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올슨 한국 ING생명 대표

머리가 낮아 가끔 머리가 부딪히는 불편함 빼고는 한옥 생활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지난해 8월부터 국내 최대 외국계 보험사인 한국 ING생명보험의 대표를 맡고 있는 커트 올슨 사장. 처음 맞닥뜨리면 198cm에 달하는 거구가 부담스럽지만 대화를 할수록 인상 좋은 전형적인 미국 아저씨 느낌이다. 올슨 사장은 일반적인 외국계 최고경영자(CEO)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미식축구 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1977년 ING에 입사했다. 벌써 근속 33년차다. 이직이 일반적인 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 진출해 있는 외국계 금융회사에서도 보기 드문 케이스다. 올슨 사장은 농담조로 “와 달라는 회사가 없다 보니 한곳에서 오래 근무하게 됐다”면서도 “사실 미국 친구들도 한 회사에서 이처럼 오랫동안 근무하고 있는 나를 부러워한다”고 말했다.네덜란드계인 ING는 유독 가족주의 기업 문화를 강조한다. 이에 대해 올슨 사장은 “글로벌 기업이지만 모체가 네덜란드계라서 가족처럼 일하는 분위기를 중시한다“며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지만 ING는 한국 외환위기 당시 외국계 금융사 가운데 가장 먼저 한국 금융회사에 투자하고 이번 금융 위기에서도 달러를 들여오는 등 한국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올슨 사장에게 한국은 첫 해외 부임지다. 그는 “그동안 개인적으로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현지 책임자로 해외에서 근무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라며 “2007년 12월 처음 서울을 방문했을 때 느낀 한국인들의 열정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첫 외국 생활이 불편할 법도 한데 그는 대만족이란다. “일부러 전통 한국식 집에서 살고 싶어 성북동의 개량 한옥을 사택으로 택했습니다. 성북동에 모여 있는 한옥 스타일의 주택과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삼청동 한옥 전경이 정말 멋있습니다.”그는 지난해 한국에 오자마자 미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색다른 경험도 겪었다. “고객과 주말 라운딩을 할 때 미국은 대부분 5분 거리인데 한국에서는 여름에 6시 티오프를 위해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난 적이 있어요. 가서 보니 골프장에 라이트 시절까지 갖춰져 있어 신기했어요. 집 근처에 연습장이 있는데 밤늦은 시간까지 연습하는 한국인들의 골프에 대한 열정은 정말 놀랍습니다.”ING본사가 퇴직연금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 온 그를 선택한 것은 한국에 퇴직연금 시장이 본격 형성되고 있는 점을 겨냥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올슨 사장은 1981년부터 줄곧 퇴직연금를 맡아 왔으며 한국 부임 직전에는 북미 퇴직연금 대표를 지냈다. 한국의 퇴직연금 시장은 이제 갓 시작되는 발아 단계로 미국의 1980년대와 비슷하지만 ‘빨리빨리’ 문화를 고려할 때 단기간에 급팽창할 것이라는 게 올슨 사장의 분석이다. 올슨 사장을 만나 ING생명의 올해 전략과 글로벌 금융 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과 다국적 금융회사에 대해 물어봤다.첫인상은 한국의 보험 시장이 굉장히 치열하다는 점입니다. 신규 고객 유치는 물론 계약 유지 노력도 무척 필요한 시장입니다. 또 한국은 부의 증식과 함께 노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향후 노후 연금 시장의 잠재력이 풍부하다고 봅니다. 부임 후 금융감독원과 같은 정부 기관 관계자들도 자주 만나는데 ‘터프’하지만 기업과 소통을 중시한다는 인상입니다. 어느 면에서는 미국 정부 당국자보다 더 친기업적입니다. 예를 들면 금감원이 각 보험사마다 한 명씩의 담당자를 정해 줘 업무와 의사소통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런 시스템은 미국보다 훨씬 효율적인 것 같습니다.현재와 같은 금융 위기에서 자유로운 기업은 없습니다. 특히 금융회사의 위험 노출이 컸는데 지난해는 주식, 신용 시장의 변수가 최근 50년내 최악이었습니다. 하지만 ING그룹은 손실 규모가 타사에 비해 적은 편입니다. 네덜란드 정부가 100억 유로 규모의 자본 확충을 했는데 앞으로 발생할 어떤 위기에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완충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여러 부정적 뉴스를 접하다 보면 불안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팩트입니다. 한국에서 ING는 금융 당국의 자산 건전성을 충족하고 있습니다. 작년 말 3500억 원 규모의 자본 확충을 통해 지급 여력 비율을 200% 수준까지 끌어올렸습니다. KB생명의 ING 지분 14.9%를 3390억 원에 재인수한 것도 자금 여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월 초 한국을 방문한 아·태지역 보험 자산운용 책임자인 한스 반 더 노르다 회장도 한국의 높은 잠재력을 보고 향후 투자를 지속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변화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지난해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고객들은 기존 금융 상품에 대해 회의가 커졌습니다. 고객들의 금융 산업 전반에 대한 불안감이 그 어느 때보다 팽배해 있는 상황입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올해 경영 화두를 ‘질적 성장(Growth through Quality)’으로 잡았습니다. 한국 진출 이후 지난 10년 동안 외국계 보험사로는 1위, 전체 순위에서도 4위를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했습니다. 올해는 양적 팽창에 앞서 엄격한 리스크 및 비용 관리를 통해 고객의 자산을 보호할 수 있는 상품 개발에 초점을 둘 계획입니다.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 중 하나입니다. 그만큼 퇴직 이후를 적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준비 필요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퇴직연금을 2005년 12월부터 시작했는데 지난해 말 기준 6조6000억 원, 도입 사업장 5만462개, 가입 근로자는 112만 명에 달하는 등 3년 만에 안정적 성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퇴직연금 시장은 피고용자들이 퇴직 이후의 리스크를 이해하는 인식 전환이 시장 팽창의 핵심입니다. 미국에서도 1980년대 중반 보험 주체가 고용주에서 근로자 개인으로 넘어가면서 급격하게 시장이 확장됐습니다. 한국의 경우 2009년 하반기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 개정되면 2011년부터는 급팽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일단 중견 기업과 외국 투자 법인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퇴직연금 분야에서 40년의 노하우를 쌓아 왔기 때문에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인사 컨설팅 및 노무법인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퇴직연금을 포함한 통합 기업 복지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2년 전부터 관련 인력들을 미국에 3개월 동안 파견해 미국의 퇴직연금 제도 가운데 장점을 취해 한국식으로 개발하는 프로그램도 가동하고 있습니다. 안정성과 신뢰성이 중요한 퇴직연금 분야는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조언해 줄 수 있는 파트너가 중요합니다.치솟는 실업률과 부동산 가격 하락이 언제 멈추느냐가 관건입니다. 개인적으로 경제에 대해 낙관론을 견지해 왔지만 이번 상황만큼은 자신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만일 향후 2∼3개월 동안 실업률 상승이 멈추지 않는다면 주택 시장은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이 경우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했던 ‘알트A’까지 부실화될 우려가 있습니다. 실업으로 인해 취약해진 미국의 가계 구조상 주택 시장은 당분간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현재 미국 내 경기가 완전히 바닥을 찍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미국 정부의 구제금융 시스템은 전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금융회사에 막대한 구제금융을 쏟아 붓는데 대한 부정적 의견이 적지 않습니다. 부실기업은 망하게 하고 살 수 있는 기업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정책이 보다 효율적이고 경제가 바닥을 치고 반등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정부의 구제금융 비용이 갈수록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이유도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회사에 막대한 구제금융을 투입하기보다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를 위해서는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집중적 투자가 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한국 ING생명 대표미 콜로라도웨스턴주립대 경영·회계학미 ING 퇴직연금지역총괄본부장영업부사장사장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