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옥 코리아나 회장의 문화경영

'잠깐만요. 인터뷰 전에 화장 좀 하고 시작합시다.”고희를 훌쩍 넘긴 분이 화장이라니. 다소 의아했다.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73)은 약 5분 간 얼굴에 파운데이션 등을 바른 뒤 인터뷰를 시작했다. “제가 왜 화장을 하는지 아십니까. 제게 화장은 단순히 주름을 감추고 외형적인 아름다움을 내세우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는 하나의 표현이죠.” 그의 화장론(化粧論)은 약간 독특했다. 그에게 있어 화장은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수양(修養)의 다른 말에 다름 아니다. 유 회장은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사회에 기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되레 ‘불우한 이웃을 돕는 것은 기업이나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기업인은 회사경영을 잘하는 게 사회공헌이라고 강조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사회공헌이라는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 그러나 유 회장은 누구보다 사회공헌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최고경영자(CEO)로 꼽힌다. 그는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사회봉사를 하고 있다. 유 회장은 요즘 ‘문화경영’에 관심이 많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민족이 세계 속에서 우뚝 설 수 있다는 신념에서다. “화장품 업체 경영인이 사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 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문화였습니다. 저는 앞으로 전통문화 창달 등에 많은 관심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우리 회사도 문화 마케팅에 대한 비중을 높여나가고 있습니다.”특히 각종 박물관이 적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박물관이야말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통로 역할을 하기에 박물관이 많은 곳이 문화강국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2005년 8월 화장박물관을 재개관했다. 지난 2003년 개관한 화장박물관을 리노베이션해 재개관한 것이다.“처음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화장박물관을 연다고 하니까 주위에서 엄청나게 반대를 하더군요. 신사동 같은 금싸라기 땅에 왜 그렇게 쓸 데 없는 걸 만드느냐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차라리 건물을 지어 임대사업이나 하라고 권유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뜻대로 강행했습니다.” 평소 ‘화장품 사업은 꿈과 아름다움을 심어주는 문화사업’이라는 신념을 가진 유 회장의 생각이 박물관 곳곳에 깃들여 있다. 신사동에 자리잡은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의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 씨’에는 현대미술 퓨전공간, 화장미술 등 각종 사무실들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는 미술품을 전시하는 것 외에도 무용 영화 연극 강의 등이 마련돼 있다. 독일의 유명 헤어화장품 회사인 웰라의 모발박물관과 일본 시세이도 미국 엘리자베스 아덴의 화장박물관을 벤치마킹한 코리아나의 화장박물관에는 유 회장이 지난 30년 간 수집해 온 여성, 생활, 문화 관련 소장품들이 전시돼 있다. 현재 국보급 1점과 보물급 유물 3점이 전시돼 있는 이곳은 국내 화장품 장신구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돼 있다. 이와 함께 유 회장은 천안 공장과 연구소 부근에 허브, 라벤더 등 화장품 원료로 사용되는 식물을 심은 식물원을 조성하고 있다. 여기에서 길러진 식물들은 전국 중·고교에 보내 ‘코리아나 가든’을 만드는 데 쓸 계획이다. “지난 88년 봄 기술 제휴 파트너 자격으로 프랑스 이브로셰를 방문했는데 라 가실리에 위치한 공장 주변이 식물원으로 꾸며진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라 가실리에 시민 전체가 이 식물원에서 맘껏 휴식을 취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기업이 사회에 공헌하는 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유 회장은 ‘세일즈맨들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동아제약 공채 1기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그는 특유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영업능력을 키워갔다. 그는 국산 드링크제의 대명사인 ‘박카스’를 통해 스타 영업맨으로 우뚝 솟았다. 당초 회사측은 박카스를 알약, 앰풀 형태로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제대로 된 드링크제가 없었던 당시 용액으로 만들어야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결과는 대성공. 그가 만들어낸 박카스는 오늘날 동아제약은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드링크제로 군림하고 있다. 그러던 그가 화장품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77년부터다. 동아제약 그룹은 ‘판매의 귀재’였던 그를 계열사인 라미화장품 대표로 전격 임명했다. 당시 라미화장품은 고질적인 적자로 인해 동아제약으로선 골치 아픈 계열사였다. 적자액만 해도 23억원.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도 없었던 급박한 상황이었다. 직원들 개개인의 신용대출로 자금을 마련한 그는 프랑스에 살던 영화배우 윤정희씨를 전속모델로 캐스팅한 후 라피네를 선보이면서 회사를 4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다. 라미화장품에서의 경영노하우는 고스란히 1989년 코리아나 창업으로 이어졌다.“사실 이때부터 화장박물관 건립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라미화장품 한켠 30평 정도 공간에 전시실을 마련했는데, 아마 그것이 스페이스 씨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코리아나는 90년대 이후 급성장세를 타면서 태평양 LG생활건강에 이어 화장품 업계 3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 회장은 각종 경영관련 세미나에서 스타 강사로 인기를 얻고 있다. 그가 말하는 내용 모두가 실질적인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각종 경영자 모임에 나가 새 기술과 경영기법을 배우는데 여념이 없다. “제 나이 이제 일흔셋인데요. 생각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어떤 때는 50대로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그가 말하는 성공 비결은 이렇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맡겨진 책무를 다하고 항상 의욕과 배움의 자세로 일관한 것이 성공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자식들에게도 본보기가 되길 바랍니다.” 유 회장은 또 자식에게 부를 물려주기보다는 경영의 경륜과 경영자로서의 보람을 남겨주고 싶다고 말한다. 재물은 거품이라는 그의 인생철학도 자식들에게 대물림됐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유 회장은 수필가로도 유명하다.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국제펜클럽 한국지부 회원이며 지난 93년 ‘나는 60에도 화장을 한다’를 낸 이후 ‘33에 나서 55에 서다’ ‘화장하는 CEO’ ‘문화를 경영한다’ 는 등의 수필집을 내기도 했다. 그의 인생 좌우명은 ‘청부낙업(淸富樂業)’이다. 돈을 벌되 깨끗하고 정직하게 벌어야 하며 일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늦깎이 창업으로 청부낙업의 삶을 살았고 이제 전통문화 나눔의 길을 모색해서 그런지 ‘아름다운 부자’ 유 회장의 얼굴엔 기쁨이 가득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