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모델 출신 배우 유인영

이 내린 각선미. 172cm, 50kg의 늘씬한 8등신 몸매와 유난히 긴 팔다리, 그리고 조막만한 얼굴까지. 배우 유인영은 신세대들이 선망하는 신체 조건을 모두 가진 ‘완벽녀’다.그녀는 애초에 모델로 출발했다. CF, 패션잡지, 패션쇼 등의 다양한 무대를 누비며 국내 톱 모델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웬만한 CF는 다 찍어봤을 정도로 종횡무진하다 연기에도 욕심이 생겨 오디션을 통해 배우로 입문했다. 그렇게 데뷔한 지 어언 3년째. 어찌 보면 짧은 기간이지만, 또 어찌 보면 요즘 같은 스피드 시대에 ‘뜨고도 남을’ 시간인지 모른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아직 배우 유인영이 익숙하지 않다. 아는 이보다 모르는 이가 더 많다. 그래도 모델로 여기저기 얼굴을 비춰온 터라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이게 유인영이 가진 현재의 이미지다.그녀의 필모그래피는 그리 화려하지 않다. 딱히 흥행했다고 할 만한 작품이 많지 않기 때문. 영화 ‘그녀를 모르면 간첩’과 ‘강적’, ‘기다리다 미쳐’, ‘아버지와 마리와 나’에 출연했으며, 이 가운데 두 작품은 아직 개봉 전이다. TV 드라마로는 ‘러브홀릭’, ‘눈의 여왕’에 출연했으며 현재 KBS 일일극 ‘미우나 고우나’에서 도도한 재벌집 딸인 봉수아로 출연 중이다.그 역할 하나하나가 모두 제각각이다. 팔색조라 할만하다. 배역이 너무 다양했기 때문에 확실한 이미지 구축에 실패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신인이므로 이것저것 해보는 것이 나쁘지 않은 선택임에 틀림없다. 그녀는 지금 배우로 완성돼 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열린 ‘제15회 춘사대상 영화제’에서 홍보대사로 발탁된 것도 그런 과정의 하나일 것이다. 연기자로서의 길을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는 유인영을 서울 남산 영화감독협회 시사실에서 만나봤다.손대면 부러질 것 같은 연약함이 느껴지는 그녀. 그동안의 연기에서 보여준 보이시하고 터프한 면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눈의 여왕’에서는 복서 역할도 맡았던 유인영이다.“제가 좀 악바리 같은 구석이 있어요. 겉으론 연약해 보이지만 근성이 있는 편이거든요. 산타페 커피 CF를 촬영할 때, 얼음물 욕조에 몸을 푹 담그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너무 열심히 해서 다음날 저체온증으로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어요. 코란도 승용차 CF에선 인라인 스케이트 타는 장면을 찍기 위해 속성 코스로 인라인을 배우느라 온몸에 피멍이 들기도 했죠. 이제 제가 좀 다르게 보이나요?”강마른 사람들이 ‘깡’이 있다고들 하는데 유인영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고생을 모르고 자랐을 것 같은 곱살한 외모에 가느다란 목소리를 가진 그녀가 보여주는 의외의 면모가 신선하게 다가온다.그녀는 1984년에 태어났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학교 다닐 땐 문제의 답을 알아도 손 한 번 못 드는 소심한 학생이었다.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된 것도 워낙 숫기가 없는 딸을 걱정해 부모님이 모델 학원에 등록해 주면서부터였다. 학원을 통해 패션 카탈로그를 찍게 됐고 정식 모델로 입문했다.“연기에 도전하게 된 건 평소 영화를 좋아한 덕분이었죠. 어느 날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저 역할을 내가 하면 이렇게 할 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었고, 연기에 도전해 봐야겠다는 용기가 생겼어요. 떡 본 김에 고사 지낸다고 그 길로 바로 영화 ‘그녀를 모르면 간첩’ 오디션을 봤죠. 당시만 해도 모델로 한창 잘나가던 때라 ‘설마 내가 떨어지겠어’라고 생각했는데, 그만 보기 좋게 고배를 마시고 말았어요. 기대감이 컸던 터라 실망감도 컸지요. 그 길로 감독님께 찾아가 안 써도 좋으니 다시 오디션을 보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결국 오케이 사인을 받을 수 있었어요.”보기와 다르게 근성과 열정이 대단하다. 일에 대한 욕심도 그에 못지않을 듯. 욕심이 많으면 시련도 큰 법이다.“전 누구보다도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올라왔다고 생각해요. 모든 것은 노력한 만큼 이뤄진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언젠가 제 실력이 아닌 주위 배경 때문에 하고 싶은 역할을 못했을 때 좌절감이 들더군요. 다른 친구보다 실력이 부족해서 떨어졌을 땐 단지 내가 부족하다는 것만 느끼면 됐지만, 다른 이유로 되지 않았을 때는 마인드 컨트롤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때 많이 성숙해진 것 같아요.”그래서일까. 겉으로 보기에 도도하고 차가운 이미지와 달리 그녀는 인터뷰 내내 ‘싹싹하다’는 인상을 줬다. 평소 실제 성격은 어떤지 물었다. “원래 낯을 심하게 가리는 편이에요. 사람들은 제 인상이 차가운 편이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면 다가오기가 어렵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전 친해지면 정말 털털한 편이거든요. 친해지기 전과 후가 너무 다르니까 제 스스로도 다중이(여러 가지 성격 유형을 모두 가진 사람)인가 싶을 때가 있어요.(웃음)”그녀는 정말 하얀 도화지 같은 배우다. 자신만의 뚜렷한 캐릭터가 없는 반면, 어떤 가면을 씌워 놓아도 모두 무리 없이 소화해낸다. ‘24시간 변신 대기 중’인 배우다. 드라마 눈의 여왕에선 털털한 복서로 분했다가도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미우나 고우나’에선 철딱서니 없는 부잣집 망나니 딸로 변신한다. 어떤 옷을 입혀 놓아도 어색하지 않다. 그게 유인영의 매력이다. 그래도 배우로 크게 성공하려면 자신만의 색깔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연기에 있어 롤 모델이 있느냐고 물었다.“건방진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 사람의 배우를 모델로 삼은 적은 없어요. 손예진의 청순함과 김혜수의 섹시함, 그리고 장진영의 중성적인 매력을 모두 닮고 싶어요. 물론 쉽지 않겠지만요.”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녀의 장점인 몸매 관리 비법을 물었다. ‘신이 내린’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그녀의 각선미는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궁금했다.“다이어트 열심히 하죠. 항상 화면으로 내 모습을 모니터링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TV에서 내 모습이 붓게 나오면 살찐 것 같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때마다 음식을 조절해요. 저녁때 많이 먹지 않고 아침 점심때는 먹기 전에 밥 한 숟가락을 미리 덜어놓고 먹죠. 군것질은 절대 하지 않고, 하지만 먹는 걸 워낙 즐기기 때문에 식이요법은 하지 않는 편이에요.”한창 연애할 나이에 남자친구가 아직 없다는 그녀는 이상형으로 배우 김태우를 꼽았다. 자상하고 부드러운 스타일에 끌려 처음 봤을 때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고 수줍게 웃는다. 강한 캐릭터로 수없이 분하지만, 아직은 영락없는 소녀의 모습이다.글 김지연·사진 이승재 기자 jykim@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