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자산운용은 올해 증권가를 깜짝 놀라게 했다. 유리자산운용의 ‘유리스몰뷰티’가 지난 1년 동안 무려 151.06%(11월14일 기준)란 경이적인 수익률을 올렸기 때문이다. 실적이 좋은 상위 2, 3위권 펀드 수익률이 지난 1년 간 70% 대였던 점으로 볼 때 분명 놀라운 성과다. 같은 기간 종합주가지수 상승률은 40% 대였다.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좋은 성적표의 주역인 이택환 주식운용본부장이 정작 모험 투자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오히려 위험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고 기업의 내재 가치를 최고의 지표로 생각하는 정석 투자가다. 이런 성향의 장기 투자자가 어떻게 단기간에 이런 실적을 낼 수 있었을까. 이 본부장은 펀드를 만들었던 당시 상황부터 설명했다.“작년 중순께 종합주가지수가 800포인트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당시 여러 지표를 갖고 섹터별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가장 저평가돼 있는 분야가 시가총액 1000억원 미만의 소형주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왜 이렇게 저평가됐는지 원인을 분석해 봤습니다. 소형주는 거의 대부분 개인들이 투자하는 주식이었습니다. 그러나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개인들이 소형주를 대거 팔았습니다. 그런데 기관들은 소형주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소형주는 상장 종목의 70%를 차지하지만 시가총액 비중은 10% 수준에 불과합니다. 대형 기관 입장에선 소형주는 종목이 많아 신경을 훨씬 더 써야 하는 귀찮은 존재였죠.”이 본부장은 그러나 소형주도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대형주가 처음부터 대형주는 아니었다. 10년 전의 소형주가 대형주로 발돋움한 사례는 숱하게 많다. 그는 종목을 잘 선별해 장기 투자하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종목 분석에 들어갔다. 종목별로 검증해 보니 저평가된 소형주에 대한 확신은 더 커졌다.“개별 기업을 조사해 보니 ‘작지만 강한 기업’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겪으면서 생존 능력을 검증받은 업체들입니다. 대기업이 진입하기 어려운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이 높거나 기술력이 있으면서 확고한 고객 기반을 갖춘 업체들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습니다.”이렇게 만든 포트폴리오의 평균 주가수익배율(PER, 주가÷주당순이익)을 계산했더니 4가 채 안됐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시가총액이 100억원인 기업이 매년 25억씩의 순이익을 낸다는 의미였다. 다시 말해 4년만 보유하면 이자를 계산하지 않더라도 현재 시가총액과 같은 100억원의 순이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배당률도 금리보다 높은 5% 이상인 기업도 많았다.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삼테크란 종목이 있습니다. 반도체 유통회사로 작년 시가총액이 300억원이었는데 1년에 벌어들이는 이익이 100억원 대에 달했습니다. 특히 유통 업체는 재고관리를 잘못 하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데 제조업의 재고관리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리스크는 현저히 낮아졌습니다. 포트폴리오에 편입했는데 지금 이 회사 시가총액은 700억원 대에 달합니다.”그는 또 시가총액이 300억원 대였던 큐릭스를 매입했는데, 당시 100억원의 이익을 내고 있었고 보유 중인 다른 회사의 지분 평가액도 280억원이나 됐다. 물론 이 회사의 현재 시가총액은 1000억원으로 불어났다. 그는 제약주도 선호했다. 신풍제약의 경우 시가총액 300억원 대였을 때 매입했는데 이 회사도 100억원 수준의 이익을 올리고 있었다. 작년 시가총액 200억원 대였던 대웅화학은 이익 규모가 40억원이었고 보유하고 있던 대웅제약 관련 주식의 평가액이 400억원이나 됐다. 물론 대웅화학 주가는 작년 저점이었던 2500원에서 상승세를 보여 4000원 대로 올라 사들이기에 부담스러운 면도 있었지만 기업 가치는 주가보다 훨씬 높다고 판단, 매입을 결정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지금 대웅화학의 주가는 3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이 본부장 눈에는 이처럼 선명하게 들어왔던 주식들을 다른 기관들은 왜 발견하지 못했을까.“기본적으로 펀드매니저가 주식을 사서 수익을 내느냐, 못 내느냐는 종목에 대한 확신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기업 가치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좋은 종목을 사더라도 어느 정도 오르면 중간에 팔아버리고 맙니다. 우리 펀드가 높은 수익률을 낸 것은 주가가 올랐다 하더라도 더 상승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계속 보유했기 때문입니다.”결국 기업의 내재가치를 정확히 판단했고 이 가치에 비해 현저히 저평가된 주식을 사서 적정 수준에 오를 때까지 끈질기게 보유했기 때문에 성과를 올렸다는 얘기다. 물론 이런 투자가 성공하려면 기업 가치를 잘 판단해야 한다. 그는 장부상에 표현된 숫자만으로 기업 가치를 측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기업의 가치평가는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보통 기업 가치를 평가할 때 PER나 PBR(주가순자산비율), 배당수익률, EBITDA(이자 법인세 감가상각 차감 전 이익) 등을 활용합니다. 이런 지표들은 모두 회계장부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지표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회계장부에 자산이 현가로 계산돼 있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또 고객의 충성도 같은 중요한 요소들도 반영돼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장부만으로는 특정 기업이 산업 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그래서 그는 현장을 강조한다. 어떤 기업이든 현장을 방문하고 또 방문해서 회계장부에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가치를 정확히 찾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발로 뛰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그래서 그는 지독한 인내를 요구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회사에 아침 7시10분 정도에 도착해 각종 정보를 살펴본 후 장중에 매매 지시를 합니다. 장 마감 후 기업탐방을 하는데 1주일에 3~5개 기업을 돌아다닙니다. 퇴근 후에는 저녁 식사를 하고 30분 정도 산책한 뒤 오후 8시부터 11시까지 리포트를 읽으면서 아이디어를 냅니다. 아침에는 1주일에 2~3번씩 애널리스트를 불러서 세미나를 합니다. 매니저들의 머리에는 휴일과 휴식이 없습니다. 설령 몸은 쉬더라도 머리는 계속 일을 하고 있습니다.”기업 탐방 방식도 독특하다. 새 기업을 방문하는 경우는 전체의 30%에 불과하고 나머지 70%는 모두 이미 포트폴리오에 편입돼 수없이 찾아가 본 기업을 또 방문한다. 게다가 경쟁 기업까지 방문한다. 이러니 어지간한 기업의 내부 직원보다 속속들이 회사 사정을 꿰고 있다.“주식을 사고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매일 의심하며 살아야 합니다. 최근 기업 실적 때문에 단기간에 50개 기업을 다니다 보니 몸살이 났네요.” 그는 증권업계에 투신한 이후 줄곧 정석 투자를 배워 왔다. 1987년 신영증권에 입사한 이후 가치투자를 익혔고, 특히 1996년 신영투신 설립 준비작업을 하면서 1년 간 기업들의 10년치 재무제표를 몽땅 분석하고 기업 탐방을 다니는 일을 반복했다. 이런 집중 리서치를 통해 신영투신은 설립 첫해 운용사 10여 개 가운데 최고 실적을 내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그에게 집요할 만큼 가치 평가에 매달리게 하는 요인이 됐다.물론 그도 실패를 경험했다. 놀라운 수익을 가져온 스몰뷰티 펀드 내에 편입된 일부 정보기술(IT) 관련주는 오히려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기도 했다. 아직까지 시장에서 IT주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작년 한 때 종합주가지수가 하락하자 투자자들이 주식 비중을 줄이라며 직접 펀드 운용에 간섭을 해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가치 투자가 빛을 발할 것으로 믿었다. 다행히 예상보다 훨씬 빨리 저평가된 가치주가 시장에서 조명을 받았고 그는 기록적인 실적을 낼 수 있었다.다른 기관 투자가들이 거들떠보지 않았던 소형주에서 ‘블루 오션’(경쟁자 없는 새 시장)을 찾아낸 그는 이제 새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보통 포트폴리오를 만들 때 과거 실적이 좋았거나 자산이 많은 가치주를 중심으로 짜거나, 미래 성장성이 높은 성장주 중심의 펀드를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가치주와 성장주의 특성을 동시에 지닌 주식들이 숨어있습니다. 이런 주식을 토대로 ‘그로스 & 인컴’이란 펀드를 만들었습니다.”개인적으로 장세 전망을 잘 하지 않는다는 그는 장기적으로 종합주가지수가 1000포인트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급속한 상승도 어려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연 평균 15% 정도의 완만한 상승세를 보일 것이란 게 그의 견해다. 따라서 장세와 싸우기보다 종목별로 내재가치가 높은 주식을 찾는 게 좋다고 그는 권고한다. 그는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제약주가 각광받을 수 있으며 은행 등 금융주나 음식료 업종 관련주 등이 유망하다고 전망했다.“주식 투자에 환상을 갖는 것 자체가 금물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직접 주식에 투자해 돈을 벌려면 반드시 그만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투자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가장 잘 아는 주식을 사는 게 바람직합니다.” ☞ 유리 스몰뷰티펀드의 기간별 누적수익률 : ☞ 이택환 본부장의 투자 전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