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욱 대한전선 부회장

계의 군인공제회.’ ‘M&A 선수도 울고 갈 인수·합병 전문가.’대한전선과 임종욱 부회장에 대한 세간의 평가다. 초고압 전선을 만드는 대한전선은 일반 소비자들이 좀체 브랜드를 접하기 어려운 B2B 전문 기업이다. 서울 남대문 회현동에 있는 사옥 외벽에 회사 로고조차 없는 것도 이런 기업 비즈니스 속성 때문이다. 이처럼 튀지 않는 회사가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서만큼은 어찌 보면 가장 튀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전선 전문 업체인 대한전선이 외환위기 이후 보여준 M& A를 통한 사업 다각화는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대한전선은 2000년대 들어 무주리조트 트라이브랜즈(옛 쌍방울) 인수에 이어 진로 채권 투자에 나서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 이후 한국렌탈 명지건설 남광토건 온세텔레콤 대경기계 등을 M&A 방식으로 잇따라 새롭게 계열사에 추가했다. 지난해 말에는 세계 1위 전선 업체인 이탈리아 프리즈미안 지분 9.9%를 인수해 전선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등 영토 확장에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있다. 금전 대여 및 채권 투자 방식으로 소리 소문 없이 M&A를 성사시키는 점도 대한전선만의 독특한 색깔이다.임종욱 대한전선 부회장은 M&A를 통한 대한전선의 신성장 동력 찾기 작업을 총괄 지휘해 오고 있다. 올 초 전문경영인으로서는 최고봉이랄 수 있는 부회장으로 승진한 데서도 그간의 공로에 대한 최대 주주의 신임이 배어 있다. 상고 출신으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임 부회장은 대한전선에서 줄곧 재무 분야에서 근무하며 사내 대표 재무통으로 성장했다. 이후 회장 비서실장을 거치며 경영진을 보좌하다 고 설원량 회장 타계 후 나이가 어린 창업 2세를 대신해 경영을 진두지휘하며 대한전선의 차세대 먹을거리를 발굴하는 중책을 맡아오고 있다. 공격적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는 임 부회장을 만나 대한전선이 M&A를 통해 그리고 있는 구상과 향후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대한전선은 5∼10년 정도 먹고 살 수 있는 포트폴리오는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배는 여전히 고프지만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높을수록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몇 해 전 외신에서 악어 잡아먹고 배가 터져 죽은 비단뱀 관련 기사를 봤는데 마치 천정부지로 치솟는 몸값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M&A 경쟁에 뛰어드는 일부 기업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해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 있습니다. 대한전선은 단기적 성장 동력보다 성장 욕구를 죽이지 않는 범위 내에서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향후 10년 뒤의 미래 성장 동력을 찾는 장기적 안목에서 기업 인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2006년 말에 비해 차입금이 4000억 원가량 늘면서 현재는 부채 비율이 200% 수준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투자한 자금 대부분을 유동화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C&M에 투자한 1000억 원은 연 9.5%의 수익을 보장 받는 조건이고 신한은행 등의 유가증권에도 100억 원가량이 투자돼 있습니다. 세계 1위 전선 업체인 프리즈미안 지분 인수 9.9%를 5200억 원에 인수한 것이 부채 비율을 높이는 데 일조했습니다. 남아 있던 유보금 4000억 원가량은 남광토건 등의 인수에 사용했습니다. 투자 중 상당 부분이 수익성이 확보됐거나 유동화가 가능한 자산인 만큼 부채 비율을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위험을 피하려고 안주하면 굶어 죽습니다. 적절한 금융 기법을 활용한 이 정도 수준의 레버리지는 오히려 회사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안양 공장 부지와 부산 신호지구 24만7875㎡(옛 7만5000평)의 유동화가 가장 빨리 진행되고 있습니다. 삼성증권 주도로 가장 먼저 안양 공장 부지의 상업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상반기 중 6000억∼8000억 원 규모의 부동산 유동화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개발은 향후 4∼5년 동안 꾸준히 진행되는 사업이고 인수한 건설 계열사를 통해 직접 시행과 개발을 병행하는 곳이 적지 않아 수익성은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금전 대여 방식의 기업 인수라기보다 개인적으로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성장 동력을 찾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자금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인수하겠다고 덤비면 기업 가치를 훨씬 초과할 정도로 가격이 뛰는 사례를 많이 보지 않았습니까. 남들이 다 사겠다고 덤비는 매물은 관심이 없습니다. 금전 대여 후 인수 방식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라기보다 어려움에 직면한 기업이 먼저 지분 인수를 제안해 와 시작한 것입니다. 알덱스와 처음 인연을 맺은 대경기계 인수도 제의를 받은 건이고 명지건설 남광토건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인수한 회사들의 경영권과 독립성을 존중해 주면서 최대 주주는 간접 지원만 하는 대한전선의 인수 방식이 시장에서 신뢰를 얻고 있어서 가능했다고 봅니다.”“프리즈미안의 현재 1대 주주가 재무적 투자자인 골드만삭스인 만큼 전략적 파트너로서는 대한전선이 사실상 1대주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1위 업체의 지분을 인수한 것은 앞으로 전선 사업을 글로벌하게 해보겠다는 의지의 반영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략적 파트너 이상의 관계가 구축돼야 하는데 여러 방법이 있겠죠. 추가 지분 매입은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언급하기 어렵습니다. 지주사 문제는 단순히 지주사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주주들에게 어떤 실익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합니다. 또 이미 대한전선을 주축으로 지주사 형태를 취하고 있어 실제 전환을 하더라도 대한전선 고유의 방식이 될 겁니다.”“물리적 통합은 양측 주주들의 이해관계도 있고 당장 급한 일은 아닙니다. 남광 TEC의 건설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주인이 바뀐 남광토건 직원들이 혹시 고용 불안을 느낀다면 회사를 키우기 위해 현재 인력 충원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명지건설은 주택부문을 중심으로, 남광토건은 국내외 토목 사업 중심으로 특화해 시너지를 창출할 계획입니다.”“이익 규모 100억 원 미만으로는 상장할 생각이 없습니다. 한국렌탈도 이익 규모가 최소 300억 원은 넘어야 상장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한국렌탈은 기존 계측기 건설 장비부문 외에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조선부문에도 뛰어들어 기업규 모를 보다 확장할 생각입니다. 나머지 계열사도 좀 더 규모를 키워 상장하는 게 주주들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봅니다.”“앞으로 전선 건설 모든 분야에 금융의 활용도가 커질 겁니다. GE의 사례 연구를 통해 제조 업체가 어떻게 금융업을 제대로 키울 수 있을지 찾고 있습니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으로 금융업 진출도 한결 쉬워진 만큼 성장 욕구와 리스크 관리라는 균형을 맞춰가면서 금융업을 확장하는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우선 몽골에서 제안이 들어와서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은행 및 증권업 진출 형태로 금융업이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리조트 사업은 기업의 큰 수익원이 될 수 없는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내와의 시너지를 고려한 투자라기보다는 수익성이 높은 개별 지역별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 동계올림픽 수요 등을 감안해 400억 원에 인수한 밴쿠버 힐튼 호텔의 경우 벌써 800억 원으로 자산 가치가 늘었습니다. 세부 리조트 단지도 현지의 관광 수요와 부동산 가치를 고려해 결정한 것이고 최근에는 몽골과도 5년간 위탁 경영하는 방식으로 리조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관광 사업이 부진하더라도 자산 가치 상승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사업 구도로 해외 리조트 사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대한전선은 에너지 관련 회사입니다.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고유가 시대에 태양광뿐만 아니라 풍력 등 다양한 대체에너지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10년을 내다본다면 현재의 금융 건설 소재 등 새롭게 추가한 3개 분야면 충분하지만 30년 뒤를 준비한다면 새로운 동력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대체에너지는 30년 뒤를 겨냥한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겠죠. 대체에너지 사업 아이템을 확보하고서도 마땅한 파트너를 찾지 못한 회사가 있다면 언제든 파트너가 될 용의가 있습니다.”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