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콤브 쇼메 아틀리에 최고책임자
랑스 보석 브랜드 쇼메(CHAUMET)를 알기 위해서는 그 옛날 나폴레옹이 세상을 지배하던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나폴레옹 시대 프랑스 왕실 전용 보석상에서 출발한 쇼메는 시계와 선글라스, 향수 등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며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해 왔다. 한국에 소개된 지도 벌써 7년째. 하지만 자크 콤브씨(Jacques Combes·58)를 만난다면 굳이 시계를 200년 이상 거꾸로 돌릴 필요가 없다. 그가 수석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는 쇼메의 아틀리에에는 이전 세대의 노하우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자크 콤브씨가 쇼메의 한국 론칭 7주년을 맞아 방한했다. 수석 디자이너로 전 제품 디자인을 총괄하는 그는 한국에서 쇼메 브랜드가 갖는 위상과 다른 보석 제품과의 차별성을 확인하고 싶다고 이번 방문의 의미를 설명했다. “내 몸은 비록 파리에 있지만 ‘쇼메’라는 공통분모로 묶여 있어 서울이 낯설지 않다”는 게 네 번째 한국을 방문한 그의 소회다.“귀족문화가 발달해 있는 유럽에서 아틀리에는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왕족의 보석, 결혼 기념품이 바로 우리 아틀리에 장인의 손을 거치기 때문이죠. 한국에 왕족문화가 남아 있지 않은 까닭에 이 같은 최고급 제품을 소개할 수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정통 보석을 다룬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자크 콤브씨는 “한국에서는 미드엔드(Mid-End) 제품이 인기”라며 “한국 소비자에게도 하이엔드(High-End)를 넘어 톱엔드(Top-End) 주얼리를 하루 빨리 선보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그가 이처럼 한국 소비자에게 특별한 관심을 표시하는 이유는 한국 소비자의 잠재성을 높이 사기 때문이다. “한국 소비자는 한 마디로 ‘프로페셔널’입니다. 어떤 제품을 구매하더라도 늘 많은 정보를 갖고 매장을 찾습니다. 더욱이 안목 높고 까다로운 한국 고객의 성향은 우리 디자인에 좋은 피드백으로 작용합니다.”프랑스 파리 방돔 광장에 위치한 쇼메의 아틀리에는 13명의 ‘장인’이 탄탄한 팀워크를 자랑하는 쇼메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아틀리에 보석 세공사의 평균 나이는 약 30세. 프랑스 최고 명문 보석학교를 졸업하고도 이곳에서 최소 5년간의 수습기간을 거쳐야만 ‘장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까닭이다. 이들은 왕실, 귀족 등 VIP 고객을 위한 맞춤 보석을 일일이 손으로 제작한다. 따라서 전형적인 디자인의 반지를 제작하는 데만도 5주가 걸린다. 왕실의 티아라(왕관) 제작에는 6명으로 이뤄진 팀이 약 한 달에 걸쳐 온 힘을 쏟는다. 이렇게 공을 들여 만든 모든 제품은 자크 콤브씨의 최종 승인 없이 세상에 나올 수 없다. 그가 “아틀리에를 통해 200년이 넘는 쇼메의 역사가 고스란히 계승돼 오고 있다”고 자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따라서 그는 “역사를 바탕으로 한 전통과 앞서 가는 창조성의 조화가 쇼메의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명품 브랜드에서 개인 아틀리에를 유지하는 일은 드문 케이스이지만 200년 넘게 노하우를 이어온 덕분에 어느 브랜드보다 앞서 유행을 선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최근 유행하는 크로노그래프 시계만 하더라도 쇼메에서는 이미 1997년에 선보였다고 한다.그는 21살에 보석을 만들기 시작해 30년 넘게 아틀리에에서 귀족과 왕실을 상대로 보석을 디자인해왔다. 그는 고객이 편안한 느낌을 가져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모든 제품을 디자인한다.“디자인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것은 사실상 고객의 몫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운 보석이라도 착용하고 활동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그는 소피 마르소, 카트린 드뇌브 등 유명 배우뿐만 아니라 모로코 공주 등 100명 이상의 왕족을 대상으로 보석을 디자인해왔다. 그가 생각하는 VIP 마케팅의 비결은 무엇일까.“열심히 듣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VIP 소비자일수록 남과 다르게 보이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하니까요. 제가 디자인에 대해 제안은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일단은 그들이 원하는 바를 디자인에 충실히 반영해야 합니다.”그는 개성을 중시하는 성향은 최고가 제품 소비자일수록 더 강하게 나타난다며 다양한 아이디어로 고객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뽑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VIP 소비자는 브랜드 로열티가 강하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이쯤 듣고 나니 한국에서 명품으로 불릴 만한 보석 브랜드를 찾아 보기 힘든 이유가 궁금해졌다.“좋은 디자인은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고객의 트렌드를 리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과거가 현재로, 현재가 미래로 이어지는 연속성을 바탕으로 디자인에 임해야죠.”그의 해석은 이랬다. 한국에도 과거 화려한 왕실의 유물은 남아 있지만 이것이 현재의 좋은 디자인 컨셉트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역사의 바탕 없이 테크닉만으로는 세계 정상의 보석 브랜드를 키울 수 없다는 것.디자인이 대중의 호응을 얻을 때, 또 자신이 디자인한 보석으로 왕족이 사랑을 맹세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는 자크 콤브씨는 ‘어울림’이야말로 디자인의 핵심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보석은 그 자체의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자신에게 어울리는 디자인을 고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무조건 일,일,일”이라며 “가을·겨울 시즌을 목표로 30대 이상 여성을 대상으로 한 특별한 컬렉션을 준비 중”이라고 조심스레 밝혔다.그는 “디자인은 단지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다”고 전제한 뒤 “정치 영화 음악 등 현재 내 주위를 도는 모든 것을 느낄 때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만큼 올 여름에는 휴가도 반납하고 일에만 매달릴 생각”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