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물건 수 증가와 낙찰가 하락은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2000년에도 경험한 바다. 투자자들의 뇌리 속에는 당시 감정가의 50% 미만에서 부동산을 매입한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을 것이다.즘 경매시장이 각광을 받고 있다. 내 집 마련이 목적인 실수요와 저가로 추가 구입하려는 투자 수요가 경매로 몰리고 있는 것. 이를 반영하듯 지난해 12월 서울지역 평균 입찰 경쟁률은 3.3 대 1로 1년 전(2.9 대 1)보다 높아졌다. 지난 1월 5일 올해 첫 경매가 열린 성남지원에는 500여 명이 몰리면서 법정 안은 물론 밖에까지 입찰자들로 장사진을 이루기도 했다.지지옥션 강은 실장은 “하루에 1개 꼴로 입찰 경쟁률이 50 대 1이 넘는 ‘초경합’ 물건이 나오는가 하면 개찰이 마감되는 시간도 점점 길어지고 있다”며 “지난 몇 년간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던 예전 경매 고수들도 간간이 눈에 띄고 있다”고 최근 달라진 경매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1월 12일 실시된 인천시 계양구 작전동 현대아파트 214동 1408호(전용면적 149㎡)에는 무려 57명이 응찰해 결국 3억589만 원에 매각됐다. 8일 인천시 연수구 동춘동 무지개마을아파트 6동 203호(전용면적 85㎡)는 98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으며 동대문구 답십리동 동아에코빌 아파트 102동 306호(전용면적 102㎡)는 기간 입찰임에도 불구하고 57명이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지옥션이 지난 1월 1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지역 아파트(주상복합 아파트 포함) 경매 평균 응찰자 수를 조사한 결과 평균 7.4명이 입찰에 참여해 한 달 전(2008년 12월 1일~12일)의 5.2명보다 2.2명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인천 지역 아파트 경매 경쟁률도 14.9 대 1을 기록해 작년 같은 기간의 2배, 전월보다 3배 이상 늘어났으며 경기지역도 아파트 평균 응찰자 수가 한 달 전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하지만 경매의 또 다른 지표인 낙찰가율은 여전히 70%선에 머무르고 있다. 작년 10월까지만 하더라도 100%를 웃돌던 평균 낙찰가율은 작년 말 70%대로 떨어졌고 해를 넘겨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50명 이상이 경쟁을 벌인 물건들의 평균 낙찰가율도 70% 선이었다. 강남 3구의 작년 12월 아파트 낙찰가율은 67.7%로 집계를 시작한 200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일반적으로 경쟁률이 높으면 낙찰가율이 높아지는 것이 상식적인데 최근 경매시장의 사정은 이런 상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경매에 대한 관심이 예년보다 높아졌지만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향후 집값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 값을 대폭 낮춰 입찰에 참여하고 있다는 얘기다. 불황기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일반 거래보다 훨씬 싸게 부동산을 매입할 수 있다는 경매의 특성은 십분 활용하고 있지만 법원이 책정한 감정가에 대해선 그다지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경매로 물건이 넘어가 첫 경매가 나오기까지는 5~6개월가량 시간이 걸린다. 경매가 신청되면 법원은 전문 감정평가 기관에 물건을 의뢰, 감정가를 책정하게 되며 첫 입찰가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물론 모든 부동산에는 기준 시가라는 기준 값이 있지만 감정평가 기관이 법원 경매에 적용하는 감정가는 감정평가 당시 주변 시세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아파트는 주변 시세 100%, 다세대주택, 연립주택은 시세 80~90% 선에서 감정가가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현재 입찰에 참여하는 입찰자 입장에서 보면 이는 어디까지나 5~6개월 전의 가격일 뿐이다. 더군다나 앞으로 집값이 얼마나 더 떨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과거 시세를 기준으로 낙찰을 받기는 힘들다. 가격 하락기에 경매가 집값의 기준이 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얼마에 낙찰 받았느냐에 따라 해당 지역 부동산 가격이 좌우된다는 얘기다.앞으로 경매 낙찰가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무엇보다 경기 침체로 은행 이자를 내지 못해 경매에 부쳐지는 물건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전국 법원에서 경매에 부쳐진 물건은 총 3만3437건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2만8956건)보다 15.5%, 전월(2만8082건)보다 19.1% 증가했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이 같은 경매 물건 증가세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지방은 사정이 더 심각해 지난해 12월 비수도권에서 경매로 부쳐진 물건 수는 2만5593건에 달했다. 이 추세라면 전국은 월 4만 건, 수도권은 8000건을 넘는 것은 시간문제다. 물건 수가 늘어나게 되면 투자자로선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마련이다.경매 물건 수 증가와 낙찰가 하락은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2000년에도 경험한 바다. 투자자들의 뇌리 속에는 당시 감정가의 50% 미만에서 부동산을 매입한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을 것이다.물론 경매에 부쳐진 부동산들은 낙찰가율이 낮은 물건일수록 위험도가 높게 마련이다. 경매 현장을 찾는 투자자 입장에서야 가급적 싸게 물건을 낙찰 받고 싶겠지만 낙찰가가 40% 아래로 추락하는 것들은 위험 요소가 도사린 물건들이 많다. 위장 임차인, 유치권 신고, 지분 경매 등이 대표적인 위험 요소다. 충분한 권리 분석 없이 낮은 가격에만 끌려 낙찰 받았다가 소유권 이전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또 낙찰을 받았다고 해도 세입자가 막무가내로 버텨 명도에 어려움을 겪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자칫 소송으로 치닫게 되면 기회비용을 계산할 때 사실상 투자 실패라고 봐야 한다. 강은현 법무법인 산하 경매실장은 “불황기에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경매로 내몰리는 물건이 많고 세입자 문제로 명도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게 마련”이라며 신중한 투자를 당부했다.저가 낙찰과 함께 생각할 것이 환금성이다. 환금성이 높은 상품은 호황기 때 먼저 상승하기 시작하며 상승 폭도 가장 높게 마련이다. 따라서 경매 물건을 선택할 때는 매매가 쉬운 환금성 위주의 상품을 노리는 것이 좋다. 임대 사업용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1억~2억 원짜리 아파트나 오피스텔이 유리하다.수익형 상가는 테마상가, 근린상가보다는 대중교통이 편리한 상가주택이 다목적으로 활용하기 유리하다. 황지현 영선법률사무소 경매실장은 “용인 수원 등 수도권 상가주택 중 이면 도로에 위치한 물건들은 특별한 하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정가 기준 40%대에서 낙찰 받을 수 있다”고 추천했다.개발 호재가 있는 지역의 물건은 여전히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일단 경매로 나오는 물건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 뉴타운과 같은 유망 지역의 물건은 물건 수도 적으며 물건이 나오더라도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만 한다. 이러다 보면 가격이 감정가를 상회하는 결과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다세대주택은 시세를 산정하는 방식이 복잡한 것이 흠인데 일반적인 기준이 ‘공시지가+건축비’다. 여기서 공시지가는 해당 주택의 땅값을 측정하는 바로미터며 건축비는 정부가 고시한 표준 건축비를 기준으로 잡으면 된다. 이 둘을 합친 가격보다 싸게 낙찰 받았다면 큰 무리는 없지만 경기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는 자세도 함께 요구된다.송창섭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