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홍 프랭클린 템플턴투신운용 이사

1999년 1월 첫선을 보인 ‘템플턴 그로스 펀드’는 내년이면 만 10년째를 맞는 국내 최장수 펀드다. 펀드 투자를 개별 종목 사고팔듯이 할 정도로 장기 투자 문화가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는 국내 투자 현실을 감안할 때 ‘과연 10년째 펀드에 가입한 고객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템플턴투신에 확인한 결과 여의도 증권사에 근무하는 한 증권맨이 10년째 펀드를 유지하고 있는 최장수 고객이란다. 누적 수익률은 9월 18일 현재 380%. 이 기간 동안 코스피 상승률은 120%다. 이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 김태홍 이사는 “요즘처럼 펀드 투자자들에게 혼란스러운 시장 환경에서 10년 장기 투자자가 있다는 사실과 누적 수익률이 코스피를 2배 이상 웃도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는 대우증권과 우리투자증권에서 애널리스트를 지낸 뒤 공격적 투자를 자랑하는 미래에셋에서 5년간 간판 펀드 ‘디스커버리’를 운용하다 작년 초 프랭클린템플턴투신으로 자리를 옮겨 그로스 펀드의 총책임을 맡고 있다.지난 7월 작고한 투자의 귀재 존 템플턴 경은 “비관론이 극도에 달할 때야말로 주식을 사야 할 타이밍”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리먼브러더스 메릴린치 등 한때 글로벌 금융시장을 주름잡던 투자은행(IB)의 몰락으로 국내외 증시가 대혼돈 상황에 직면한 지금이 비관론이 극도에 달한 시점일까. 가치 투자를 주장해 온 국내 증권가의 고수들도 차마 살 때라고는 말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가지고 있는 주식을 내팽개치지는 말라고 당부하는 게 전부다. 국내 최장수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김태홍 이사는 “국내외 증시 상황이 패닉인 상태에서 당장 주식을 살 때라고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위기가 정점을 지나고 있는 만큼 좋은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다가온 것만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월스트리트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조차 추가 부실 규모를 모르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리스크다. 역시 핵심 관건은 미국 주택 경기다. 2000년을 100으로 봤을 때 2004∼05년 280까지 치솟았던 미국 집값은 이후 평균 20% 하락했다. 2007년 기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주택 시세를 넘어서는 가구가 25%에 달한다. 최하층에까지 주택 담보대출을 무리하게 해준 결과다. 다행히 미국 20개 주요 도시를 기준으로 한 케이스-실러 지수에 따르면 최근 마이애미 LA의 주택 가격이 소폭 상승세로 돌아섰고 타 지역의 낙폭도 줄어드는 모습이다. 시장이 효율적이라면 이제 망가질 회사와 생존할 회사를 구분하게 될 것이다.”“고비의 정점은 지났다고 본다. 미국 주택 재고 증가 폭이 완화되고 있고 가격 하락 폭도 둔화세다. 유가와 커머더티 등 인플레이션 압박 요인도 해소되고 있어 주요 국가들에서 금리 인하, 경기 부양 등의 재정 정책도 가능해진 상황으로 가고 있다. 다만 유럽과 중국이 복병이다. 중국의 경우 미국 금융 회사에 투자한 국부 펀드의 손실 규모가 파악되지 않고 있는데다 보다 핵심적 문제는 중국 내 부동산 급락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유럽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파생상품과 직접 관련된 금융권이 적지 않아 미국 IB에 이어 유럽 은행권들이 다음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프랭클린템플턴은 매주 각 국가별 매니저들과 회의를 하는데 중국 현지에서 느끼는 부동산 위기는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현지 부동산 컨설턴트에 따르면 현재 4000만㎡인 주요 도시의 오피스 빌딩 공급이 현재 진행 중인 공사가 완료되는 3년 내 1억2000만㎡로 늘어난다고 한다. 이미 공실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급격한 공급 과잉은 오피스용 부동산 시장에 치명타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결국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제공한 은행권의 버블로 이어져 자칫 1980년대 일본 버블 붕괴가 재현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일부에서는 9%의 성장률이 유지되는 만큼 중국 경제가 아직 견조하다고 하지만 지난해까지 11%대에서 9%로 2%포인트 하락은 실물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규모다. 다행인 점은 중국 가계 저축률이 30%를 웃돌고 평균예대율(Loan to Deposit ratio)이 한국보다 낮은 80∼90%대에서 완충지대가 있다는 점이다.”“지금까지는 미국의 신용 부문 문제가 두드러져 부각됐으나 앞으론 실물경제가 본격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이미 미국 내 실업률이 7%대에 육박하고 있고 GM을 비롯한 한계 기업의 대량 인력 조정 사태가 발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구매력 감소 등 소비 위축에 따른 경기 침체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결국 금융 위기는 조금씩 해소 국면으로 접어드는 가운데 실물 악화로 글로벌 경제는 ‘L’자형 침체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주식시장은 통상 6개월가량 실물 시장을 선행한다. 국내의 경우 긴 호황 뒤 긴 하락 사이클에 진입해 있는데 현재 3분의 2 정도 지났다고 본다. 미국 S&P500을 기준으로 1945년 이후 10차례의 하락기가 있었는데 평균 하락 기간은 13개월, 최장 기간은 국제 금융 위기가 발생한 1981∼82년간의 21개월이었다. 과거의 통계를 고려할 때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국내 증시의 조정은 20개월 전후인 내년 상반기께 반등 가능성이 높다. 다만 국내 기업의 주가수익률(PER)과 주가순자산배율(PBR) 측면에서는 단기적으로 아직 하락 여지가 좀 남아 있다. PER는 현재 9∼10배로 바닥권인 8배보다 다소 높고 PBR도 1.1배로 바닥인 0.7보다 다소 높아 추가 하락 가능성은 존재한다.”“딜레마이기는 하지만 좋은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펀드의 기본 원칙은 자산 배분이고, 따라서 펀드에서 주식 비중을 90% 이상으로 유지하는 방식으로 운용하는 게 철학이다. 시장이 좋지 않아도 가치 대비 싼 가치주 중심으로 주식을 계속 매입하고 있다. 타 증권사나 투신 운용사였다면 긴 호흡으로 투자하기 어려웠겠지만 장기 운용 철학이 자리 잡은 프랭클린템플턴투신에서는 가능하다. 실제 타 금융사에 근무할 당시에는 펀드 수익률 악화 시 경영진으로부터 여러 압력을 받았으나 템플턴에서는 운용역의 판단을 가장 중시한다.”“사실 한 펀드에 50개가 넘는 종목을 넣어두고 깊이 있는 분석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이런 펀드는 결국 당초 운용 철학과 관계없이 수익률만을 추구하다 색깔이 없는 ‘섞어찌개’식 펀드가 되고 만다. 펀드 편입 종목 선택 시 시장 상황에 따라 바뀌는 PER나 PBR 대신 현금흐름할인법(DCF)을 적용하고 있다. 향후 기업의 현금 흐름이 얼마나 안정적이냐가 투자 기준이다. 이런 투자 방식을 적용해 주요 종목 30개만을 골라내 투자하는 ‘포커스 펀드’를 조만간 출시할 계획이다. 종목 확장을 막기 위해 운용 규모도 1조 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관리할 계획이다.”“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주들이 충분히 싸졌고 현금 흐름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는 업종이다. 지난해까지 자동차 부품주들은 현대·기아차의 해외 진출에 동반하면서 부품 가격 인하 압력을 많이 받았다. 이 때문에 상당수 부품 업체들이 해외 공장 기계장치 상각 비중을 초기에 대폭 반영하는 식으로 스스로 영업이익을 줄이는 고육지책을 썼으나 현금 흐름은 매우 좋은 상태였다. 최근 환율 등으로 원가 압박이 완화된 데다 해외 투자도 마무리 단계라 이익이 크게 개선될 것이다. 자동차 업종에서는 수석 디자이너 교체를 통해 디자인을 과감히 바꾼 기아차가 올해 새로 내놓는 모델이 많아 주목하고 있다.”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 이사연세대 경제학과미국 로체스터대 MBA우리투자증권 대우증권 리서치 애널리스트미래에셋자산운용 주식운용 4본부장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