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첫 여성 억만장자 마사 스튜어트
미국은 난관을 뚫고 재기한 사람에게 관대한 나라다. 감동적인 ‘휴먼 스토리’를 엮어낸 대가로 과거의 흉허물을 눈감아준다. 민망한 스캔들을 극복한 정치인에게 ‘컴백 키즈(Comeback Kids)’란 애칭을 달아주며 격려해주거나 질병을 이겨낸 운동선수를 영웅시하는 것도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나온다. 마사 스튜어트(64). 요리 및 집 꾸미기 종합 그룹 마사 스튜어트 리빙 옴니미디어(MSLO)의 창업자인 그녀가 최근 미국 매스컴의 스포트 라이트를 받고 있다. 미국 역사상 자수성가를 통해 억만장자 대열에 오른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에서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죄인으로 전락하는 등 천당과 지옥을 오갔으나 미국인들이 그녀에게 다시금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생명공학 업체 임클론(ImClone)의 주식을 절묘한 타이밍에 팔았다가 내부자거래 혐의로 기소돼 죄수번호 55170-054를 달고 미국 동부 웨스트 버지니아주에 있는 앤더슨 연방교도소에서 2005년 3월까지 5개월 간 복역했다. ‘가사의 여왕’으로 기업인을 꿈꾸는 여성들의 우상이었으나 교도소에서는 한 명의 미결수일 따름이었다. 그녀는 가석방된 후 “나는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다”며 검찰측을 겨냥했다. 3월 출소 후에도 8월까지는 뉴욕 자택에서 연금 상태에 있었다. 발목에 위치 추적용 전자 발찌를 차고, 외출은 1주일에 48시간 밖에 할 수 없었다. 가택 연금이 끝난 지 4개월도 안 된 지금 마사 스튜어트는 미국의 ‘멀티미디어 슈퍼스타’로 제2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 기업인, 방송인, 출판인으로서 화려하게 부활한 것. 재산이 다소 줄었지만 멀티플레이어로서의 그녀의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걸 방증하고 있다. 유죄 평결을 받으면서 MSLO의 회장 겸 CEO 자리를 내놨지만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2005년 11월호에서 그를 여전히 미국의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인 21위에 올렸다. 9월에는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진행하던 취업 리얼리티 쇼 ‘견습생(The apprentice)’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마사 스튜어트의 견습생’은 트럼프 때만은 못하지만 여전히 매회 600만∼700만 명의 시청자를 끌어 모으고 있다. 10월에는 그녀의 성공스토리를 담은 책 ‘마사의 법칙’을 출간해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놓았다. 공식적으로 마사 스튜어트는 더 이상 MSLO의 CEO가 아니지만 60%의 지분으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녀가 출소한 후 MSLO 산하의 다른 사업들도 빠른 속도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잡지 ‘마사 스튜어트 리빙’의 광고 지면은 48% 늘었고, 주택 건설업체 KB홈과 공동으로 마사 스튜어트라는 이름의 주택 단지를 지어 분양하기로 했으며 워너 홈비디오와 손잡고 DVD 제작도 함께 하기로 했다. MSLO의 매출은 2001년 2억9560만달러를 기록한 후 2004년 1억8740만달러까지 줄었으나 2005년에는 2억800만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근 7분기 연속 적자였으나 2006년에는 흑자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MSLO 지분 60%, 3000만주로 이뤄진 그녀의 재산은 검찰 조사, 유죄 평결, 수감 생활을 거치는 동안 출렁임을 거듭했으나 출소 즈음이던 2005년 3월에도 10억달러(1조원)에 달했다. 당시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그녀를 세계 620위 부자로 평가했다. 지금은 6억달러 대로 자산이 쪼그라들었지만 전과자에 대한 시장의 단죄라기보다는 MSLO가 추진하던 큰 계약 건이 잘 풀리지 않은 데 따른 실망감 때문이다.마사 스튜어트가 이렇게 빨리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패자부활전에 열광하는 미국 문화 덕분이기도 하지만 마사 스튜어트라는 사람의 비범함을 똑똑히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자수성가한 여성을 흔히 ‘독하다’고 표현하는데 그 논리대로라면 마사 스튜어트는 ‘피 한방울 안 나올 만큼 독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포천은 스튜어트의 부활이 ‘그녀의 상징인 고통스러울 정도의 완벽주의’의 결과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녀는 2004년 6월 유죄 선고를 받자마자 재기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CEO 자리는 내놨으나 이사직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개인 고문 격이었던 찰스 코펠만을 임원으로, 대박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Wives)’과 ‘로스트(Lost)’를 기획한 ABC방송 전 사장 수전 라인을 이사로 앉히는 등 경영권 탈환에 도움을 줄 만한 원군들을 요직에 심었다. 이후 새 이사회와 연봉 협상을 벌여 연봉 90만달러와 최대 150%의 보너스, 전용운전사를 둔 승용차 등 기존 계약내용을 2009년 9월까지 바꾸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마사 스튜어트는 모든 안배가 끝나자 2004년 10월 감옥으로 걸어 들어갔다. 언론과 여론이 모두 등을 돌리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철저함과 냉정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녀는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사업은 내 전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사 스튜어트는 1941년 폴란드 이민 가정에서 6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중산층 가정일지라도 전시인 데다 이민자 집안에 동생이 줄줄이 딸린 장녀로 태어난다는 것은 열심히 일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할 수 있다. 마사 스튜어트는 어려서부터 집안의 잡일 하나라도 꼼꼼하고 완벽하게 처리했다고 한다. 어머니에게 요리와 바느질을, 아버지에게 정원 일을, 할머니에게 통조림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녀는 학교에서도 공부와 특별활동을 모두 잘하는 학생으로 유명했고 ‘올 A’의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나드대학에 부분 장학생으로 입학해 건축과 역사를 전공했다. 집에서 등록금을 받을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학비를 벌기 위해 모델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학 졸업 직후 결혼하고 1965년 딸 알렉시를 낳을 때까지 TV광고 및 잡지 모델로 꽤 잘 나갔다. 이후 주식 중개인으로 변신했다. 주식 중개인으로도 성공했지만 1973년 경기 침체로 주가가 고꾸라지자 조기 은퇴하고 남편과 함께 낡은 전원주택을 사서 코네티컷 웨스트포트로 이주해 정착했다. 그녀가 집 개축, 장식, 정원 일에 본격적인 열의를 보인 것은 이 때부터다. 마사 스튜어트는 전업 주부로 만족하지 않았다. 곧 자기 집 지하실에서 출장 요리 사업을 시작했다. 지역신문과 TV에 몇 편의 광고를 냈고 결혼식 출장 요리에 처음 도전했다. 그녀의 솜씨와 재능은 금세 소문이 났다. 그녀가 이 사업 아이템을 선택한 것은 어린 시절 손님을 자주 치르는 집에서 자라면서 그것을 즐기고 잘 하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문이 어찌나 많이 났던지 얼마 되지 않아 출판 제안을 받았다. 그녀가 출장 요리에 대해 쓴 첫 번째 저술은 불티나게 팔려서 곧이어 수십 권의 책을 연달아 냈고 신문에 칼럼도 썼다. 대형 슈퍼 체인인 K마트는 그녀를 대변인으로 채용했다. 마사의 좌절그러나 결혼 생활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남편 앤디와 1990년 이혼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남편이 이혼서류를 법원에 제출하던 날 마사 스튜어트는 결혼을 주제로 한 책을 출간했다. 그녀는 좌절하지 않았다. 곧 ‘마사 스튜어트 리빙’이라는 제목의 잡지를 출간하고 CBS방송에서 같은 이름의 토크쇼 진행도 맡았다. 97년에는 출판, 토크쇼, 웹사이트 등 모든 사업을 한데 모아 MSLO를 설립했다. 마사 스튜어트의 몰락은 2002년 시작됐다. 미국 하원 통상위원회는 그해 6월 그녀를 증권 내부자거래 혐의로 조사한다고 발표했다. 발단은 2001년 12월 임클론이라는 회사 주식 3928주를 매도한 것이다. 미국 식약청이 임클론의 암치료제를 허가해 주지 않겠다고 발표하기 하루 전의 일로, 타이밍이 절묘했다. 하원위원회는 그녀가 임클론의 창업자인 사무엘 왁살과 친구라는 이유로 정보를 미리 빼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임클론의 주가는 식약청 발표가 나온 후 한 달 만에 70%나 폭락했다. 이후 조사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그녀는 꿋꿋했다. 조사 착수 발표가 나온 며칠 후 CBS방송에서 요리 시연을 보이던 진행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고 묻자 “전 지금 이 샐러드에 집중해야 합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해 10월 뉴욕증권거래소 이사직을 내놓은 것을 빼면 공식 활동도 모두 평소처럼 했다. 2003년 6월 맨해튼 연방대법원은 마사 스튜어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첫 혐의였던 내부자거래는 무죄 평결을 받았으나 증권사기와 재판방해 등 총 9가지 항목이 추가됐다. 그녀는 강하게 저항했다. 임클론 주가가 60달러 아래로 떨어질 때 매도하라는 주식 중개인의 조언을 따랐을 뿐이라며 USA투데이에 무죄를 호소하는 전면광고를 내고 계속 항소했다. 하지만 이후 증권감독위원회(SEC)까지 나서 그녀를 상대로 내부자거래 혐의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등 난관이 계속됐다. 재판이 이어졌고 2004년 5월 다시 공동모의, 재판방해, 위증죄로 유죄 평결을 받았으며 한달 후 실형이 확정됐다. 자수성가한 여성 기업인에게 실수는 치명적이다. 유죄 선고를 받자 세상은 마사 스튜어트에게 돌연 가혹하게 변했다. CBS는 ‘마사 스튜어트 리빙 쇼’를 황금 시간대에서 새벽으로 밀었다가 나중엔 아예 빼버렸다. 마사 스튜어트의 가정용품을 판매해 온 K마트는 광고비와 로열티를 이중 계상했다며 MSLO를 고소했다. K마트는 2001년 계약을 유리하게 수정해 2009년까지 연장한 후 두달 만에 고소를 취하했으나 MSLO엔 그야말로 수난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그녀는 ‘집안 잡일’로 치부되던 요리, 정원 손질, 수공예를 사업 아이템으로 진화시키고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붙인 역사적인 기업인이다. ‘견습생’ 진행자로 마사 스튜어트를 섭외한 방송 기획자 마크 버넷에 따르면 그녀는 여전히 “미국에서 가장 카리스마 넘치고 유명한 여성”이다. 버넷은 역경을 극복한 사람들이 대중에게 어필한다는 이유에서 “복역 경험이 마사 스튜어트라는 인물을 더 호소력 있는 방송인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녀는 출소 후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 MSLO 주가추이 : nfbc996600[머니지 참조]>©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