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대문호로 추앙받는다. 톨스토이는 ‘부활’ ‘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 등을, 도스토옙스키는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가난한 사람들’ 등을 남겼다. 톨스토이의 작품은 주로 귀족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부활’은 귀족과 창녀의 사랑 이야기이고 ‘안나 카레니나’는 미모의 귀족 부인의 사랑 이야기다. ‘전쟁과 평화’ 역시 주인공들은 귀족들이다. 반면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의 이야기로 돈과 탐욕이 주제다.두 문호는 1820년대에 태어난 동시대 인물이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았다. 톨스토이는 귀족 가문 출신이고 도스토옙스키는 몰락 귀족의 후손이어서 신분상으로는 톨스토이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단순한 신분상의 차이는 이들의 삶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신분상의 차이가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인자로 작용한 것이다.톨스토이(1828~1910)는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고 아홉 살 때에는 아버지마저 잃었다. 아버지가 죽고 9개월 만에 할머니마저 돌아가셨다. 톨스토이 5남매는 졸지에 고아 신세가 된 것이다. 이들은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가정교사에게서 배울 수도 없었다. 톨스토이는 정규 학교 졸업장이 하나도 없다.열 살이 되기 전에 부모님을 모두 여윈 톨스토이는 힘든 소년 시절을 보내면서도 명문가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큰 힘으로 작용해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톨스토이는 600년 전통의 명문가 후손이다. 고조부인 표트르 안드레비치 톨스토이는 군사령관과 외교관을 지낸 백작으로 ‘이탈리아 여행기’를 썼다. 조부는 해군 준장, 부친은 중령을 지냈다.톨스토이의 집안에는 선조들의 초상화가 곳곳에 비치돼 있었다. 선조들의 초상화에는 과거가 아로새겨져 있었고 때로는 선조들의 과거에 대해 생각에 잠기곤 했다. 특히 전쟁이 나면 전장으로 달려갔던 충성스러운 선조들의 이야기는 톨스토이에게 창작의 힘을 불어넣고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게 해줬다. 톨스토이를 세계적 문호에 오르게 한 ‘전쟁과 평화’에서는 외할아버지인 볼콘스키 공작이 실제 이름으로 등장한다. 톨스토이에게 있어 귀족 가문의 전통은 그의 사상과 문학에 영향을 미치는 재료가 됐던 것이다.반면 도스토옙스키(1821~81)는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낭비벽과 도박으로 평생 힘겹게 살았다.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재산마저 이내 도박으로 날렸다. 친구들과 주위 사람에게는 툭하면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당대의 문호인 투르게네프에게 돈을 빌린 그는 자격지심에서인지 투르게네프를 비난하고 다녔다. 소설 ‘도박꾼’은 돈을 선불로 받고 단 며칠 만에 썼는데 ‘돈과 바꿔 먹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석영중 고려대 교수는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에서 도스토옙스키에게 창작의 동력은 천재성이나 정의감이 아니라 ‘돈’이었다고 분석한다. 가난했던 그는 원고료 수입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글을 써야 했다. 그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박에 손을 댔다가 결국 더 많은 빚에 쪼들려 살았다. 그가 평생 돈에 쫓겨 다녔고 돈을 쫓아다녔기 때문에 ‘죄와 벌’ 등 불멸의 대작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도스토옙스키의 아버지의 모습이다. 아버지는 아들과 달리 검소하고 돈을 아끼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도스토옙스키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싫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은 남들보다 돈이 많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 했을 것이고 사치적인 성격이 형성됐을 수도 있다.이는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아버지가 돈에 탐닉하고 축적하면 그 자녀는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돈을 맹신하는 아버지는 결코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과 가족만을 챙기는 부모 밑에서 자녀들은 자긍심을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자린고비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사치스럽고 방탕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톨스토이는 평생 돈을 거추장스러운 짐으로 여긴 반면 도스토옙스키는 평생 돈을 추구했다. 톨스토이는 돈을 멀리한 삶이 대작을 만들어냈다면 도스토옙스키는 돈을 갈망한 삶이 대작을 만들어냈다. 대작에 깃들어 있는 정신은 크게 차이가 난다. 결국 이들의 신분적 차이가 ‘콘텐츠(작품)’의 차이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성장 배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늘날 세계적 리더로 군림하고 있는 정보기술(IT) 업계의 두 거장인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에 비유될 수 있을 정도로 대비되는 성장 배경을 지니고 있다. 빌 게이츠는 미국 시애틀의 부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윌리엄 게이츠 2세는 시애틀 최고의 로펌(법률회사)을 운영한 변호사로 주변호인협회 회장을 지냈다. 부시 대통령이 상속세를 폐지하려고 하자 “부자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며 이를 반대하는 단체의 대변인을 지내기도 했다. 증조부는 금광 업자에 시애틀은행인 내셔널시티뱅크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그의 어머니는 자선 사업가로 자선 단체의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스티브 잡스는 대학생 미혼모에게 태어나 노동자 가정에 입양됐다. 잡스의 양부모는 스티브에게 개방적인 정신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잡스는 “아버지는 손으로 뭔가를 만드시는 데 천재적이셨다”고 회고한다. “아버지는 제게 작은 도구를 주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여주곤 하셨죠. 물건을 만들고 분해하고 또 조립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죠.” 잡스는 대여섯 살 때 차고에 있는 작업대에서 아버지와 일한 적이 있는데 바로 이곳에서 애플사를 창업하게 된다.잡스는 학점을 따지 않아도 되는 리드 칼리지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히피 생활을 하며 동양의 신비주의 정신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잡스가 벌여온 창조적인 작업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첫 번째가 꿈의 개인용 컴퓨터를 최초로 만들어 낸 것이다.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누구나 컴퓨터를 가질 수 있는 꿈을 실현시켰다.게이츠와 잡스 두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대학 중퇴’라고 할 수 있다. 빌 게이츠는 하버드대를, 스티브 잡스는 리드칼리지를 다니다 그만뒀다. 그리고 이들은 비슷한 시기인 1975년과 1976년에 각각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을 창업해 억만장자가 됐고 세계를 주도하는 경영자가 됐다.이들은 10대 때 만난 친구인 폴 앨런과 스티브 위즈니악과 각각 공동 창업했다. 잡스는 그가 고교 때 임시직으로 일한 HP에서 만난 스티브 위즈니악을 다시 만나 1976년 애플을 창업했고 그가 만든 개인용 컴퓨터는 TV, 전화기와 함께 ‘세상을 바꾼 기계’가 됐다.빌 게이츠는 자기의 재산 가운데 99%를 자선 사업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게이츠 부부의 사회 참여에 불을 붙인 사람은 다름 아닌 부모라고 한다. 게이츠의 아버지는 돈 버는 일에 빠져 있는 아들에게 “지금 자선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독려했고 어머니는 1994년 아들의 결혼식 전날 며느리 멜린다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너희 두 사람이 이웃에 대해 특별한 책임감을 느낀다면 세상을 좀 더 살기 좋게 바꿀 수 있을 것이다.”현재 빌 게이츠는 부인과 함께 빌앤드멜린다게이츠재단을 운영하면서 자선 사업가로 분주하게 활동한다. 오는 7월 MS의 회장직마저 사임할 예정이다. 여기서 부모와 가풍이 한 인간의 선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자선이나 사회 환원은 돈 많은 부자라고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이는 우리나라 재벌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1955년생으로 동갑내기인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는 비슷한 시기에 IT 기업을 창업해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특히 이들은 테크놀로지가 세상을 혁신적으로 바꿀 새로운 기회임을 포착하고 실행에 옮겼다.비슷한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은 지금도 도전 정신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들이 향하는 눈은 조금은 다른 것 같다. 빌 게이츠는 자선 사업을 강조한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 시장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 잘 작동할 수 있게 만드는 시스템)’를 외치며 자선 사업으로 더 쏠리고 있다. 미혼모에서 태어난 입양아인 스티브 잡스는 히피적인 기질로 자유분방한 삶을 거침없이 살아왔고 지금도 테크놀로지를 통한 도전에 그칠 줄을 모른다. 그는 휴대전화로 눈길을 돌려 ‘아이폰’을 선보이면서 다시 한 번 세상을 바꾸려 하고 있다.두 사람이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길을 걷는 것은 바로 ‘성장 배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달리 말하자면 부모의 인생관 차이가 두 사람의 인생의 차이를 만들어내고 성공 신화를 쌓은 이후 두 사람이 가는 길의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자녀경영연구소장.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는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는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5백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아빠가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 49가지’, ‘메모의 기술 2’, ‘한국의 1인주식회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