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이 하 수상하고, 그렇지 않아도 바쁜데 무슨 취미 활동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경영의 큰 구도는 집무실에서만 잡는 게 아니다. 더구나 요즘엔 최고경영자(CEO)도 멀티 플레이어가 돼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잘나가는 CEO일수록, 샐러리맨과 스튜던트를 더한 ‘샐러던트’가 돼야 한다. 또한 이런 때일수록 자기 발전에 신경 쓰는 알짜 경영인이 돼야 한다. CEO는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인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CEO가 취미 생활과 기업의 경영을 분리하는 시대는 갔다. 와인은 비즈니스 석상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됐으며 미술 작품 몇 점은 가지고 있어야, 그리고 요즘 뜨고 있는 중국의 현대 작가 한둘의 이름 정도는 외우고 있어야 부하 직원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 세상이 됐다. 조깅 말고 그보다 더욱 역사적인 백그라운드를 가진, 전직 미국 대통령 서넛은 했던 승마 정도는 해야 그들만의 디너에서 외면당하지 않는다.최고경영자(CEO)의 행동반경은 좀 더 독특하고 좀 더 글로벌한 주제와 아이템으로 확장되고 있는 중이다. 글로벌한 문화 코드는 위에서 말한 것을 비롯해 누구에겐 모국어인 영어를 매끄럽게 구사할 수 있는 스킬, 각국의 음식, 그리고 음악이나 미술 작품에 대한 이해, 요트나 승마와 같은 스포츠 문화로 확대된다. CEO와 전문 경영인, 그리고 대학교수 같은 학계 종사자나 전문직에게는 이 글로벌 문화 코드의 학습이 필수다.안주하는 CEO의 모습을 탈피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활동으로 반경을 넓혀가는 이를 일컫는 CEO 샐러던트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대학을 비롯한 여러 교육기관, 또는 프라이빗한 커뮤니티나 일대일 레슨이라는 방식으로 등장하고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감성 스피치나 리더십 스터디, 제2, 또는 제3 외국어, 다양한 스포츠 프로그램과 범문화적 취미 활동을 최고경영자과정과 소규모 커뮤니티 프로그램에서 만나본다.요즘 비즈니스 미팅에서 아이스 브레이킹용으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화젯거리는 와인이다. 이를 겨냥해 신사동 가로수 길에 있는 와인 비전은 ‘노블레스 정규 과정’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CEO가 원하는 프리미엄급 와인을 시음하고 그 특별한 맛과 향, 역사와 문화를 풀어 설명해 준다. 누구나 원하지만 아무나 쉽게 맛볼 수 없는 최상급 와인을 만나는 동시에 와인 스타일, 품종과 생산지역, 테이스팅법, 음식과 와인 매치, 와인 에티켓 등을 배우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인맥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 와인비전의 설명이다. 3시간씩 총 5회에 걸쳐 와인에 대한 이해와 시음을 하며 수강료는 150만 원 정도다.삼성경제연구소도 수년째 CEO를 대상으로 사진과 와인 클래스 등을 운영 중이다. 특히 글로벌 CEO를 위한 와인 & 컬처 프로그램은 전문 와인 강사를 초빙해 국내 CEO를 대상으로 와인 상식뿐만 아니라 특급 와인 소개, 드레스 코드, 사진 촬영 응대, 시가를 피우는 방법까지 가르치고 있다.음악과 미술이 함께하는 곳도 있다.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각광받는 인터알리아다. 코엑스 근처에 자리 잡은 이곳에서는 유명 작가의 작품과 함께 와인 잔을 기울이며 오페라나 재즈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아트 작품에 관심 있는 VIP들은 내부 독립 공간에서 큐레이터의 도움을 받아 개인적으로 아트 클래스를 열거나 음악 모임을 갖기도 한다.일본과 프랑스 요리를 가까이서 보고 경험하며 그 나라의 음식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츠지원(tsuji+1)의 클래스는 여성 CEO나 임원들에게 주목받는다.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선진 식문화를 즐길 수 있는 프레스티지 클래스이며 일본 요리, 프랑스 요리, 제과·디저트 3개 과정을 소수 멤버로 운영된다.비즈니스 디너 테이블에서 와인이나 그림, 음악을 마스터했다고 끝은 아니다. 사실 그것들보다 앞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이 바로 영어 능력이다. 해외에 오랜 기간 거주했거나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공부한 CEO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상당수 CEO에게 영어는 낯설고 두려운 존재다. 공개적인 영어 클래스에 합류하기 쉽지 않은 CEO를 위해 오렌지 커뮤니티 한동훈 사장이 나섰다.오렌지 커뮤니티는 한국 CEO를 위한 영어 학습 커뮤니티다. AWC(American Women’s Club)라는 자선 단체의 미국인과 한국 CEO가 일대일로 만나 1주일에 2시간씩 영어 공부를 한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영어 클래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렌지 커뮤니티가 특별한 이유는 미국 대사 부인, 외국 기업의 한국 지사장 부인 같은 격조 높은 AWC의 멤버들과 어울리면서 양질의 인간관계를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식사를 하거나 운동을 하며 진행하는 수업 방식은 마치 골프의 원 포인트 레슨과 비슷해 영어 스킬과 함께 식사 예절과 비즈니스 에티켓 등의 맞춤 수업을 받을 수 있다. 멤버십 비용을 제외하고 석 달에 150만 원씩 기부해 AWC의 국제적 나눔 행사에 한국 CEO가 동참하는 사회적 의미도 남다르다. 멤버로는 대한전선 양귀애 명예회장, 스포츠토토 오일호 대표, 코스콤 전 한국증권전산 김광현 대표, 한국의과학연구소 이경률 이사장을 비롯한 변호사와 의사들이 주요 멤버로 포진해 있다.CEO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뭐니 뭐니 해도 각 대학이나 연구기관이 마련한 최고경영자과정이 대표적이다. 기존 재벌들의 사교 모임, 소수 친교의 장이라는 의미를 넘어 경영자의 교육이라는 본질적인 목표를 중시하는 최고경영자과정은 1976년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처음 등장했다.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은 서울대 경영대 교수와 업계 최고 인사를 강사진으로 구성해 CEO들이 트렌디한 시장의 흐름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매년 시대적 흐름을 반영해 새로운 주제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신설하므로 본인의 교육 목적을 분명히 설정한다면 교육과 인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특히 서울대 최고 경영자과정은 지원 자격을 공·사 기업체의 회장, 사장 및 고위 임원, 정부 각 기관의 2급 이상 공무원, 각군의 장성급 장교 등으로 한정하고 있어 좀 더 특화된 인맥을 통한 경영 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최근에는 개성 있는 최고위 전문가 과정을 새롭게 개설하고 있다. 마케팅이나 인사 관리를 기본으로 하는 경영학 강좌와 함께 감성적 강좌를 내세운다. 연세대 AMP과정에서는 CEO의 주요 관심사인 와인과 비즈니스, 골프와 리더십에 관한 강좌가 21주간 5개월 스케줄로 진행된다. 과정 중간에 해외 기업을 탐방하거나 동문의 강의를 통해 실전 경험을 전수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된다.아시아에서 지속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는 한류 문화에 전문적으로 접근하는 과정도 있다. 중앙대 한류최고위과정이 그것이다. 국가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고 있지만 체계적인 지식과 교육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취지에서 개설됐다. 도쿄와 상하이 연수를 통해 한국 문화 현장을 점검하고 남도의 국악 체험, 부산국제영화제 참가,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나 ‘퀴담’ 등 명품 서커스 관람을 통해 공연 예술에 대한 한 차원 높은 시각을 키울 수 있다. 특히 중앙대 최고경영자과정은 동문 네트워크의 친밀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베르아델 승마클럽은 승마 문화와 최상위 승마 리더십을 키우는 정통 승마에 대해 실질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경희대 승마 최고경영자과정을 개설해 운영 중이다.“국제적으로 최상위 의전이나 사교로서도 중요한 승마에 대한 지식이 전무합니다. 한국의 CEO들이 선진 외국의 대표와 승마를 함께하지 못하는 것은 글로벌 시대 리더로서 경쟁에도 불리하다”고 승마 클럽 관계자는 말한다. 한국일보 장재구 회장, 제일화재 이동훈 회장, LS그룹 구자열 부회장, 삼성전기(주) 강호문 사장 등이 이 과정을 통해 교양 승마를 마스터했다.이 강좌에 참여 중인 한 회원은 승마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유럽에서 선진 각국의 인사들과 승마를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승마에는 문외한이어서 그들과의 스포츠 교류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습니다. 한국을 돌아가면 꼭 배워야겠다고 결심했고, 지금은 심신 건강에도 이보다 좋은 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이처럼 색다른 문화나 학문의 습득은 경영과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해 CEO들은 그 안에서 경영의 아이디어와 영감을 발견하기도 한다. 특히 자기 주도형 CEO 스타일이 가장 많다고 조사된 기존 한국의 CEO가 딱딱한 이미지를 벗고, 차세대 이상적 리더십으로 거론되는 관계 중시형 CEO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과거의 조찬이나 만찬 모임 대신 취미를 중심으로 한 자유로운 커뮤니티 형성이 필수 불가결한 건 아닐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아야 하는 CEO들에게 창조적 경영의 중요성과 인적 네트워크라는 매력적인 선물을 줄 수 있는 이런 프로그램들은 어쩌면 구세주와 같을지 모르겠다.불경기 때 가장 확실한 투자는 자기 계발이다. 하지만 교육기관에 일일이 찾아다닐 시간이 부족하다면?온라인 클래스에 눈을 돌려보자. 컴퓨터 앞에 앉아 그저 ‘클릭’만 하면 무궁무진한 정보가 눈앞에 쏟아져 나온다.한국경제신문은 기업 경영자들을 위한 온라인 교육 사이트인 ‘한경 HiCEO(www.hiceo.co.kr)’를 운영 중이다. 일반 최고경영자(CEO)과정의 10분의 1 정도의 가격으로 1년 내내 대한민국 최고 강사진의 동영상 강의를 시청할 수 있는 데다 각종 오프라인 모임을 통한 네트워크 형성도 가능하기 때문에 CEO들 사이에서 이미 입소문이 났다. 대학 CEO과정, 경영자 조찬 모임 등 기존 경영 교육의 단점을 보완한 새로운 온라인 교육 모델을 선보이며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 트렌드와 최신 이론에 관심이 많지만 한 주에 며칠씩, 그것도 6개월~1년간이나 저녁 시간을 투자할 수 없는 리더들에게 자기 계발과 경영 능력 향상의 기회를 제공하는 가치를 갖고 있다.HiCEO는 매일 업데이트되는 4개의 동영상 콘텐츠를 통해 사회 각 분야의 리더들에게 마치 현장에서 듣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강의를 빠르고 쉽고 재미있게 전달한다. 특히 강의 동영상과 함께 그 내용을 요약한 프레젠테이션을 제시해 전달력을 높이고 있다. 시간에 쫓기는 리더들을 위해 강의 시간은 대체로 5~10분에 맞춰져 있다.강의의 범위는 경제 경영에서 교양 리더십 건강 웰빙 문화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단순한 실무 지식을 넘어서 조직의 리더가 갖춰야 할 지식과 정보들을 폭넓게 제공하고 있다. 거시경제의 흐름을 짚어주는 ‘경제전망대’, 변화와 혁신의 도구를 모은 ‘비즈 경영노트’, 자신만의 리더십 스타일을 제시하는 ‘리더십 라운지’, 웰빙 트렌드를 따라잡을 수 있는 ‘로하스 존’ 등으로 이뤄져 있다.오프라인 활동도 이뤄진다. 회원들에게는 다른 업종, 타 지역의 리더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회원은 가입과 동시에 오프라인 네트워크인 한경 CEO클럽에 자동으로 가입되며 매달 열리는 한경 다산포럼과 비정기적으로 개최되는 세미나에 초대된다. 업종별 부문별 직급별 지역별 관심별 각종 소모임도 계속 만들어진다.CEO로서의 역량을 제고하고 사회적 인맥 관계를 넓히는 기회로 각광받고 있는 최고경영자과정(AMP-Advanced Management Program, 이하 AMP). 현재 국내에는 100여 개 대학에서 오프라인으로 운영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회사의 중요 업무를 처리하는 CEO 입장에서 AMP 과정에 참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은 이를 위해 AMP과정을 온라인으로 구현한 e-CEO 과정을 운영, 많은 경영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고 있다.e-CEO과정에는 경영학 이외에도 골프 모임, 등산 모임 등을 통해 심신을 단련하는 한편 도자기 굽기, 승마 학습, 클레이사격, 테이블 매너 등 다양한 체험 행사를 진행 CEO로서 갖춰야 할 교양 강의도 포함하고 있다.여기에 학기 중 중국 3대 명문대인 베이징대, 인민대, 칭하대와의 학술 교류를 통해 최신 트렌드의 국제 감각을 익히고 그들의 경제적 상황 이해 및 기업 환경에 대해서도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앞으로는 중국 이외에도 선진국인 미국, 일본뿐만 아니라 신흥개발국인 브릭스 국가들의 대학들과도 활발하게 학술 교류를 점차 늘려나갈 예정이다.글 김지연 기자, 김형수 프리랜서 에디터 jykim@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