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귤북지>

문은 복잡하고 다기(多岐)한 삶에서 패턴과 원리를 발견해 내려는 인간의 노력에서 비롯됐다. 격언도 그 안에 삶의 원리를 꿰뚫는 지혜가 담겨 있다는 측면에서 학문과 유사한 데가 있다. 그러나 격언은 17세기 어느 수녀의 기도에서처럼 ‘끝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지 않고 / 곧장 요점으로 날아가는 날개’를 달고 있다는 점에서 학문보다 촌철살인의 지혜를 담고 있다.더욱이 격언은 그 의미를 바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그 분야에서 능히 일정한 수준에 이르게 해 준다는 의미에서 고무적이다. 최고(最古)와 최고(最高)의 두뇌 스포츠로 일컬어지는 바둑에서 우리는 그 단적인 예를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공격은 날일자로’ ‘중앙으로 한 칸 뛰는 데 악수 없다’ ‘붙이면 젖혀라’ ‘모르면 손을 빼라’…. 심지어 바둑 격언에는 이런 것도 있다. ‘격언 모르면 바둑 두지 마라.’바둑만이 아니다. 주식 투자도 격언을 모르면 아예 시작조차 말아야 할 것으로 인구에 회자되는 대상이다. ‘수급은 재료에 우선한다’든지 ‘나눠서 사고 나눠서 팔라’는 투자 격언에는 주식시장의 본질과 그에 대처할 수 있는 비결이 담겨 있다. 이런 격언만 잘 이해하고 실천하기만 해도 중급 수준은 되는 셈이다.그러나 격언은 격언일 뿐, 때로 그것들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격언끼리 충돌하기도 한다. ‘밀짚모자를 겨울에 사라’는 말도 있지만 ‘시세에 편승하라’든지 ‘뛰는 말을 타라’는 가르침도 있다. ‘무릎에 사서 어깨에 팔라’거나 ‘생선의 머리와 뼈는 고양이에게 주라’면서도 ‘최후의 시세가 가장 크다’는 유혹은 너무나 달콤하다.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하지만 ‘기다리는 시세는 오지 않는다’고 염장을 지르는 데에는 할 말이 없다.‘나눠서 사고 나눠서 팔라’는 격언에는 분할 투자의 정신이 담겨 있다. 요즘처럼 시세가 출렁거릴 때는 물론이거니와 그렇지 않을 때에도 분할 투자는 위험을 수반하는 모든 자산운용에서 첫째가는 금과옥조다. 그러나 이를 부정하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아야’ 함을 역설하는 전문가도 있다. 세계 제일의 부자 워런 버핏이 대표적인 예다. 버핏은 ‘기회가 오면 전 재산의 75%를 투자하겠다’고 단언한다. 과감하고 신속한 결단은 버핏의 전매특허다. “5분 이내에 결정을 내릴 수 없다면 5개월 뒤에도 결정을 내릴 수 없다.” 버핏의 말이다.그렇다면 분할 투자를 강조하는 투자 격언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내가 쫀쫀하게 한 푼 두 푼 버는 동안 크게 한 방 터뜨리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과연 옳은가. 버핏은 되는데 나는 왜 불가능한가. 모든 투자자의 실존적인 의문은 여기에서 출발한다.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의미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같은 투자 수단이라고 하더라도 선택하는 이가 누군가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다소 억울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이 그렇다.투자의 성패는 정보의 양과 질, 경기에 대한 예측 능력, 자금의 양, 기업에 대한 분석 능력, 투여할 수 있는 시간의 크기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제3자에게 운용을 맡기는 펀드 투자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능력은 똑같이 요구된다.그러므로 질문해 보자. 내 투자 능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이 질문의 답이 다소 부정적이어서 ‘강북’에 사는 꼴이라면 조금 더 방어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버핏의 말처럼 투자에서는 버는 것보다 잃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면 그리하여, 잃지 않는 게임을 한다면 기회는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다.하나은행 목동역지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