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stern Australia Rottnest Island

은 땅과 밝고 풍부한 햇살, 그리고 딱히 서둘러야 할 일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일상으로 기억되는 호주에서도 서호주(Western Australia)의 시간은 유달리 더 천천히 흐르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토요일인데도 오후 4시가 되면 쇼핑몰의 문을 닫아버릴 만큼 ‘여유’와 ‘휴식’을 냉정히(?) 지키는 사람들의 땅. 이들이 주말이면, 그리고 휴가를 맞을 때마다 잊지 않고 찾는 섬이 있다. 도심의 여유로움도 모자라 그들이 ‘쉼’을 위해 찾는 곳이라면 그야말로 휴식 중의 휴식이 있는 곳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서호주 사람들의 한가로운 시간을 말해주는 휴양섬, ‘로트네스트 섬’을 찾았다.서호주의 주도 퍼스(Perth)의 배럭 스트리트(Barrack Street). 가벼운 차림의 사람들이 하나둘 이른 아침부터 모여들고 있다. 퍼스에 도착한 첫날, 스완벨 타워를 중심으로 한적한 공원의 풍경을 거느린 이곳에 아침부터 무슨 볼일들이 있어서 모여들까 싶던 궁금증은 퍼스 인근의 휴양섬, 로트네스트 섬(Rottnest Island)으로 떠나던 날 풀렸다. 이곳의 작은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페리를 타고 섬에서의 하루(혹은 며칠씩이나)를 보내기 위한 여행자들이었다.로트네스트 섬은 서호주 인근의 몇몇 섬들 가운데 정부 차원의 환경 보호 정책이 가장 철저하게 지켜지는 곳이자 서호주 사람들의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연안에서 19km 떨어진 이곳까지 가려면 퍼스의 배럭 스트리트에서 출발, 프리맨틀을 거쳐 섬으로 들어가는 페리를 이용하는데 퍼스에서 타면 스완강을 따라 천천히 도시를 구경하며 로트네스트 섬까지 약 1시간 30분의 항해를 즐기게 된다.프리맨틀에서 출발하는 고속 페리를 타면 30분이면 닿을 수 있어 서호주 사람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퍼스를 출발, 프리맨틀을 거치는 동안 어느새 배 안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여행자들의 구성도 다양해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마치 우리네 제주도 같은 그런 섬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연초록빛의 바다가 잠시 열대의 어느 청정 바다에 온 듯 눈을 즐겁게 하는 시간이 이어지며 저만치 나지막한 섬의 능선이 눈에 들어올 즈음이면 로트네스트와의 만남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데 쏠리면서 페리 안은 낮은 술렁임과 기대감으로 가득 찬다.로트네스트 섬에 닿은 뒤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선착장에 줄지어 내려놓은 자전거를 하나씩 고르느라 분주하다. 이 자전거들은 매번 퍼스와 프리맨틀에서 가지고 온다. 자전거를 로트네스트에 놓아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배편을 예약할 때 자전거를 빌릴 것인지도 결정해야 하는데, 페리의 선원들이 매번 자전거를 싣고 부리기를 반복하더라도 섬을 어수선하고 더럽히는 일은 아예 ‘원천봉쇄’하려는 이들의 엄격함이 엿보이는 순간이었다. 섬에는 순환버스와 구급차 등이 아니고서는 차들의 오갈 수 없어 이 자전거들은 여행자들의 거의 유일한 운송 수단이 되어주는 셈이다. 길이 11km에 폭 4.5km 정도의 아담한 크기의 로트네스트 섬은 신발 끈을 질끈 동여매면 걸어서도 한나절 정도에 섬 둘레를 한 바퀴 돌아볼 정도이지만 그래도 자전거 정도는 있어야 마음 편히 돌아다니며 섬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우선 섬에 도착하면 톰슨베이(Thomson Bay)에서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섬도 크지 않고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여유롭게 사이클링을 즐기거나 해변에서 바다와 어우러진 섬의 풍경에 사로잡히는 것이기에 누구 하나 서둘러 페달을 밟는 일도, 남들보다 먼저 목 좋은 곳을 차지하려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할 필요도 없다. 잠시 자전거를 관광 안내소 앞에 세워두고 섬 일주 버스에 오르는 것도 좋다.새파란 하늘과 길 저만치에서 층층이 풍경을 만드는 해변과 바다의 풍경 속으로 버스가 들어가고 길 좌우에서는 자전거를 탄 여행자들이 해풍을 맞으며 천천히 섬의 풍경과 어우러진다. 로트네스트 섬은 사시사철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어주는데, 특히 우리와 달리 남반구는 한여름인 요즘이면 방학을 맞은 젊은이들과 휴가를 맞은 가족들이 며칠씩 머무르다 가는 곳이기도 하다. 바다의 풍경이 좋은 곳에는 이들을 위한 콘도나 방갈로 등이 세워져 있다.자전거보다 느리다 싶을 만큼 한갓진 1시간 정도의 버스 투어를 끝내고 자전거에 다시 오르면 본격적인 로트네스트 섬의 풍경을 만끽하는 시간이 시작된다. 대부분 도로가 해안선을 따라 놓여 있기 때문에 어느 방향으로 가든 블루와 그린이 제대로 마블링된 바다의 환상적인 너울을 바라볼 수 있다. 바다와 백사장이 펼쳐진 곳에는 어김없이 해수욕과 일광욕을 즐기는 이들이 무리 지어 있다. 낸시코브와 리틀새먼베이 등 파도가 잔잔한 해안들이 사람들에게 인기 있고, 스노클링 등을 즐기기 위해 배를 띄우는 곳이기도 하다. 어딜 가나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족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어 로트네스트 섬의 풍경은 더욱 아늑하게 다가온다.섬에는 바다의 시간만 마련된 것이 아니다. 해안에서 떨어지면 독특한 식생을 보여주는 숲과 관목 군락이 펼쳐지고, 이곳에서 캠핑을 즐기는 이들을 만난다. 굳이 콘도나 방갈로에 숙소를 정하지 않더라도 캠프촌에 아담한 ‘베이스캠프’를 치고 섬 곳곳을 쏘다니는 젊은 여행자들이 의외로 많다. 테니스 코트 등 레포츠 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바비큐 파티를 열기에도 좋아 섬에서의 하룻밤을 낭만으로 채워준다. 섬에는 두 곳의 등대가 있는데, 암초가 많은 섬의 북동부 ‘베이신’ 쪽과 섬 중앙 언덕에 각각 하나씩 세워져 있다. 중앙 등대 가까운 곳의 ‘올리버 힐’ 전망대가 있어 이곳에 오르면 시원한 해풍 속에서 바다의 풍경을 거머쥘 듯 만끽할 수 있다. 자전거로 오르막을 한참 오르는 동안 흘렸던 땀의 수고가 아깝지 않은 장관을 선사하는 곳이다.독특한 섬의 풍광이 장관으로 다가오는 곳으로 섬의 서쪽 끝을 빼놓을 수 없다. 마치 바다에서 층층이 암반을 쌓아가며 섬 꼭대기에 이른 듯 기이한 해안 절벽의 풍경이 있는 곳인데, 나무로 짠 데크를 따라 해안 끝까지 가면 이 아찔한 풍경을 발아래 두고 볼 수 있다. 중앙 등대 근처와 함께 로트네스트 섬 최고의 촬영지로 손꼽히는 덕분인 카메라를 손에 든 여행자들이 섬에서 가장 ‘분주하게’ 움직이는 곳들 가운데 하나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서 부서지는 파도는 바위에 닿는 순간 오묘한 그러데이션을 이루며 파도를 펼쳐내 보인다. 하지만 이 파도의 장관에 넋을 잃고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위험천만. 갑자기 불어오는 돌풍에 자칫 ‘사고’를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이다. 해안 절벽의 장관과 함께 얕은 관목이 드넓게 펼쳐진 풍경도 이곳의 매력. 나무 데크는 무릎까지 올라올까 말까 하는 이 숲을 보호하기 위해 놓은 셈인데, 간혹 숲 사이를 오가는 야생동물을 볼 수 있어 아이들에게 신기한 볼거리를 안겨준다.섬을 일주하다가 운이 좋으면 이곳 로트네스트 섬에만 서식하는 가장 작은 유대류인 ‘쿼카(Quokka)’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쿼카는 이 섬에 ‘로트네스트’라는 이름을 붙인 주인공이자 섬의 마스코트로 대접받는 녀석이다. 17세기 말, 영국인들이 처음 섬에 상륙했을 때 커다란 쥐를 닮은 이 생면부지의 동물을 보고 식겁했단다. 그리고 ‘쥐의 둥지(Rat’s Nest)’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게 훗날 ‘로트네스트’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은 것. 실제 생김이 쥐와 닮았지만 캥거루처럼 주머니에 새끼를 낳아 기르는 신기한 쿼카는 아이들에게 매우 인기 있다. 특별히 성질이 포악하거나 공격적이지도 않아 쿼카와 함께 사진을 찍는 아이들의 모습을 쉬 찾아볼 수 있다.자전거로 섬 구석구석을 둘러보거나 잠수함 투어와 스노클링, 스쿠버다이빙, 서핑 등을 즐기는 등 섬 하나가 거대한 휴양지의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여느 휴양 섬과 분명 다른 점은 여행자들의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게 만드는 묘한 ‘거만함’일 듯하다. 그런데 그 거만함 덕분에 사람들은 더 느리게, 더 한가롭게 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섬이 야생의 풍경을 최대한 지켜내고 있는 것 역시 이 거만함과 엄격함 덕분이다. 풍경 좋은 곳에는 으레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리조트나 모텔이 들어서고 아이들의 짧은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놀이공원이 들어서는 것과는 너무 다른 그들의 ‘사고방식’인 셈이다. 매일 자전거를 싣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그리고 차를 타면 금방 돌아볼 섬을 두어 시간 넘게 찾아다니는 동안 잠시 땀을 식히며 둘러본 아름다운 바다에 넋을 잃어가는 섬의 시간에 스스로를 맞추다 보면 1주일이고 열흘이고 이곳에 머무르며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서호주 사람들의 ‘느려터진’ 시간관념에 어렵지 않게 동화돼 갈 것이다. 로트네스트 섬에서 얻은 것은 웅장한 대륙에서 벗어난 푸른 바다의 정취뿐만 아니라 서호주 사람들의 몸에 밴, ‘느려서 더 살가운’ 시간이었다.취재 협조 서호주정부관광청(www.westernaustralia.com)캐세이퍼시픽항공(www.cathaypacific.com)● 로트네스트 섬 정보 얻는 곳 : www.rottnestisland.com● 로트네스트 페리 예약 : www.rottnestexpress.com.au● 여행 정보 얻을 곳 : 서호주정부관광청 www.westernaustralia.com글·사진 남기환 월간 비틀맵트래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