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퇴출될 기업을 정부가 과감한 선제적 대응으로 구조조정하지 않으면 위기를 겪고 있는 업체들이 공멸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지금보다 절실한 ‘위기의식’을 갖고 시장에 불확실성을 해소하겠다는 확실한 사인을 줘야 합니다.”조용준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올해 국내 경기 침체의 깊이와 금융 위기의 실물 전이 속도 등 제반 경제 변수는 선제적 구조조정의 성패에 달렸다”며 구조조정의 당위성을 강한 톤으로 주장했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최근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중견 건설사와 신생 조선사에 대한 구조조정이 당초 계획보다 후퇴하는 모습에 우려를 나타냈다. “정부가 불확실성을 해소해 주지 않으면 시중에 아무리 유동성을 공급해도 실수요자인 기업과 가계로 돈이 흘러가지 않게 됩니다. 이는 금융 위기의 실물 전이를 가속화하고 다시 또 다른 금융 경색을 가져오는 부작용을 낳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경제공황으로 가는 전형적인 프로세스입니다.”향후 우리 경제의 방향은 선제적 구조조정을 어떻게 해내느냐에 달렸다는 게 조 센터장이 거듭 강조하는 메시지다. 구조조정 시 일시적 실업 증가 등의 부작용을 낳겠지만 결과적으로 주요 산업의 핵심 역량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전체 시장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 조선 등 중공업 분야에서 애널리스트로 활약해 온 조 센터장은 1999년부터 매년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될 정도로 분석력과 성실성을 인정받고 있다. 2006년부터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을 맡은 뒤에도 조선 업종은 직접 챙기고 있다. 조 센터장은 “구조조정은 이런 설비 과잉 해소를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인데 정부가 이를 방치할 경우 불확실성에 따른 자금 공급 중단으로 신생 조선사 전체가 위기에 몰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구조조정 대상 분야인 조선과 건설 모두 산업 기반 훼손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조선의 경우 현대중공업 등 대형사들은 견실하다. 국내 대형 조선사에는 이번 금융 위기를 계기로 그동안 추격해 오던 중국 같은 후발 주자와 격차를 벌일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호기다. 건설 분야 구조조정도 외형 부풀리기에 치중해 온 중견 업체들이 주요 대상이다. 문제는 살아남을 수 있는 업체와 퇴출 기업을 확실히 구분해 주지 않으면 금융권의 리스크 회피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고 결국 더 큰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해외 수요가 급감하고 있어 올해 수출 전망은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이상의 감소가 예상된다. 한계 기업뿐만 아니라 수출 기업들도 가동률 감소와 이에 따른 투자 위축으로 인한 고용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나마 11년 전 외환위기 시절 과도한 인력 감축이 국가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손실이라는 경험을 얻은 만큼 기업들의 인력 조정 축소화 노력도 과거보다 한층 진지할 것이다. 초호황을 누렸던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 인력 조정 폭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외국계가 대형 조선사들의 향후 성장성에 대해 부정적인 이유는 글로벌 금융시장 요인을 보다 중시하기 때문이다. 선박 펀드와 같은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선박 금융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어 향후 발주 물량 감소 등을 우려하는 것 같다. 하지만 국내 대형 조선사들은 3년 이상 수주 잔액을 확보하고 있고 경쟁력에서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불황기 구조조정 후 살아남은 1등 기업이 수혜를 보는 속성상 장기적 관점에서도 국내 조선사의 전망은 긍정적이다.현대중공업은 조선뿐만 아니라 중장비 태양광 등 포트폴리오가 고르게 분산돼 있는 점에서 가장 유망하다. 특히 중장비 부문은 서부 내륙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을 예정인 중국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의 직접적 수혜가 예상되는 가운데 그린 성장을 추구하는 미국과 한국 정부의 정책 취지에 부합한 태양광 사업도 병행하고 있어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실적 개선이 두드러진 한진중공업이나 매각 문제로 다른 조선주들이 반등하는 동안 주춤했던 대우조선해양도 상대적으로 매력이 높다.기업들의 실적 악화를 고려할 때 유동성 랠리는 한계가 있다. 2월 이후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리스크가 시장에 반영되면서 일시적으로 실질금리가 오르면서 ‘신용경색’이 일어날 수도 있다. 코스피지수는 1250 이상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다.여전히 큰 폭의 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금리도 인하 기조여서 환매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다만 가계 현금흐름이 어려움에 봉착한 자영업자 중소상인 등의 경우 손절매에 나설 가능성은 있다. 일반적으로는 국내 주식형 투자자의 경우 1450선이 펀드 환매 구간으로 볼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새로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급격한 환매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고가의 소비재와 자동차 가전 등 내구성 소비재 기업들의 실적이 크게 악화될 것이다. 삼성전자도 단기적으로 실적 악화에 직면하게 되면서 체질 개선에 나설 것이다. 하지만 대만의 반도체 업체 등 경쟁 업체들이 더 큰 타격을 받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규모의 경쟁력을 갖춘 삼성의 입지가 한층 강화될 수 있다. 음식료 통신 서비스 등 필수 소비재와 수주 잔액이 충분한 조선 업종 등은 상대적으로 실적 부진 효과가 덜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국가의 핵심 산업을 죽이지 않으면서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데 결국 누가 버텨내느냐가 관건이다.글로벌 경제 ‘업 턴’은 미국이 아닌 중국에 달렸다. 미국 경기는 이미 ‘L’자형 침체에 들어갔다. 하반기 회복 여부도 불투명하다. ‘언제 미국 경기가 회복되느냐’에서 ‘언제 침체가 멈추느냐’로 시장의 관심이 옮겨갔을 정도다. 반면 중국은 금융 위기로 일시 중단된 공업화를 계속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아직 성장 동력이 남아 있다. 중국 정부가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과감한 재정 정책을 쓰고 있고 경제구조도 수출과 내수를 병행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과감한 SOC 투자와 이에 따른 내수 회복이 수출 안정으로 이어진다면 글로벌 유동성이 다시 중국으로 급격히 몰릴 수 있다.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고려대 경영학과 경영대학원신영증권 기업분석팀장신영증권 제조팀장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