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5천만원으로 매출 200억대 ‘미로비전’키운 채희승 대표

무로는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공이란 단일 목표로 달라붙어 있다. 멀리 보면 한 덩어리 같지만 속내는 다르다. 이합집산이 수시로 이뤄지고 있다. 그곳에서 성공의 깃발을 꽂은 30대 ‘영화장이’가 있다. 종합 영화제작 및 배급사인 미로비전 채희승 대표(31)다. 그는 충무로에서 ‘무서운 아이’로 통한다. 지난 98년 단돈 5000만원을 손에 쥐고 시작한 회사를 7년 만에 연 매출 200억원 대의 중견 영화제작사로 키웠기 때문이다. 채 대표의 성공스토리는 연세대 경영대학원에서 벤처창업의 연구 모델로 삼기도 했다. 그는 지난 6월 ‘충무로’를 또 한번 깜짝 놀라게 했다. 한국 주도로 일본에서 영화를 제작하기로 한 것. 이렇게 제작된 일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공포영화 ‘로프트’. 제작비 20억원 중 60%는 일본 니혼TV, 40%는 미로비전이 투자하기로 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국내 영화제작사가 일본 영화 제작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배들도 이루지 못한 준령을 넘은 셈이다. 국내 영화인들은 제작비가 싸고 시장 규모가 훨씬 큰 일본 시장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 채 대표가 영화를 만난 것은 차라리 운명적이다. 만 세 살이 되던 무렵 그는 아버지와 함께 간 극장에서 영화 ‘대부II’를 통해 스크린 세계를 처음 경험했다. 또래 아이들이 고작 동화책 속 그림을 볼 때 그는 정통 느와르 영화의 걸작 ‘대부’를 보면서 꿈을 키웠다. 영화배우 알파치노의 강렬한 모습은 마치 몽타주처럼 그의 뇌리에 파고들었으며 이때 그의 인생은 진작 영화판 쪽으로 결정이 났다.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흥행현황표’를 만들기 시작한다. 1주일 동안 영화 관련 광고물을 스크랩해 개봉영화의 관람객 수를 기록해 흥행현황표를 만든 것. 자신이 본 영화는 흥행요인과 실패요인들을 비교적 자세하게 적었다. 국내 미개봉작들을 어렵사리 구해 광고문구 등을 직접 기획하는 일도 해봤다. 그 자신도 어렸을 때부터 해 온 영화 흥행현황표가 훗날 영화제작자로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회고한다. 그의 ‘애어른’ 같은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스크린 로드쇼 등 당시 발간된 영화잡지를 모두 섭렵했다. 이미 중학생 때부터 ‘개같은 내인생’ ‘엘비라 마디간’ ‘굿바이 칠드런’ ‘고백’ 등 완성도 높은 영화들을 봤기에 영화를 보는 안목은 웬만한 전문가를 뺨쳤다. 채 대표는 스스로를 타고난 장사꾼이라고 말한다. 30대 초반치고는 대담하다는 느낌이다. 그의 초등학교 시절 얘기를 듣고 있으면 왜 그가 장사꾼을 천직으로 생각하는지 수긍이 간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그는 학교에서 ‘채 사장’으로 통했다. 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작한 사업(?)은 ‘학급문구점’. 미처 준비물을 가지고 오지 못하는 학생에게 교실에서 준비물을 파는 것이 사업 아이템이었다. 그는 학교 앞 문구점보다 싸게 물건을 판다는 전략을 사용했다. 수요는 폭발적이었다. 수요가 많다보니 벌어들인 돈이 꽤 쏠쏠했다. 그는 어떻게 시중가격보다 싸게 물건을 팔면서 이익을 남길 수 있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공급가를 훨씬 저렴하게 하면서 문구점보다 이익을 적게 남기는 전략을 폈던 것이다. 박리다매(薄利多賣:상품 하나의 이익은 적은 대신 많이 팔아 이윤을 내는 것)에 대한 이해를 초등학교 5학년 때 터득한 셈이다. 각종 물품은 담임선생님의 공무원증을 빌려 사학연금회관에서 사왔기 때문에 공급에도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고. 이렇게 벌어들인 돈을 가지고 학급신문을 만드는 데 썼으니 이익을 사회로 환원한다는 기업의 공익적 역할도 초등학교 때부터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준비된 영화제작자’인 채 대표는 충무로에서 각종 신기록을 만들어낸다. 그가 하는 일마다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국내 영화사로는 처음으로 미국 매버릭필름과 공동으로 할리우드 공포스릴러 영화 ‘샘의 호수’를 제작하기도 했다. 제작비 중 70% 이상을 투자해 출연배우 캐스팅과 촬영 등 제작 전 과정에 참여했다. 또 지난 99년에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칸 영화제에 한국 회사로는 처음으로 판매 부스를 차린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99년 클레르몽 페랑 단편영화제에 아시아 최초로 자체 세일즈 오피스를 설치했다. 그가 설립한 독립영화사 미로비전은 ‘미로 속에서 비전 찾기’라는 뜻의 줄임말이다. 회사 이름처럼 그는 사업 초기부터 복잡하고 척박한 국내 영화판에서 분명한 비전을 찾아갔다. ‘한국영화를 외국에다 팔자.’ 이 또한 어릴 적부터 그가 갖고 있던 분명한 ‘비전’ 중 하나였다. 한류 열풍 덕에 요즘에야 영화 수출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채 대표가 회사를 설립한 지난 98년 만해도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분명한 비전을 갖고 일로매진했다. 회사를 차린 이유도 우물 안 개구리인 한국영화를 좀더 외부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좀 괜찮다 싶은 영화가 수출은 고사하고 홍보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현실, 그나마 수출이 된다고 해도 외국 회사들이 중간에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 것을 보고 그는 분통을 터뜨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혈기왕성한 일반 영화팬이라면 이러한 현실을 지켜보는 데 급급했겠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았다. 모 영화잡지 객원기자로 활동하면서 쌓은 외국 영화인들과의 친분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유학비로 비축해 둔 돈과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5000만원으로 영화사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미로비전이 처음으로 제작한 영화는 단편영화 ‘소년기’였다. 한 편에 수억원이 드는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그는 완성도 높은 저예산 독립영화를 성장 발판으로 삼았다. 그는 이렇게 제작한 ‘소년기’를 이듬해 단편영화 최대 시장인 클레르몽 페랑 영화제에 출품했으며 그해 이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쾌거를 올렸다. 그 스스로도 지나온 7년이라는 세월이 ‘정말 정신이 없었다’고 말한다. 7년 새 3000만원이었던 회사 자본금을 10억원으로 불렸다. 7년 간 미로비전이 한국 영화계에 미친 영향은 상당하다. 비록 전체 금액만 놓고 보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수준에도 못 미치지만 한국영화를 세계 시장에 알리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돼 온 해외 시장 진출도 체계적, 전략적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올해도 2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직원이 불과 15명인 것을 감안하면 단순 계산해도 직원 한 명이 약 13억원 이상 매출을 올린 셈이다. 이젠 일본 영화사 등 해외 영화사들까지도 자국 영화를 팔아달라고 의뢰할 정도다. 특히 그는 단편영화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상업성이지는 않지만 완성도가 높은 단편영화를 발굴해 국내, 해외 시장에 배급하고 있다. 판로를 모색하는 단편영화 감독들에겐 가뭄에 내리는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전국 관객 517만명을 기록, 올 상반기 최대 흥행작으로 기록된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과 송강호 주연의 ‘남극일기’를 제작한 임필성 감독은 사업 초창기부터 그와 함께한 신예 감독들이다. 아마추어들의 취미생활쯤으로 치부되던 단편영화를 짭짤한 상품으로 탈바꿈시켰다는 점도 그와 미로비전이 만들어낸 성과다. 채 대표와 인터뷰하기 위해서는 2~3개월 전에 예약해야 한다. 사람을 가려가며 만나서가 아니다. 1년 중 80%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전화를 걸어도 해외 로밍(자동연결) 중인 경우가 태반이다. 전 세계에 펼쳐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낸다. 이에 대해 그는 “아직 (회사)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발품이라도 팔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료와 테이프를 잔뜩 넣은 여행용 가방을 들고 3등석 비행기를 타며 한 해에 20여 개가 넘는 해외 영화제에서 영화를 판매했다.‘맨땅에 헤딩하기식’으로 시작한 그의 마케팅 방법도 점차 세련미를 더해갔다. 비록 처음에는 문전박대당하기가 일쑤였지만 외국 업체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지금은 상당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덴마크의 거장 라스폰 트리에 감독은 그를 ‘동양에서 온 내 가족’이라고 부른다. 미로비전은 영화제작에서부터 수입배급, 영화수출 등까지 사업 영역이 다양하다. 회사 내에서는 ‘문어발식 경영’이라고 우스갯소리까지 한다. ‘오픈 유어 아이즈(Open Your Eyes)’는 미로비전이 수입배급에 자신감을 갖게 한 영화다. 98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만난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절묘하게 결합한 천재감독으로 손꼽힌다. 이 때만 해도 알레한드로 감독은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감독이 아니었다. 때문에 채 대표는 그가 만든 ‘오픈 유어 아이즈’를 싼 값에 수입했으며 종로 코아아트홀에서만 3만 명이 관람하는 등 적잖은 성과를 남겼다. 이후 알레한드로 감독과의 인연은 계속돼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디아더스(The others)’의 판권을 따내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녀에게’ ‘어둠속의 댄서’ ‘나비효과’ ‘쏘우’ 등도 흥행에 꽤 기여했다.반대로 해외시장에 내다 판 영화도 상당하다. 98년에 ‘텔 미 썸딩’ ‘주유소 습격사건’ ‘미술관 옆 동물원’ ‘원더풀 데이즈’를 일본과 대만에 총 63만달러를 받고 팔았고 지난해에는 최민수, 조재현 주연의 ‘청풍명월’과 ‘폰’ 등을 20개국 이상에 판매했다. 이미 제작 전에 ‘분신사바’는 300만달러를 받고 일본에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다. 또 올해는 이동건이 주연한 ‘B형 남자친구’를 일본 닛폰 헤럴드 사에 150만달러에 수출했다. ‘남극일기’ ‘강력3반’ ‘결혼원정기’ ‘미스터 소크라테스’ 등도 미로비전을 통해 전 세계에 수출된 영화다. 미로비전은 올해가 사업 전환의 중요한 시점이다. 영화 제작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것. 영화 제작은 채 대표의 숙원 사업이었다. 현재 미로비전이 제작 중인 영화 ‘강적(가제)’은 ‘정글쥬스’의 조민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박중훈 천정명이 주연으로 열연한다. 제작비 40억원을 들여 만드는 액션영화인 ‘강적’은 내년 5월께 개봉할 예정이다. ‘할리우드 키드’ 채 대표는 한국 영화야말로 영어권 영화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다고 말한다. 지난 수년 간 비약적 발전을 거듭한 때문에 연출력, 시나리오 수준이 모두 국제 경쟁력을 갖췄다는 것. 특히 그는 최근 몇 년 간 거대 자본을 무기로 들어오는 미국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와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경영학도 출신인 그가 꿈꾸는 영화 사업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그는 영화를 단순한 오락산업에 국한하지 않는다. 영화가 주는 파급효과는 실로 엄청나다. 영화 드라마로 시작한 한류 효과가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면서 산업 전반에 엄청난 파급 효과를 낳고 있는 것을 예로 든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독립영화로 시작한 젊은 영화감독들의 꿈을 열매 맺게 해주기 위해 그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지낸다. 무서운 신예 미로비전이 만들어 가는 한국 영화산업의 변화를 예의 주시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