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홍지영의 BMW 알피나 시승기

BMW 알피나를 시승하러 가는 길은 그리 평탄치 않았다.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는 일기예보를 들으며 ‘날을 잘못 잡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사실 시승 제의를 받기 전 우연히 남편과 함께 모 잡지에서 BMW 알피나에 관한 기사와 사진을 보고 혼란스러웠다.“외관은 BMW 7 시리즈 같은데, 왜 차 이름이 다르지….”시승을 하기 전 BMW 알피나에 대해 전반적인 설명을 들었다. BMW 알피나는 독일의 자동차 회사인 알피나 부르카르드 보벤지펜(ALPINA Burkard Bovensiepen Gmbh+Co.)에서 수제로 만드는 자동차이며 전 세계적으로 연간 800대만 생산되고 있다. 또한 직원 200여 명의 90%가 엔지니어라는 점이 바로 작은 규모의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알피나’라는 독자적 브랜드를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는 설명이었다. 국내에는 지난해 10월부터 수입되기 시작해 B7과 B7L 두 가지 모델로 출시됐다. 이웃 일본에는 B7을 비롯해 이미 B5, 로드스터 등 다양한 모델이 출시돼 한 달에 20대가 넘게 팔릴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소 묵직해 보이는 BMW 알피나를 처음 봤을 때는 이렇다 할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추운 날씨 때문에 꼼꼼히 외관을 살펴볼 여유도 없었지만 언뜻 보기에는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지 의심만 들었다. 세단의 편안함과 스포츠카의 다이내믹함을 모두 갖췄다는 회사 측의 설명은 그야말로 운전자의 모든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완벽한 차를 표방하고 있는 셈인데, 지나친 자신감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아무튼 운전을 해봐야만 알 수 있다니 빨리 경험해 봐야겠다는 마음만 급해졌다. 피아니시모부터 포르테를 넘나드는 다이내믹한 즐거움운전대를 잡고 혼잡한 도시를 벗어나 조금씩 달리기 시작했다. 매우 부드럽다. 거친 서울의 도로를 달리고 있는 데도 편안하다. 알피나 만의 독자적 기술과 손으로 제작했다는 8기통 슈퍼차지 엔진은 밟아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는 말에 한번 시험해 보기로 했다. 액셀러레이터에 발을 올려놓고 페달을 밟는 순간 몸이 확 뒤로 젖혀지며 땅에 붙는 듯한 그 느낌은 흥분, 그 이상이었다. 마치 우주여행을 간다면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말로 딱 꼬집어 표현하기 힘든 그런 기분이다. 시속 100km에 이르기까지 4.9초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슈퍼카 알피나의 성능을 몸으로 체험한 셈이다. 음악의 세기로 치자면 가장 약한 피아니시모(Pianissimo)부터 가장 강한 포르테(Forte)까지 모든 것을 한번에 느낄 수 있었다. 동승했던 회사 측 관계자는 “rpm이 3000이 넘어가면 차가 달라지기 시작하며 4250rpm에서 71.4kg·m의 최대 토크를, 5500rpm에서 500마력(368kW)의 최고 출력을 발휘한다”고 설명했다. 사실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악기가 가장 값진 재산인 만큼 악기 때문에 운전을 빨리 배웠다. 올해로 운전경력이 25년이 다 돼간다. 그동안 이런 저런 수입 브랜드와 국산 브랜드 등 약 10여종의 차를 직접 운전했기 때문에, 세단부터 스포츠카까지 다양한 컨셉트 의 자동차를 경험했다. 가끔씩은 스피드를 즐기지만 연주와 강의 스케줄이 빡빡해 운전을 많이 하고 다니는 만큼 편안한 승차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세단을 타다 보면 가끔씩은 다이내믹함이 그리울 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나에게 스포츠카와 세단의 컨셉트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알피나는 새로운 세계였다. 시속 300km의 최고 속도를 기록한다는데 우리나라에서 그것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아 무척 아쉬웠다. 클래식 연주자가 때로는 재즈도 팝아트도 연주하듯이 BMW 알피나는 보수적이면서도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양면성을 완벽하게 갖춘 차라는 점에서 팔방미인이라고나 할까. 필자가 쓰고 있는 첼로는 1827년에 제작된 악기로 외적인 것은 그대로이나 스트링이나 사운드 피스 등은 현대 기술로 재구성됐다. 그 가치는 한 마디로 ‘Priceless’. 즉 가치를 매길 수 없다.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엔진을 하나하나 맞춤 제작한다는 알피나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될 것 같다. 처음에는 가격만 듣고 ‘헉’ 하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으나 1200개의 엔진을 장인이 직접 손으로 제작하고 있으며 엔진 외에도 서스펜션, 휠부터 내부 인테리어까지 모두 맞춤 제작한다는 설명을 들은 후 고개가 끄덕여졌다. 운전 시 신속한 변속을 가능케 하는 변속시스템은 알피나 만의 독자적인 시스템으로 스위치-트로닉(Switch-tronic)이라고 불린다. 스티어링 휠의 뒤쪽에 있어 작동이 매우 편안했는데 이 역시 인체 공학을 고려한 디자인이라니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쓴 것이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차답다. 실내에 들어서 추위에 빼앗긴 정신을 추스르고 꼼꼼히 살펴보니 알피나 만의 독특한 색깔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고유의 색상이라는 ‘알피나 블루’ 컬러의 계기판, 단풍나무가 고급스러운 우드 트림, 제작 순서를 나타내는 일련번호, 손으로 가공된 가죽 등은 은은한 고급스러움을 나타냈다. 미국 브랜드의 차들이 ‘할리우드 액션’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듯이 화려함과 보여주는 효과를 강조한다면 알피나는 독일의 브랜드답게 내면의 아름다움과 자제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외관을 다시 보니 커다란 알루미늄 휠이 눈에 확 들어왔다. 한가운데 알피나 엠블렘이 새겨진 21인치의 거대한 휠과 세계적 타이어 제조업체인 미쉐린이 알피나 만을 위해 제작한 미쉐린 스포츠 타이어 2는 강인하면서도 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차체를 두른 골드 트림, 리어 스포일러 등은 확실히 여성스러운 아기자기함과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내세운 차와는 거리가 멀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에 가진 시승식에서 알피나라는 차의 매력을 모두 느끼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알피나를 타면서 문득 얼마 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가 떠올랐다. 레틀 경이 지휘했던 연주회는 내가 이 세상에 살고 있음을 정말 자랑스럽게 여기게 될 만큼 감동적이었다. 지휘자도 뛰어났지만 그 지휘자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었던 것은 1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였기 때문이다. 알피나를 운전하면서 마치 내가 베를린 필하모닉 같은 훌륭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가 된 기분이었다. 세단과 스포츠카, 자유자재로 양쪽으로의 변신이 가능한 알피나는 그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자동차 같다. 장인정신에 기반을 둔 깊은 철학을 이해할 준비만 되어 있다면 말이다. 필자는 알피나에서 차이코프스키의 5번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러시안 작곡가의 음악처럼 열정적이면서도 모든 음악적인 요소를 다 담고 있는 깊이가 있는 음악. BMW 알피나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긴 잔향을 남기며 뒤돌아서는 발걸음을 아쉽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