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다 이맘때면 새해 투자 전략을 짜느라 분주하다.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이며 증시와 부동산은 어떨 것이고 이에 따른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구사할 것인가를 두고 묘책을 짜내느라 한창이다. 월가도 마찬가지다. 물론 경기 둔화와 끝 모르는 주택 경기 침체, 계속되는 신용 경색에 고유가와 달러화 약세까지 겹쳐 상황은 별로 좋지 않다. 그렇지만 주어진 조건은 조건이다. 같은 조건에서 최상의 투자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훌륭한 투자자다.사실 미국에서 새해 투자 전략이란 건 별게 없다. 어떻게 하면 세금을 덜 내고,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수익률이 더 나는 펀드를 고르고, 어떻게 하면 은퇴 자금을 효율적으로 만들 것인가가 고작이다. 한 해 두 자릿수 이상의 ‘대박’을 꿈꾸는 우리네와는 사뭇 다르다. 그렇지만 이는 일반인들에게 해당하는 얘기다. 투자의 고수들은 다르다. 이들은 남들보다 훨씬 빼어난 수익률을 내기 위해 머리를 싸맨다. 우리와 다른 것은 투자 대상이 전 세계적이라는 점, 투자 기간을 장단기로 다양화하고 있다는 점뿐이다.그렇다면 새해 포트폴리오를 구사할 때 중요한 변수는 무엇일까. 단연 거시 변수가 첫 번째라는 게 월가 전문가들의 일치된 전망이다. 다름 아닌 경제다. 경제성장률과 주택 경기, 그리고 신용 경색 지속 여부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새해 투자 전략을 위해 월가가 고민하는 변수를 살펴본다.미국 경제는 지난 3분기 중 3.9% 성장했다. 2분기 3.8% 성장에 이은 ‘고속 성장’이다. 주택 경기 침체와 신용 경색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준이다. 이처럼 성장률이 괜찮지만 월가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이 경기 침체 논란이다.경기 침체란 성장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것. 경제가 뒷걸음질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 경기 침체가 일어나면 투자 전략을 상당히 바뀌어야 한다. 경기가 후진을 하는 만큼 부동산이나 증시도 좋지 않을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현재 월가의 컨센서스는 경기 침체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는데 모아진다. 그러나 실제 침체는 없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기도 하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의 예측이 현재 월가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린스펀은 “미 경기 침체 가능성은 50% 미만”이라며 “현재로선 침체에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월스트리트저널이 월가의 내로라하는 이코노미스트 5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도 앞으로 1년 안에 경기가 침체될 확률은 1년 전 20% 수준에서 40%로 높아졌다. 그러면서도 실제 경기 침체가 올 것이라는 데에는 대부분이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FRB의 시각도 비슷하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은 최근 의회에 출석해 “올 4분기와 내년 1분기 성장률은 좋지 않을 것”이라며 “잘해야 내년 4분기부터 경제가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도 “경기 침체는 없을 것”이란 게 버냉키 의장의 확신이다.말장난 같지만 이런 예상은 현재 상당히 일반화돼 있다. 자칫하면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현재로선 그 가능성은 낮다는 얘기다.주택 경기 침체는 지속된다미 경제가 침체에 빠질지 여부를 좌우할 핵심 변수는 역시 주택 경기다. 주택 경기에서 비롯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파문과 신용 경색 등도 주목해야 할 상황이다.주택 경기에 대한 일반적인 전망은 좋지 않다. 올해보다 더 좋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다.올해 미국의 집값은 4.2%가량 하락할 것으로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는 예상했다. 내년 하락률은 이보다 더 커서 5.7%에 달할 것이란 예측이다. 바닥을 헤매는 주택 경기는 2009년에나 회복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일반적이다.주택 경기가 좋지 않으면 신용 경색도 부분적으로나마 계속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비록 월가의 금융회사들이 서브프라임 관련 채권 투자에 따른 손실을 올해 다 반영한다고 하더라도 모기지 부실이 늘어나면 손실도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모기지 부실과 그에 따른 금융회사 손실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면 불확실성은 높아진다. 자연 신용 경색 현상도 쉽게 풀리기 힘들다.주택 경기에 대한 우울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경기 침체는 없다는 전망이 우세한 것은 아직까지는 소비와 고용이 견조한 덕분이다. 미 경제 성장의 70%를 차지한다는 소비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편이다.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대규모 고용 조정이 있지만 실업률이 여전히 낮은데다 중국 등으로부터 값싼 제품이 꾸준히 공급되고 있어 실제 구매력은 아직 떨어지지 않고 있다. 더욱이 기업들이 달러화 약세를 등에 업고 수출을 늘리고 있어 소비 심리가 완전히 얼어붙지는 않은 상태다.그렇다면 부동산 투자는 어떻게 할까. 특히 집값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싸게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벌써부터 유명한 부동산업자들은 경매에 부쳐지는 압류 주택을 매집하기 위해 나섰다는 소리도 들린다. 비록 부동산투자신탁인 리츠의 수익률이 올해는 형편없겠지만 내년 이후부터는 괜찮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집값이 쌀 때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여기엔 전제가 있다. 1~2년 단기 투자는 금물이며 가능한 한 자기 자금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택 경기 침체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단기로 보고 투자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다. 5년 안팎을 넉넉히 바라보는 장기 투자가 바람직하다. 자금도 마찬가지다.서브프라임 파문이 계속된 올해도 미 증시는 괜찮은 편이다. 마치 곡예를 하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완만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런 현상은 내년에도 지속될 것이란 게 월가의 예상이다.물론 변동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고유가와 달러화 약세라는 대형 변수까지 끼어 있다 보니 비관과 낙관이 교차하는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에 점수를 주는 것은 미 경제가 침체에 빠지지 않을 것이란 전제에서 출발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증시가 가장 상승세를 보인 때는 경기가 연착륙에 접어들 무렵이다. 다름 아닌 경기 회복에 대한 확신이 섰을 때다.만일 새해 미 경기가 침체에 빠지지 않고 하반기에 둔화에서 탈피한다는 보장만 된다면 이보다 더 주식을 싸게 살 기회도 드물다. 월가에서는 이런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더욱이 FRB가 기준 금리를 쉽게 인상하지 못할 상황임을 감안하면 채권 투자는 별 매력이 없다. 단기 수익률만 따지면 부동산은 비할 바도 못된다.중요한 건 주식을 고르는 기술이다. 월가 전문가들은 단기 변동성을 피하고 경기 침체 우려를 어느 정도 벗으려면 대형주와 경기에 민감하지 않은 주식에 일단 주목하는 게 낫다고 권한다. 대형주는 사업 구조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해외 매출도 크다. 미국 기업의 해외 매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미 경기가 바닥을 헤매더라도 영향을 덜 받는다. 최근 뉴욕 증시가 대형주들이 편입된 다우지수와 S&P500지수를 중심으로 오르고 중소기업 중심의 러셀 2000지수는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주택 경기 침체와 그에 따른 소비 둔화 우려를 감안하면 경기 민감주는 권할 대상이 못된다. 경기에 관계없이 꾸준한 매출이 일어나는 음식이나 의약품 등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게 낫다. 월가 최고의 이코노미스트로 꼽히는 손성원 LA 한미은행장은 “비록 미 경제가 침체에 빠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지만 상당히 불안한 것은 사실”이라며 “일단은 변동성이 적은 종목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되 주가 하락 때 우량 주식을 싸게 사는 전략을 구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따지고 보면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 얘기다. 경기 상황이 사뭇 다른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그렇지만 여전히 미국은 세계 경제의 30%를 차지하는 경제 대국이다. 그런 만큼 미국의 경기가 어떻게 흘러가고 뉴욕 증시가 어떻게 변할지는 여전히 중요하다. 구름이 잔뜩 낀 새해를 앞두고 효율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위해 애쓰는 월가의 움직임을 엿보는 것이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이유다.하영춘 한국경제신문 뉴욕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