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주식…호남석유화학

유화학 산업은 전방 산업에 속하는 전기 전자 자동차 기계 등에 기초 소재를 제공하는 산업인 만큼 경기 사이클에 아주 민감하다. 이런 점에서 석유화학 업종은 대공황 이후 최대 경제 위기라는 현 국면에서는 그리 매력적인 투자 대안이 아닐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석유화학 산업의 경기 사이클은 7~8년 정도다. 이미 지난 2007년 말 정점을 찍은 후 2008년부터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불황은 상당 기간 더 이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러니 만큼 석유화학 업종에 대한 투자자들의 시선은 싸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국면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주식시장의 마력이듯, 암울해 보이는 석유화학 업종에서도 잘 찾아보면 투자 매력이 충분히 넘쳐나는 주식이 있게 마련이다. 석유화학 업종 내 알짜주로 꼽히는 호남석유화학이 그런 종목이다.김학주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어려운 국면에서는 현금 자산이 많은 기업이 최고”라며 “현금 보유량이 많으면서 주가도 저평가된 기업들이 시장의 출렁임에 상관없이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면에서 호남석유화학은 현 시기 투자 대안으로 손색이 없다”고 덧붙였다.호남석유화학의 또 다른 장점은 불황기에 잘나가는 롯데그룹 계열사라는 점이다. 현재 호남석유화학의 지분 구조를 보면 롯데물산이 33.6%의 지분을 보유하며 최대주주로 있다. 그 외에 롯데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인 호텔롯데가 13.6%, 일본 롯데가 10.0%의 기분을 갖고 있다. 이들 3개 롯데그룹 관련사의 호남석유화학 지분율은 57.3%에 달한다.그렇다면 호남석유가 롯데 계열사란 점이 왜 이 시기에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일까. 해답은 롯데그룹의 경영 방식에 있다. 롯데는 재계에서도 지나칠 정도로 보수적인 경영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비슷한 외형의 금호 두산그룹 등이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한 사업 확장에 나설 때에도 롯데는 그다지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이런 보수적인 경영은 고성장 시대에서는 단점으로 작용한다. 실제 주식시장에서도 롯데 관련주는 안정성은 뛰어나지만 성장성이 낮다는 이유로 최근 몇 년간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불황의 시대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더구나 지금처럼 경기가 극도로 침체될 경우는 투자로 덩치를 불렸던 기업들보다는 현금을 쥐고 있는 기업들이 대접을 받는다. 롯데는 과거 호황기 시절 현금을 차곡차곡 쌓아 왔던 덕분에 지금의 불황기를 가장 안전하게 지나가고 있다. 오히려 불황기를 이용해 시장에 매물로 나온 기업들을 아주 헐값에 챙기고 있다. 최근 두산의 주류사업부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결국 호남석유는 이런 롯데그룹의 계열사라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배경을 갖춘 셈이다.그렇다면 호남석유 자체의 기업 가치는 어떨까. 호남석유는 1976년 설립된 국내 대표적인 NCC 업체다. NCC는 나프타 크래킹 센터(Naphtha Cracking Center)의 머리글자로, 정유제품인 나프타를 열분해해 석유화학 기초 원료가 되는 에틸렌 등을 생산하는 사업을 일컫는다. 호남석유는 창업 이후 자체 생산 제품군을 꾸준히 확대해 온 것을 비롯해 롯데그룹과 달리 적극적인 M&A를 통해 회사 규모를 키워왔다. 석유화학 산업도 일종의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산업인 까닭에 규모 확대는 불가피한 측면이 컸다. 지난 2003년 현대석유화학을 LG화학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한 후 현대석유화학 2단지를 확보했고 2004년에는 중소 우량업체인 케이피케미칼을 인수했다. 이어 2009년 1월 2일에는 롯데대산유화를 흡수 통합, 규모의 경제 효과를 한층 높였으며 제품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동시에 구축했다. 이번 롯데대산유화 합병으로 호남석유의 에틸렌 생산 능력은 연산 175만 톤으로 여천NCC에 이어 국내 2위 규모다. 그러나 여천NCC의 지분은 한화석유화학과 대림산업이 양분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호남석유는 단일 기업으로는 국내 최대 에틸렌 생산 업체에 해당된다.전문가들은 2009년 하반기부터 세계경기가 서서히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 경우 국내 석유화학 업체 중 호남석유의 실적 개선 속도가 가장 빠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왜냐하면 경기가 바닥을 치고 반등 국면으로 접어드는 초기에는 일반적으로 장난감 의류 등 내용 연수가 짧은 저가 제품에 대한 소비 회복이 가장 빠른데, 호남석유는 폴리프로필렌(PP)과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타이렌(ABS)과 같은 장난감 소재와 폴리에스터 섬유 등 의류 소재 분야에서 가장 대표적인 기업이기 때문이다. 황규원 동양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호남석유 주가는 경기 급하강에 따른 실적 둔화를 반영해 이미 과거 고점 대비 큰 폭의 조정을 받은 만큼 이제는 악재보다 올 하반기부터 전개될 긍정적인 모멘텀에 주목할 때”라고 말했다.특히 연초 롯데대산유화의 흡수 합병을 계기로 생산 능력이 크게 확대된 만큼 이에 따른 국내 가격 결정력 강화, 잉여 현금 창출 능력 확대 등을 감안하면 향후 주가의 모멘텀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호남석유는 롯데대산유화 합병으로 설비 능력 측면에서 국내 최대 석유화학 회사인 LG화학과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석유화학 제품 합산 규모는 연산 673만 톤으로 LG화학의 974만 톤에 이어 두 번째다. 앞에 언급했듯이 시장 규모가 큰 에틸렌만 놓고 보면 단일 업체로는 사실상 1위다. 더구나 이번 합병으로 그동안 보유하지 않았던 ABS 및 폴리스티렌(PS) 원료를 확보해 탄탄한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됐다.또 이번 합병에 따라 호남석유의 현금 창출 능력은 더욱 강화됐다. 이미 이 회사는 2008년 말 기준 4794억 원의 순현금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돼 국내 석유화학 업체 중 유일하게 순현금을 보유한 기업이다. 2008년 말 기준 부채비율 32.2%, 유동비율 268%로 재무 안정성도 높다. 여기에다 이번 롯데대산유화 합병에 따라 보유 현금은 6300억 원으로 늘어나고 경기 하락기에도 최소한 연간 2000억 원 이상의 잉여 현금 창출 능력을 확보하게 됐다.자회사인 롯데건설의 상장이 예정돼 있는 점도 긍정적인 재료다. 호남석유가 32.8% 지분을 갖고 있는 롯데건설은 작년 6월 상장심사를 통과한 데 이어 올해 2분기 또는 3분기 중 상장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에 따르면 롯데건설의 상장 가치는 금융 환경 악화를 감안하더라도 순자산 가치 기준 1조9000억 원 정도에 달한다. 호남석유의 지분 가치로 따지면 6232억 원으로 전체 시가총액의 40%에 달하는 만큼 롯데건설 상장 시에는 자산 가치가 다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호남석유는 롯데건설 외에도 케이피케미칼(지분 51.9%), 대산MMA(50.0%) 등 자회사에 대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2008년 상반기 기준으로 자회사의 지분에 대한 장부가액 총합은 2조 원 수준에 육박한 상태다.실적은 2008년 4분기를 바닥으로 서서히 개선되는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4분기는 제품 가격 급락과 원재료 가격 급등 영향으로 영업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며 올해 1분기에는 제품 가격 안정 등에 힘입어 손익분기점 정도의 실적으로 회복된 이후 2분기부터는 다시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물론 일각에선 몇 가지 부정적인 측면을 제시하기도 한다. 예컨대 롯데대산유화의 합병은 여수와 대산으로 생산 거점이 분리돼 있어 생각만큼 쉽게 시너지 효과를 거두기가 어렵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 롯데대산 합병에 따른 부채 규모 증가도 부담 요인으로 지적된다.하지만 시너지에 대한 우려는 중·장기적 시각에서 보면 자연스레 해소될 문제이며 부채 규모 증가도 지속적인 현금 창출 능력을 감안하면 별다른 이슈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실제 합병 후 총 차입금 규모는 1조 원으로 늘어나 외형상 부담스럽게 보이지만 보유 현금 6300억 원과 매년 2000억 원 이상의 현금 창출 능력을 감안하면 큰 부담 요인은 아니다.마지막으로 주가 밸류에이션을 보자. 이 회사 주가는 주가순자산배율(PBR: price on book-value ratio) 기준으로 역사적 바닥권인 0.4배 수준에 머물러 있다. PBR가 1배 미만이라는 얘기는 주가가 회사의 순자산가치(청산가치)보다 밑돌 정도로 저평가돼 있다는 뜻이다.정종태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