 아이의 꿈을 접게 만든 것이다. 유학원은 미국 의대에 진학하기가 확률적으로 굉장히 어렵다는 이야기를 쏙 뺀 채 권하는 편이다.데이 스쿨의 함정유학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기숙학교와 비기숙학교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지 않고 등·하교하며 다니는 학교를 통상 데이 스쿨(day school)이라고 한다. 한의사 아버지를 둔 이창종 학생의 경우에는 미국의 데이 스쿨로 유학을 간 지 1년 만에 1억원 이상을 유학 비용으로 지출했다. 상담을 해보니 전형적인 ‘사기 아닌 사기’를 당한 경우였다. 미국 교회의 한 집사가 유학 온 아이들을 잘 관리해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덥석 결정을 내린 탓이다. 유학원이 추천한 비용이 보딩 스쿨의 3만5000달러보다 훨씬 싼 1만5000달러라는 소리에 귀가 솔깃했다. 당장의 돈을 생각하느라 나중에 들게 되는 관리비용 등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매월 생활비로 3000달러 정도가 청구됐고, 아이가 아직 영어에 대한 기본이 돼있지 않다며 방과 후 과외를 할 것을 종용해 과외비용으로 3000달러가 별도로 청구됐다. 어떤 달에는 학교 행사에 따른 추가 비용을 청구해 결과적으로 1년 만에 1억원이 훌쩍 넘는 돈을 써버렸다. 물론 직접적으로 사기를 당한 경우는 아니다. 관리를 해주는 사람의 말도 일리는 있으니까 말이다. 다만 처음부터 선택을 잘못했을 뿐이다. 보딩 스쿨의 경우 영어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한 별도 코스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 비용은 물론 별도 청구된다. 그리고 교복을 입는 학교의 경우에도 별도 비용이 청구된다. 그렇지만 다 합쳐도 5만달러가 넘기 힘들다. 처음부터 보딩 스쿨을 택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대부분 불안한 마음에 한국 사람들이 관리를 해주는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에게 맡기는 통에 터무니없이 많은 돈이 들어갈 때가 많다. 가디언의 사기 아버지가 사업가인 유혜영 양은 우리 나이로 이제 중3이다. 나중에 국제연합(UN)과 같은 국제기구에 근무하는 멋진 모습을 상상하며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영국의 경우에도 기숙학교로 유학을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리운 한국음식도 먹을 겸, 부족한 과목 과외도 받을 겸 주말에는 학교에서 나와 학생의 가디언(보호자)으로 등록한 한국인의 숙소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물론 가디언 비용은 추가로 더 지불해야 한다. 혜영 양의 집은 이 가디언에게 직접적인 사기를 당한 경우다. 제대로 된 가디언이라면 학교에 지불해야 할 돈은 부모가 직접 학교에 송금하도록 하고 자신은 가디언 비용만 받는다. 그런데 이 가디언은 학비를 포함한 모든 비용을 자신에게 송금하도록 했으며 한 번도 외국 생활 경험이 없는 혜영 양의 부모에게 화려한 언변으로 각종 비용을 청구했다. 부모는 이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기를 1년이 지났고 혜영 양은 가디언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으며 부모는 아이가 힘들어서 투정하는 것이려니 생각하고 2년째에 접어들었다. 몇 달이 지나고 나서 등록금이 미납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같은 가디언에게 보낸 다른 학부모들에게도 연락하니 다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가디언에게 전화를 하니 다른 일 때문에 아직 지불하지 않았다는 변명뿐이다. 계속 다그치니 지난번에 보낸 것은 다른 데 썼고 이번 것은 부모에게 아직 청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모들은 현재 소송을 준비 중이다. 아이는 귀국해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 사례들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혹시 독자 중에는 ‘어째 바보들처럼 저러냐. 나 같으면 어림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사례의 부모들은 한국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들이며 은행의 PB(프라이빗 뱅커)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금융지식이 높은 사람들이다. 그래도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 유학이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