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살랑 라피트그룹 회장
리스토퍼 살랑 라피트그룹(도멘 바롱 드 로쉴드) 회장(CEO)은 인터뷰 장소에 들어오자마자 피아노 건반에 손을 얹고는 헨델의 ‘사라방드’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인터뷰 시간이 겨우 20여 분밖에 할애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소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1분여 연주가 이어지더니 건반에서 손을 뗀 그가 던지는 첫마디.“어떻습니까. 이 느낌이 바로 우아함을 간직한 프랑스 와인입니다.”샤토 라피트 로쉴드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세계 최고가 와인 중 하나다. 1855년 보르도 와인 등급이 정해졌을 때 가장 먼저 프리미어급 최고급 와인으로 지정됐다.이 때문에 샤토 라피트 로쉴드 뒤에는 늘 ‘최고 중의 최고(Premier des Premiers)’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보르도 5대 명품 와인은 샤토 라피트 로쉴드 외에 샤토 마고, 샤토 라투르, 샤토 오브리옹, 샤토 무통 로쉴드다. 그중에서도 샤토 라피트 로쉴드는 가장 보르도적인 와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제조도 예전 방식을 고집한다.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혁신적인 마케팅 방법을 사용하는 사촌 샤토 무통 로쉴드와 여러 면에서 비교된다. 그러나 대중 와인 시장이 커지면서 샤토 라피트 로쉴드를 만드는 라피트그룹도 변화의 길을 걷고 있다. 여전히 전통 방식대로 와인을 제작하고 있지만 중저가 와인을 대폭 확대해 대중과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샤토 라피트 로쉴드가 생산되는 보르도 포이악 지방 외에 메독, 포므롤, 오메독 등지에 있는 와이너리를 사들여 대중 와인 제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있는 와이너리를 인수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비교 대상인 샤토 무통 로쉴드가 ‘무통 카데’라는 대중 브랜드로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선 것과 같은 맥락이다.라피트그룹이 최근 선보인 레정드(Legende) 시리즈는 샤토 라피트 로쉴드가 생산되는 포이악, 메독 등 보르도 지방에서 생산되는 와인 4가지로 구성돼 있다. 가격대는 3만~7만 원. 프랑스 보르도에서 지난 1995년부터 판매를 시작해 글로벌 시장에는 2002년부터 공식 론칭했다. 살랑 회장은 인터뷰 내내 라피트그룹의 와인 철학을 강조했다. 이번에 출시한 레정드 시리즈도 대중과 친숙해지기 위해 가격을 낮췄지만 그렇다고 해서 품질까지 함께 낮추지는 않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는 “레정드는 라피트의 보수적인 스타일로 만든 대중적인 와인이다. 이 때문에 1년 생산량도 120만 병으로 한정했다”고 말하면서 동급인 무통 카데가 2000만여 병을 생산하는 것과 차별화를 꾀했다. 그는 “라피트 로쉴드는 10년 이상 장기 숙성 후 마시는 것이 좋지만 레정드 시리즈는 구입 후 바로 마셔도 매력적”이라면서 “그만큼 포텐셜(구조)가 튼튼하기 때문”이라고 품질을 강조했다.프랑스 와인업자들이 이탈리아 내지는 신세계 와인과 차별을 두는 포인트는 토양, 포도 품종, 기후가 총망라된 테르와르다. 이를 두고 와인 업계에서는 프랑스 와인만을 차별화하기 위한 마케팅 수단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라피트그룹이 만든 칠레, 아르헨티나 와인의 품질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는 구대륙 와인의 특징을 ‘전통’이라고 표현하면서 “칠레나 아르헨티나 와인은 인위적인 관개농업을 통해 포도를 생산하고 있는데 이것도 어찌 보면 테르와르에 위배되는 일”이라고 말했다.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moneyro.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