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이면 라벤더가 절정을 이루고 가을이면 또 다른 색깔을 준비하는 곳. 프로방스는 낯선 이방인들을 설레게 하는 특별함이 있다. 빛으로, 색으로 사람들을 불러내는 남프랑스의 가을. 그 중심을 따라 가본다.
벤더와 양귀비, 그리고 녹색의 넓은 구릉으로 이어지는 프로방스의 여름풍경. 더위가 절정에 달할 즈음,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다나 산으로 걸음을 옮기지만 뭔가 특별한 경험을 찾는 유럽의 여행자들은 순례하듯 이 고장을 찾는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부드럽고 황홀한 색감에 넋을 잃고 원래 예정했던 일정보다 더 오래 머무르고 싶어진다. 프랑스다운, 프로방스다운 모습을 찾아서 온전한 나만의 휴식공간을 꿈꾸기 때문이다. 프로방스는 동쪽으로는 이탈리아 국경과 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카마르그 삼각주 지대와 랑그독 지방에 접한 넓은 지역이다. 북쪽으로 가면 지대가 높아지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눈에 보이던 올리브가 전나무로 바뀌면 프로방스를 벗어난 것을 알아챈다. 프로방스 지역은 스위스와 알프스에서 흘러오는 론강을 중심으로 두 갈래로 나뉜다. 오래 전엔 지중해로 흘러들어가는 이 강을 통해 각 지역 간의 교류가 이루어졌다. 옛 로마 시대의 식민지였던 이곳의 역사는 약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로방스라는 이름도고대 로마의 종속주였던 프로방키아에서 유래된 것으로, 로마시대에 로마문화가 번성했던 이곳은 지금도 여러 지역에 당시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프로방스의 많은 도시들을 섭렵할 수 없다면 엑상프로방스를 그 한가운데 놓아본다. 이 도시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나간 길처럼 프로방스의 모습도 다채롭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경험 많은 여행자들은 프로방스를 여행하는 코드를 몇 가지로 압축한다. ‘세잔과 고흐’가 이끄는 인상파 루트, 라벤더를 테마로 하는 라벤더 투어, 옛 로마의 흔적을 되짚는 역사기행, 남프랑스의 요리를 맛보는 미각여행. 어느 것을 길잡이 삼아도 훌륭하지만 이맘때는 역시 라벤더를 테마로 잡는 게 좋다. 시선 가는 데마다 근사한 풍경으로 마음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라벤더 밭, 거기서 이어진 라벤더 농장, 그리고 라벤더 뮤지엄이 ‘라벤더’에 관한 레슨 장소라면 시내 곳곳에 자리잡은 라벤더 용품 숍들이 완결편이 된다. 라벤더는 그야말로 시선이 가는 곳마다 지천으로 피어 있다. 올리브가 그렇듯 식용이나 다른 가공품으로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곳곳에 자리한 농원들이 그 대표적인 장소이다. 라벤더 밭이 많기로 유명한 소(Sault) 지역에 있는 라벤더 증류소인 레 쿨레(les Coulets)나 페라시에르의 가벨성(Chateau la Gabelle)은 다른 사람들이 여행하는 이 시기가 가장 바쁜 작업철이다. 라벤더를 수확해 풀과 분리하고 가공해서 원액을 추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 한쪽에는 라벤더를 이용한 플로리스트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아카데미와 레스토랑도 마련되어 있다. 역사가 수 백년이 넘는 고성이 그대로 작업장이고 이곳에서 프로방스는 물론 전세계로 수출되는 라벤더 용품의 기본원료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26570 Ferrassieres Tel:04 75 28 80 54 /www.chateau-la-gabelle.com)라벤더 여행길에 들를 만한 레스토랑은 그야말로 독특한 재료와 레시피로 이름 있는 곳들을 꼽을 수 있다. 그중 뒤발드소호텔(Hotellerie du Val de Sault)은 라벤더 샐러드와 라벤더 튀김 등 식탁으로 불러들인 라벤더의 모든 것을 맛볼 수 있는 곳. (Tel: 04-90 64 01 41) 크고 작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만들기 좋아하는 프랑스인들답게 라벤더 박물관(주소: Route de Gordes-Coustellet 84220 Cabrieres d'Avignon/Tel: 04- 90 76 91 23)도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다. 그야말로 라벤더의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고 라벤더로 만든 오일, 향수, 비누, 포푸리 제품도 전시 판매되고 있다. 이 고장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발전시켜온 라벤더 산업의 이모저모를 차분히 돌아볼 수 있다. 프로방스를 떠올리게 하는 화가는 고흐와 세잔이다. 태양의 화가 고흐는 아를과 생레미 지역을 중심으로 흔적을 남겼고 세잔은 엑상프로방스에 아틀리에를 남겼다. 어쩌면 엑상프로방스란 도시 자체가 세잔에게 헌정된 곳이란 느낌을 줄 정도로 도시 곳곳엔 세잔의 산책길, 생가, 그가 다니던 교회 등이 흩어져 있다. 현지 관광청은 ‘폴 세잔의 거리’라고 명명된 관광 루트까지 만들어놓고 홍보하고 있다. 길을 걷다 발견하는 ‘C’자 로고는 그의 그런 행적을 따라 도보여행을 떠나는 루트가 된다. 세잔은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나 비교적 여유 있게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는 1839년 1월19일, 엑상프로방스의 오페라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서 태어났다. 라틴어로 물의 도시라는 의미의 이 엑상프로방스는 과거 프로방스 백작령의 수도였다. 로마시대의 장군 세쿠스티우스가 샘물이 많은 이 지역을 통치한 데서 도시명도 그렇게 지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도시 한가운데에 김이 뿜어져 나오는 온천수가 흐르고 있을 만큼 물이 많은 곳이다. 15세기 초에 대학과 고등법원이 차례로 생기면서 프로방스 지방의 법과 정치와 학문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던 곳으로 아름다운 17세기의 건축물도 많고 여름에는 국제적인 음악제가 열려 작고 아담한 마을임에도 일년 내내 학생들과 방문객들로 붐빈다. 세잔은 이곳에서 일생을 보냈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엔 그의 그림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교외로 조금 나가보면 그가 사랑했던 프로방스의 풍경이 시간을 거슬러 눈앞에 펼쳐진다. 특히 이곳에는 1011m의 생 빅토르(Sainte-Victoire)산이 있는데, 종종 세잔의 그림 속에 나타난다. 지금도 그때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음은 물론 세잔이 그렸던 지점까지 표시해 놓고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산을 모델로 세잔이 그렸던 그 많은 작품들 중 오직 한 점만이 프랑스에 남아 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목탄을 가지고 낙서하기를 좋아했던 세잔은 이곳 출신의 에밀 졸라와 함께 근교에 있는 아르크 강가나 비베뮤의 채석장으로 매일 놀러 다녔는데 이 근방의 풍경은 후에 그의 작품 속에 몇 번이나 등장한다. 그의 나이 22세 때 엑상프로방스의 법과대학을 그만두고 화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갔지만 적응하지 못한 채 다시 돌아와 그림 작업을 계속했다. 당시의 아틀리에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유명한 관광지가 됨은 물론이다. 마르세유와 연결되는 기찻길 옆에 있는 마을 가르단과 마르세유 항구가 바라보이는 언덕이 있는 레스타크 등은 모두 세잔의 작품 모델이었던 곳들이다. 1906년 67세의 나이로 인생을 마감한 그가 묻힌 곳도 역시 부르공가 23번지, 엑상프로방스였다. ‘폴 세잔의 거리’라고 명명된 길, 그가 마지막까지 작업을 했던 아틀리에, 세잔의 풍경화라면 언제나 찾아볼 수 있던 생 빅토르산, 종종 스케치의 배경이 되었던 아버지 소유의 양 목장 등 엑상프로방스에선 어느 곳, 언제라도 세잔을 만날 수 있다. 프로방스엔 의외의 특별한 공간들이 많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장소들은 역시 부티크 호텔들. 사실, 유럽을 여행하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다른 곳에선 좀처럼 찾기 힘든 작고 아름다운 호텔들을 만나는 것이다. 몇몇 호텔 체인(고성 호텔연합과 사일런스호텔연합, 차밍호텔연합, SLH-스몰 럭셔리호텔연합 등)에 속하는 이들 호텔들은 옛 고성을 개조하거나 어떤 개인의 저택을 리모델링한 곳, 혹은 산속의 작은 별장처럼 자연과 어우러지게 건축된 것들로 시설과 서비스 면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소수의 특별한 손님들에게만 개방하는 폐쇄적인 경영 방침 때문에 규모가 작음에도 4성급 이상의 최고 호텔 등급을 갖고 있다. 이점에선 프로방스도 예외는 아닌 듯싶다. 우선, ‘사일런스호텔’이란 이름의 호텔 연합이 있다. 대개 일상적인 소음으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된 입지조건에 따라 가입되는 이 호텔 연합 소속의 호텔들은 말 그대로 정말 조용한 호텔들이다. 도시 근교나 숲속에 위치한 호텔들로, 일단 안으로 걸음을 내딛는 순간 완벽한 휴식을 보장해 준다. 프로방스에서도 이름난 호텔들을 손꼽아본다. 프로방스에서도 돌집들이 많기로 이름난 고르드(Gordes) 마을에 위치해 있다. 전형적인 프로방스 스타일의 건축양식과 라벤더 향이 아름다운 정원, 늘 주변을 에워싸는 물안개 때문에 종종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34개의 호화로운 객실과 프랑스 전역에 알려질 만큼 유명한 스파와 마사지로 여성 고객이 많은 편이다. 양치기들의 쉼터인 옛 가옥을 보수하여 꾸민 운치 있는 레스토랑과 한여름의 햇볕을 즐길 수 있는 야외 테라스, 그리고 호텔 내부를 장식한 아름다운 그림들까지 우아하면서도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생레미에 있는 호텔로 산속에 위치해 있다. 객실과 라운지가 프로방스의 색깔-붉은색, 파랑색, 노랑색 등-로 꾸며져 있고 이런 컬러 컨셉트의 인테리어는 객실 내부까지 이어진다. 실외 수영장을 에워싼 호텔의 구조는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그대로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호텔 소유주의 부인이 직접 참여한 인테리어(앞서의 호텔도 그녀의 작품이다. )는 고객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남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캐노피가 높게 드리워진 딜럭스 스위트룸, 수영장이나 자쿠지가 딸린 스위트룸, 최고급 은 식기와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돋보이는 레스토랑 등은 현대식 호텔에 익숙한 여행객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사일런스호텔 연합 소속으로 도무지 그런 장소에 호텔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숲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누군가의 장원으로 들어가는 듯한 입구엔 오래된 분수가 손님들을 맞고 있고 호텔은 온통 담쟁이 덩굴로 뒤덮여 있어 주변 환경과 그럴듯하게 어울린다. 호텔이라기보다는 잘 가꾸어진 장원에 온 듯한 느낌. 프로방스 풍 가구와 패브릭이 토속적이고, 로비를 지나 만나는 수영장과 테라스의 레스토랑도 아담한 분위기를 연출해 준다. 객실 역시 앤티크 가구와 새하얀 리넨 침구로 장식되어 있고 매끄러운 타일 바닥이 지역 특성을 살려준다. 아침에 제공되는 갓 구어낸 빵과 신선한 과일 주스 등 세심하게 배려한 메뉴와 눈을 맞추고 미소짓는 스태프의 서비스가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