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우리나라 대기업 중 창업 100년이 넘은 두산그룹의 형제 간 다툼은 새삼 부(富)의 추악한 이면을 보는 듯해 안타깝기 그지없다. 누구의 잘잘못을 접어두고서라도 우리나라 산업의 중요한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두산그룹의 미래가 자못 걱정스럽다. 문득 로스차일드 가문의 다섯 형제가 떠오른다.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유대인이 거주하던 게토의 초라한 가게에서 환전상으로 시작해 기적의 금융업을 창조, 이스라엘 건국의 초석을 만들고 200년이 지난 오늘까지 국제금융· 보석 등의 사업에서 엄청난 힘을 떨치고 있는 가문, 그 가문이 바로 로스차일드 가문이다. 데릭 윌슨이 쓴‘로스차일드(이희영· 신상성 역)’를 보면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조그만 머리와 빈곤의 밑바닥에서도 자신감을 안겨주는 영광의 전설뿐’이라고 한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창업자는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1744~1812)다.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시대의 혼란기에 헤센의 영주 빌헬름 9세의 재정관리를 하며 거대한 부를 쌓아나갔다. 마이어 암셀은 아들 다섯과 딸 다섯을 두었는데, 눈을 감으면서 다섯 아들에게 옛날 스키타이 왕의 이야기를 들려주며‘묶여 있는 다섯 개의 화살’처럼 흩어지지 말고 힘을 합쳐 가업을 발전시키라고 유언을 남긴다.“돈이야말로 유대인을 구원하는 단 하나의 무기라는 것을 늘 명심해라. … 만일 아버지로서의 내 바람에 거역해 아들들이 사업경영을 … 평온하게 계속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나는 내 아들이라 할지라도 결코 용서할 수 없다.” 마이어 암셀은 아들들에게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의 자부심을 심어 주고 형제 간 사랑이 약해진다면 그들 사이에 공통되는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결속을 강화할 수 있도록 가족회사 경영을 지시한 것이다.장남은 프랑크푸르트의 암셀 마이어, 차남은 빈의 잘로몬 마이어, 삼남은 런던의 네이선 마이어, 사남은 나폴리의 칼 마이어, 오남은 파리의 야콥 마이어로, 마치 다섯 개의 화살처럼 세계로 흩어져 금융왕국을 이뤘으나 그들은 결코 서로를 향해 화살을 겨누지 않았다.‘묶여 있는 다섯 개의 화살’은 로스차이드 가문의 자랑스러운 문장(紋章)이 되었다. 이 문장 중에서 왼쪽 것은 영국의 셋째 아들 가문의 것이고 오른쪽은 프랑스의 다섯째 아들의 것인데, 화살 방향이 각각 아래와 위로 향하고 있다. 이것은 서로가 화살을 겨누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직업 길드에서 제외된 유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대금업(貸金業)과 장사뿐이었다. 외부로부터 핍박이 거세질수록 신앙을 바탕으로 안으로 더욱 견고해지는 게 유대인의 속성이다. 창업자 마이어는 잡화점을 경영하며 옛 화폐를 수집했다. 그 당시 귀족들은 예술작품과 골동품을 수집해 장식하는 것으로 자신의 명성을 과시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공들여 만든 카탈로그를 본 귀족 빌헬름이 마이어와 첫 거래를 했을 때 마이어는 원가보다 엄청나게 싸게 거래했고, 이것이 인연이 돼 빌헬름의 신용을 얻어 마침내 궁정어용상인으로 임명된다. 로스차일드가 빌헬름 백작의 재산관리인이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다음과 같은 전설적인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나폴레옹의 반대편에 섰던 빌헬름은 프랑스군이 프랑크푸르트로 진격해 올 때 중요한 서류와 재물을 마이어에게 맡겼다. 로스차일드는 이 재물을 그의 정원 한 구석에 파묻고 나서 4만탈레르 쯤 되는 엄청난 자신의 상품과 재물은 숨기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 자신의 재산까지 숨겼다면 엄격한 수색으로 발각되었을 것이고 끝내는 빌헬름 백작의 재물까지도 빼앗겼을 것이다.프랑스군이 떠난 뒤 로스차일드는 숨겨놓은 빌헬름의 돈으로 소규모 금융업을 시작해 다시 부(富)를 일궜다. 전쟁 후 빌헬름 백작이 돌아왔을 때 마이어는 그의 재산에다 이자를 더해 돌려주려고 하자 빌헬름은 이렇게 말했다고 윌슨은 쓰고 있다.“그대가 정직하게 얹어 주는 이자도, 아니 원금도 되돌려 받을 생각이 없다. 이자 따위, 그대가 내 재산을 구하기 위해 잃은 것에 비하면 하찮겠지. 내 돈은 앞으로 20년 동안 2% 이하의 이자로 그대에게 맡기겠다.” 이것이 금융업을 성공으로 이끈 고객에 대한 철저한 신용정신인 것이다.흔히 가난한 사람이 벼락부자가 되면 상류계급 흉내를 내 화려한 저택에서 훌륭한 마차를 타고 사치한 의복과 연회로 나날을 보낸다. 또 예술을 감상하며 고상한 생활을 즐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유대인 로스차일드 가문의 처신은 이와 달랐다. 시인이며 철학자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검소한 마이어의 부인을 이렇게 묘사했다.“아들들이 세계적 명성과 부를 얻어도 그녀는 궁핍한 유대인 거리의 조그만 본거지를 떠나려 하지 않는다. … 그녀가 축하의 불을 밝히는 조그만 촛대는 얼마나 귀여운지. … 이 나이든 여인은 그 촛대를 볼 때마다 눈물이 글썽해진다. 젊은 날 마이어 암셀과 함께 마카베오 축일을 축하했던 일을 간절하게 떠올리면서.”로스차일드의 다섯 형제들은 이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언제나 검소했으며 부를 과시하는 일에는 무관심했다. 로스차일드가(家)의 사람들이 이렇게 욕망을 억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나라 없이 떠도는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그들은 스스로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유대인에게는 언제든지 비난을 퍼부을 음모가 준비돼 있었다. 언론이나 사교계는 물론 시민들은 유대인에게서 조그마한 흠집이라도 발견되면‘역시 유대인이라서…’라며 가차없이 뿌리의 약점을 건드린다. 그러므로 늘 긴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긴장’은 유대인을 안으로 더욱 다지게 만든다. 그들은 위급하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주택에 투자하지 않았으며 운반하기 쉬운 고급 보석에 관심을 가진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횟감을 실어 나르는 수족관 차에 물고기를 싱싱하게 운반하기 위해서는 물고기가 싫어하는 문어나 낙지 등을 몇 마리 넣어 둔다고 한다. 물고기들은 문어나 낙지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재빨리 이리저리 움직이며 긴장하기 때문에 서울에 도착했을 때도 싱싱하다고 한다. 반면, 이러한 위협꾼 없이 편안한 상태로 운반하면 긴장을 늦추기 때문에 맥이 빠져 죽어버리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부자가 망하는 원인은 바로 이렇게 긴장을 늦추고 새로운 도전을 포기하기 때문이다.로스차일드가 사람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존재라는 의식이 가득 차 있다. 그래서인지 로스차일드 가문에서는 유달리 근친 결혼이 많다. 당시의 귀족 가문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지만 마이어 암셀의 손자 14명 중 10명이 근친 결혼을 했다. 세계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더라도 마이어 암셀이 강조한 가족 간의 결속을 숙명처럼 지키고 있는 힘이 여기에 있는 지도 모른다. 그들은 중요한 정보를 공유했으며 위기가 닥치면 언제나 다시 뭉쳐 에너지를 결속할 태세가 돼 있었다. 1929년 말 미국 경제대공황의 폭풍은 빈의 로스차일드가에까지 밀려와 도산의 위기를 맞았다. 그 때 놀라운 일은 눈에 띄지 않게 파리와 런던의 형제들이 의연하게 재산을 내놓아 명예를 지켰다는 것이다. 그들은‘은행은 생겼다가 사라질 수도 있으나 로스차일드는 불멸’이라는 믿음을 가졌다.로스차일드가의 후예들은 학계에서 인정받는 사람들도 다수 있다. 막대한 부의 끝없는 유혹에도 불구하고 이른바‘방탕한 난봉꾼’이나‘머리가 텅 빈 호사가’는 거의 없다고 데릭 윌슨은 말한다. 그것은 그들이 유대인으로서‘특별한 존재’란 의식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었던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형제 다툼이 있는 우리나라 재벌 가문에서도 이런 사례를 좀 배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