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진단 불황터널 빠져나온 미술시장 ③ 유럽 동시대 미술
난 몇 년 간 세계 미술시장 변화의 가장 큰 특징은 동시대 미술 시장의 강세가 이어졌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인상주의 및 근대미술시장은 상대적으로 관심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지난 11월 첫 주에 진행된 뉴욕 경매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인상주의와 근대미술작품 판매가 8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그 1주일 후 진행된 동시대 미술품 경매의 경우도 크리스티와 소더비 양대 회사의 저녁 경매에서만 합계 2억7000만달러가 넘었다. 이처럼 근대, 동시대 할 것 없이 미술 시장에 쏠린 관심과 투자가 서구 미술시장을 사상 최고로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현재 이와 같은 시장의 초강세 속에서 동시대 미술의 경우 미국 작가들이 단연 압도적으로 블루칩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유럽 쪽에서는 비슷한 언어문화권역에 있는 영국과 독일 출신 작가들이 시장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프랑스의 현대미술은 그 영향력이 영국이나 독일과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매우 미미하다는 점이다.독일의 현대미술은 80년대에 등장한 신표현주의 계열의 작가들과 90년대 이후 급부상한 뒤셀도르프 아카데미 학파의 사진작가들, 그리고 최근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옛 동독지역 라이프치히 출신의 젊은 작가들에 의해 주요 계보가 이어져 오고 있다. 독일 신표현주의 계열의 대표적 작가로는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요그 임멘도르프(Jorg Immendorf),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시그마 폴케(Sigma Polke) 등이 있는데 특히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20세기 서구 회화사를 종결짓는 대표적 화가로 일컬어지며 상한가를 기록 중이다. 그의 1992년 작 회화( 크기 250 ×250cm)는 최근 경매에서 약 160만달러에 거래돼 시장에서의 인기를 입증했다. 안젤름 키퍼는 80년대 당시 신표현주의 계열 작가들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작가였으나 지난 90년대를 거치면서 상대적으로 작품 가격이 오랜 시간 소강상태를 보여 왔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 가격이 지난 4~5년 간 평균 3.8배 정도 상승한 것에 비해 안젤름 키퍼의 작품 가격은 90년대 가격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정체돼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안젤름 키퍼에 대한 소장가들의 관심이 다시 깊어지면서 매수세가 형성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 역시 80년대의 작품과 최근에 제작된 작품 사이에는 커다란 가격차가 존재한다. 규격에 따라 물론 달라지겠으나 그의 80~90년대 초반 작품이 100만달러를 호가한다면 같은 크기의 최근 작품은 가격이 그 절반 미만이다. 시그마 폴케의 경우 게르하르트 리히터나 안젤름 키퍼처럼 시장에 자주 등장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다. 게오르그 바젤리츠도 오랫동안 시장에서 소외됐으나 최근 신작 회화들이 전시회에서 성공을 거두며 수요를 촉발하고 있다. 그의 최근 회화는 200× 250cm 크기 기준으로 30만달러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이처럼 신표현주의 계열의 블루칩 작가들과 더불어 독일 현대미술을 이끌어가고 있는 집단이 독일 현대 사진작가들이다.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 토마스 루프(Thomas Ruff) 등으로 구성되는 독일의 대표적 사진작가들은 모두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의 베른트 힐라 베허 부부 교수의 제자들이다. 이들은 주로 ‘유형화’한 산업적 형태들을 디지털 프린트 작업을 통해 거대한 스케일의 화려하고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로 발전시켜 시장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이 그룹의 대표주자 격인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주요 작품은 70만~80만달러를 호가하며, 토마스 스트루스의 경우도 대표작은 30만~40만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독일 현대 사진작품의 가격은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급상승했으나 현재는 보합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 독일 현대 사진의 폭풍 같은 가격상승 움직임이 약간 잠잠해질 무렵 시장에 급부상한 그룹이 바로 라이프치히 출신의 젊은 화가들이다. 마티아스 바이셔(Matthias Weischer), 마틴 코베(Martin Kobe), 네오 라우흐(Neo Rauch), 팀 아이텔(Tim Eitel) 등 소위 라이프치히파 작가들로 불리는 이들은 뒤셀도르프 아카데미 이후 라이프치히 아카데미 출신들의 새로운 무브먼트를 보여주며 시장의 큰 관심을 얻고 있다. 이들은 아직 30대 초·중반의 젊은 작가들이지만 데뷔 이후 불과 3~4년 만에 대형 회화가 이미 수십만달러를 호가하며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독일과 더불어 유럽 출신으로 현대미술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작가들이 바로 영국작가들이다. 90년대 이후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를 대표주자로 한 소위 YBA(Young British Artists) 그룹의 작가들은 대부분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작품이 이미 수십만달러에서 수백만달러를 호가하는 블루칩 작가가 된 데미안 허스트는 물론, 게리 흄(Gary Hume), 마크 퀸(Marc Quinn),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 크리스 오필리(Chris Ofili), 채프먼(Chapman) 형제 등의 작품들이 소장가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외에도 조각가 아니시 카푸르(Anish Kapoor), 토니 크랙(Tony Cragg)의 작품들도 30만~50만달러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팝아트의 종주국이며, 70~80년대에 훌륭한 조각가들을 많이 배출한 나라임에도 상대적으로 그 위상이 매우 약했던 영국 현대미술은 YBA 이후 세계 무대를 화려하게 리드하게 됐다. 영국 현대미술의 세계 시장에서의 성공은 런던이라는 도시를 현대미술의 새로운 메카로 등극시켰다. 이처럼 미술시장이 인플레를 겪으면서도 독일과 영국의 많은 젊은 작가들이 급부상하고 그들이 짧은 시간 안에 블루칩 작가로 위상이 상승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는 현대 미술시장의 뜨거운 열기를 방증하는 또 하나의 지표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