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올린 퇴직 연금제…어떻게 운영되나
현재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다. 평균 수명은 점점 늘고 은퇴 이후 기간이 길어지면서 근로자의 노후 연금소득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이 같은 점을 고려해 우리나라에서도 2005년 12월1일부터 퇴직연금제도가 시행됐다. 도입근거는 2004년 말 마련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됨으로써 우리나라도 국민연금, 개인연금과 함께 명실공히 근로자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3층 보장체계를 갖추게 됐다.퇴직연금제란 현재 퇴직 시 일시금으로 받는 퇴직금을 퇴직 후 일정연령(55세)에 달한 때부터 연금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물론 근로자 본인이 원할 경우엔 퇴직 때 일시금 수령도 가능하다. 현재 국민연금제가 있긴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국민연금만으로는 노후생활 재원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을 보완할 수 있는 다른 소득재원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인식이다. 또 종전 퇴직금 제도는 1961년 도입된 이후 40여년이 경과했지만 그동안 사회경제적 여건이 급변함에 따라 사용자에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반면 근로자에겐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기존 퇴직금 제도 아래에서 사업주는 퇴직금을 장부상으로만 쌓아 놓았다가 퇴직자가 생기면 그때그때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퇴직급여충당금을 담보로 회사가 대출받았다가 부도가 발생, 퇴직금 지급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기업이 도산하면 근로자는 실업과 체불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받아야 했다. 실제 지난해 발생한 체불임금 1조426억원 가운데 전체의 34.8%를 차지한 것이 퇴직금이었다. 또 최근 들어선 연봉제 확산, 근속연수 단축 등으로 퇴직금이 소액 생활자금으로 소진되는 등 효율적으로 활용되지도 못해 왔다.이런 문제점을 보완한 제도가 바로 퇴직연금이다. 회사는 근로자들에게 줄 퇴직금을 회사 내부가 아닌 은행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 외부 금융회사에 적립할 책임을 새로 지게 된다. 회사가 망해도 사외에 쌓인 퇴직금은 고스란히 남게 된다. 근로자는 퇴직 이후 일정 나이가 됐을 때부터 최소 5년 이상 퇴직금을 매월 또는 매년 연금형태로 받게 된다. 연금으로 수급하는 경우엔 연금소득세가 부과돼 퇴직일시금에 대한 소득세보다 유리한 세율을 적용받는다. 또 장기적인 연금수급기간 동안 과세가 이연돼 실질소득이 증가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직장을 자주 옮기더라도 새로 도입되는 개인퇴직계좌(IRA:Individual Retirement Account)를 활용하면 퇴직금을 한곳에 모두 모을 수 있다. 적립되는 퇴직금을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해 운용 수익을 내고, 이를 통해 퇴직연금 규모를 불릴 수 있게 한 것도 기존 퇴직금과의 차이점이다.하지만 이 같은 퇴직연금제도 도입이 2005년 12월부터 의무화한 것은 아니다. 제도 도입이 아직은 임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따라 근로자 5인 이상 기업은 확정급여형(DB) 퇴직연금제도,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제도, 퇴직금제도 중 1개 이상의 제도를 설정, 운영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기존 퇴직금 제도를 반드시 퇴직연금제도로 전환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기존의 법정 퇴직금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퇴직연금제도로 전환(신설 사업장은 선택)하기 위해서는 근로자 대표의 동의가 필요하다.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가 찬성해야 한다는 얘기다.이 제도가 시행된 2005년 12월1일부터는 퇴직보험 및 퇴직일시금신탁의 신규가입이 금지되고 기존 퇴직보험 및 퇴직일시금신탁 계약은 2010년 12월31일까지만 유지하는 게 가능하다. 퇴직연금제도는 법정 복지제도의 형평성을 담보하기 위해 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신규로 확대 적용된다. 다만 5인 미만 사업주의 부담능력과 준비기간을 고려해 2008년 이후 2010년을 넘지 않는 기간 내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날부터 적용하도록 했다.퇴직연금은 운용 책임을 누가 지느냐에 따라 DB형(Defined Benefit)과 DC형(Defined Contribution)으로 나뉜다. 사업주가 운용 책임을 지는 DB형은 퇴직 시 근로자가 받을 연금급여(산정방식)가 사전에 확정되고 사용자가 부담(적립)할 금액은 적립금 운용결과에 따라 변동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법정 퇴직급여는 퇴직 직전 30일 평균임금을 근속연수로 곱하고 여기에 누진율을 적용해 산출한다. 기존 퇴직금제도와 산출 방식이 같다.그러나 매년 발생하는 퇴직금 충당금의 60% 이상을 사업주가 사외 금융회사에 납입해야 한다는 점은 다르다. 수익이 높아질수록 사업주의 퇴직금 적립 부담은 줄어드는 구조다. 최종 퇴직연금 수령액 규모가 임금인상률에 따라 좌우되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DB형은 임금이 계속 인상되는 연공급 임금체계를 가지고 있거나 경영이 안정적인 대형 사업장에 적합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금융지식이나 운용 노하우에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장기 근속 근로자들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반면 DC형은 사용자의 부담금이 사전에 확정되고 근로자가 받을 퇴직급여는 적립금 운용실적에 따라 변동될 수 있는 연금제도를 뜻한다. 근로자의 운용능력에 따라 연금규모가 좌우된다. 다시 말해 사용자가 연간 임금총액의 12분의 1(8.3%) 이상의 금액을 노사가 퇴직연금규약에서 선정한 금융회사의 근로자 개인별 계좌에 적립하면 근로자는 금융회사가 선정·제시하는 운용방법을 선택해 적립금을 운용(투자)하는 것이다. 전액 퇴직충당금으로 사외 금융회사에 설정한 근로자 개인계좌에 넣어주는 것으로 사업주의 의무는 끝나는 것이다. 이후 운용책임은 근로자 몫이다. 수익이나 손실도 근로자가 감당해야 한다.투자 노하우가 있고 금융시장에 밝은 근로자에게 유리한 구조인 셈이다. 근로자 개인계좌에서 적립금이 관리되기 때문에 추가로 여유자금을 퇴직연금계좌에 투자할 수도 있다. 중도인출이 불가능한 DB형과 달리 DC형은 주택마련, 요양비 등의 명목으로 중도 인출이 가능하다. 따라서 연봉제나 임금 피크제를 실시하는 사업장, 기업의 수명이 짧거나 경영이 불안정한 사업장에 적합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퇴직연금 제도에선 IRA도 새로 선보였다. 최근 직장 이동이 빈번해 평균근속기간이 5.8년(노동부, 2003년 8월 기준)에 불과하고 비정규 근로자 증가, 퇴직금 중간정산제 및 연봉제 확산 등으로 퇴직금이 소액생활자금으로 소진되는 사례가 많다.이 같은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IRA는 근로자가 이직 또는 퇴직하더라도 퇴직일시금을 세제 혜택을 받으면서 자기 명의 계좌에 적립했다가 연금 등 노후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근로자가 퇴직금을 IRA에 적립할 지 여부는 강제사항이 아니며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IRA는 근로자 개인이 가입한다는 점 외에 적립금 운용 및 급여 등은 DC형과 유사하다. 개인이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는 개인연금과도 비슷하지만 개인연금은 가입자격에 제한이 없고 세법상 일정한 소득공제한도가 적용되지만 IRA는 퇴직(연)금 일시금 수령자가 가입할 수 있으며 적립금 운용 및 급여지급 방법 등에 있어 일정한 제한(DC와 동일)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10명 미만 기업에서 근로자 대표의 동의를 얻어 모든 근로자가 IRA에 가입하면 규약을 작성하지 않고도 DC제도를 도입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법정 부담금은 ‘근로자 연간 임금총액의 12분의 1 이상’으로 DC제도와 동일하다. 새로 도입된 퇴직연금제도는 기업과 근로자에게 많은 선택권을 제시하지만 제도설정·운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존 사례나 경험이 없다. 이덕희 노동부 퇴직급여보장팀장은 “회사 규모와 급여체계, 업태 특성 등 사업장의 상황에 따라 유·불리가 달라지는 만큼 신중한 검토가 필수”라고 말했다. ☞ 퇴직연금제도의 변화 및 도표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