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선교장
겨울은 추워야 제격이다. 칼바람이 잔뜩 웅크린 가슴팍을 친다. 세밑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추위도 추위지만 어려운 경제로 우리네 마음이 꽁꽁 얼어붙었다. 서남해안으로는 연일 대설주위보다. 그 너른 들판 풍요로움이 백설 천지 온통 무채색이다. 월백(月白) 설백(雪白) 천지백(天地白)하니 내 마음도 순백 캔버스다. 연말정산과 밀린 숙제로 뒤숭숭한 마음을 남겨놓고 해 뜨는 강릉으로 새벽길을 재촉했다. 새벽 대관령에서 바라본 관동 풍경이 장관이다. 멀리 경포호수 너머 태양이 동해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힘차게 솟아오를 때, 사람들은 저마다 새로운 희망을 본다. 오늘도 해가 떴다. 곧 새해가 될 것이다. 새해엔 저 순수한 태양처럼 모든 일이 잘 되기를 소망한다. 새벽 바다의 크고 웅장한 장엄은 경외심이다. 거친 파도와 차가운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든다. 경포 동해의 붉은 기상과 태백산맥 대관령의 푸른 기운이 모여 큰 터를 이룬 곳, 그곳이 강릉 선교장(船橋莊)이다. 강릉은 서울에서 동쪽으로 육백리 길, 영동의 중심지이자 고도 예맥(濊貊)의 본거지로 한사군(漢四郡) 이후 동부의 요충지로서 산자수명(山紫水明)의 고장이다. 강릉은 또한 문향(文香)의 고장이기도 하다. 매월당 김시습과 율곡 이이가 자란 곳이요, 사임당 신씨와 허난설헌의 묵향이 남은 곳이다. 북쪽으로는 소금강·오색·설악을 거쳐 금강산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밤재·백복령을 거쳐 태백산으로 뻗어나간다. 해발 832m의 험준한 대관령을 넘으면 굽이굽이 대관령 옛길을 따라 펼쳐진 동해의 장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중에도 바다가 면한 곳에 보이는 넓은 호수가 경포호이고 그 옆을 따라 낮은 구릉들이 펼쳐진 가운데 우거진 송림을 배경으로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는 한옥이 바로 선교장이다. 선교장은 경포호가 지금보다 훨씬 넓었을 때 배를 타고 건너 다녔다 하여 ‘배다리’(船橋)라는 이름에서 유래했다.선교장은 전주 이씨 가문의 효령대군 11세손인 가선대부(嘉善大夫) 무경(茂卿) 이내번(李乃蕃)이 처음 자리를 잡은 양반주택이다. 이내번은 원래 전주에 살다가 강릉으로 옮겨와 경포대 주변 저동에 살았는데 어느 날 족제비 떼를 쫓다가 지금의 터를 발견했다고 한다. 선교장의 풍수는 시루봉에서 뻗어 내린 그리 높지 않은 산줄기와 울창한 송림으로 평온하게 둘러쳐져 바람을 막고 왼쪽으로는 약동 굴신하는 살아있는 용의 형상으로 재화가 증식할 만하고, 오른쪽으로는 약진하려는 듯 내달린 언덕이 자손의 번창을 보이는 형국으로 앞에는 얕은 내가 흐르고 안산과 조산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천하의 명당이다. 무경이 이곳에 터를 잡은 이후 가세가 크게 번창하고 여러 대에 걸쳐서 많은 집들이 지어졌다. 선교장은 대문이 달린 행랑채와 안채·사랑채(悅話堂)·별당·사당 및 연당과 정자(活來亭)까지 갖춘 완벽한 조선사대부가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선교장의 건물 배치는 일반적으로 사대부가의 ‘ㅁ’자형 통말집의 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스럽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건물의 집합이다. 긴 행랑채 가운데 사랑으로 통하는 솟을대문과 안채로 통하는 평대문을 나란히 두어 마치 창경궁 후원의 연경당 대문과 비슷하다. 선교장의 또 다른 특징은 추운 지방의 폐쇄성과 따뜻한 지방의 개방성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랑채의 높은 마루와 넓은 마당은 아주 시원한 느낌을 주며, 안채의 낮은 마루와 좁은 마당은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해의 해양성 기후에서 오는 자연 조건이 자연스럽게 건축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선교장의 사랑채인 열화당은 순조 15년(1815)에 오은(鰲隱) 이후(李)가 건립한 건물이다. 선교장 가운데 대표적인 단아한 건물이다. 열화당 이름은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 가운데 다음 구절에서 연유했다. 세상과 더불어 나를 잊으니 다시 어찌 벼슬을 구할 것인가. 친척들의 정다운 이야기 즐겨 나누고 거문고와 서책 즐기며 우수를 떨쳐버리리라世與我而相遺 復駕言兮焉求悅親戚之情話 樂琴書以消憂여기에서 일가 친척이 늘 열화당에 모여 정담을 나누고 싶다는 오은의 뜻을 읽을 수 있다. 열화당은 반듯한 12칸 건물로, 축대는 대여섯 계단을 딛고 올라가도록 높직하게 위치하고 있다. 누마루 형식을 지닌 운치 있는 구조다. 열화당의 중심부인 대청의 서북쪽으로 난간을 부착한 툇마루가 앞 툇마루를 연결지어 돌게 되어 있어 열화당의 대부분이 마루로 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방은 작은 대청과 대청 사이에 있고 장지문으로 사이를 막으면 셋으로 나눌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열화당은 외벽을 모두 들어열개 문짝으로 만들어 여름철에는 전부 떼어 걸어 놓으면 전후좌우로 통풍이 되어 자연의 흥취를 만끽할 수 있다. 열화당 대청 앞 햇빛을 가릴 목적으로 내달아 붙인 차양은 구한말 개화기에 설치된 것이다. 당시 서방 제국들은 조선 침략의 일환으로 인구 광물 농업 문화 유적 씨족사회 등 전국산업조사를 벌였는데 러시아 공사관 직원들이 강릉지방 조사차 나와 선교장에서 머물렀다. 그 보답으로 러시아에서 지붕 동판과 부재(部材)를 가져다가 지은 것이다. 창덕궁 후원 아흔하홉칸 사대부가인 연경당의 독서당 차양과 같은 형식이다. 이 차양은 열화당 뒷산의 노송과 함께 격변기 근세 역사의 흔적을 묵묵히 보여주고 있다.선교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물은 행랑채 바깥마당 앞 방형 연당에 놓인 활래정(活來亭)이다. 활래정은 순조 16년(1816)에 오은이 건립한 것으로, 주희(朱熹, 1130~1200)의 시 ‘관서유감(觀書有感)’에서 의미를 취해 이름 지었다. 작은 연못이 거울처럼 펼쳐져 하늘과 구름이 함께 어리네 묻노니 어찌 그같이 맑은가 근원으로부터 끊임없이 내려오는 물이 있음 일세半畝方塘一鑑開天光雲影共徘徊問渠那得淸如許爲有源頭活水來활래정은 창덕궁 후원의 부용정과 흡사한 모습으로 축조돼 마루가 연못 안으로 들어가 돌기둥으로 받쳐놓은 누각으로 건물의 일부가 물 가운데 떠 있는 듯한 형상을 갖추고 있다. 두 칸 온돌방이 마루와 합쳐져 ㄱ자형으로 놓여져 있고, 이 방과 마루를 연결하는 복도 옆에는 차 끓이는 다실이 있어 근세 한국 특유의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열화당 뒤편에 우람하게 서 있는 계화나무와 활래정 뒷산에 솟은 떡갈나무의 거대한 모습은 선교장 전체의 배경을 이루는 노송들과 어우러져 고전미와 우아미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열화당이 주인과 손님이 정담을 나누며 늦가을로부터 초봄까지 한겨울을 지내는 곳이라면, 활래정은 문을 활짝 열고 바람을 맞으며 흔들리는 연꽃을 보는 한여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열화당이 폐쇄적이지만 구수한 인정미를 볼 수 있다면, 활래정은 개방적이요, 정겨운 자연미를 맛보는 곳이다. 이렇듯 조선사대부 상류사회의 풍류의 멋은 자연과 합일하는 순수함과 높은 심미안에서 기인했다.선교장의 사계는 그 어느 계절 하나 버릴 것이 없다. 멀리 대관령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에 봄눈이 녹고 활래정 앞 논물이 넘쳐 무논 위를 봄바람이 파문을 일으키며 출렁이면 봄은 시작된다. 안채 뒤 대밭에 죽순이 움트고, 담장 아래 매화가 총기 있는 계집애 속눈썹마냥 또릿또릿한 꽃술을 한두 송이 피워낸다. 앞 냇가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버들개지가 움트면 선교장의 봄은 생동하는 아름다움으로 술렁인다. 여름은 뒤 솔밭으로부터 온다. 짙은 녹음을 이루는 노송과 고목에 둥지를 튼 꾀꼬리 울음소리로 여름은 한결 짙어간다. 이때 제 철을 맞는 것이 활래정이다. 연꽃 봉오리가 솟고 꽃봉오리가 터지면 활래정 누마루엔 시흥이 도도하다. 활래정 정취에 풍류가 그윽하면 시인 묵객들의 시서화(詩書畵)가 곁들여진다. 비 오는 날 연잎에 듣는 빗소리나 연잎에 우는 개구리 소리에도 문객의 시정이 넘나든다. 소낙비 지난 뒤 솔밭에서 들리는 시원한 매미 울음소리도 한여름 오후의 정경에 빼놓을 수 없다.가을은 풍요의 계절이다. 선교장 곳간으로 밀려오는 곡식은 이곳 선교장의 부(富)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곳간이 그득해지고 한 해 농사의 즐거움이 선교장 앞뜰에 가득하니 가을은 더할 수 없이 풍요롭다. 앞내 둑에 서면, 마주 보이는 태백준령의 줄기가 불타오르듯 붉게 물들고, 동구 밖에 빨간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은 가을철 풍요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감나무 꼭대기 한두 개 남은 감은 잎이 다 떨어지고 서리가 내릴 때까지 나무에 달린 채 까치밥이 되면서 늦가을 서정을 돋운다.이곳의 겨울은 가히 시적(詩的)이다. 강릉은 눈의 고장이다. 더욱이 선교장의 설경은 그 가운데서도 일품이다. 눈에 덮인 노송, 그 위에 때때로 날아드는 학, 그것은 선경이다. 굳게 닫힌 활래정도 눈에 덮이고 연못의 물은 얼어 마른 연줄기의 모습에 오히려 마음이 처연해진다. 겨울은 정적의 계절이다. 그러나 선교장은 새봄 맞을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명당에서 보여주는 푸근함이다. 모든 것이 숨죽이고 있지만 그 속에는 꿈틀대는 생명의 약동이 숨어있기 때문이다.한 해가 너무 빠르다. 벌써 연말이다. 지난 시간 되돌아보면 무엇하랴마는 그래도 한 해를 조용히 반성하며 차분히 세밑을 정리한다. 아쉬움이 모두 기대감으로 바뀐다. 새해엔 더 분발해 큰 꿈을 이루리라. 선교장 열화당 앞마당에 반듯하게 내리는 12월 오후의 햇살이 차고 여리다. ‘지금이 곧 그때, 다시 지금 같은 때가 없다(卽時現今更無詩節)’고 하듯 내가 서있는 이 시점에서 내일을 향해 오늘 최선을 다할 뿐이다. 새해엔 경포 동해 찬 겨울 떠오르는 태양의 순수함처럼 나도 더 강해지고 싶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