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정책이 불과 몇 달 만에 뒤집혔다. 갑작스러운 ‘대출 절벽’에 예비 차주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당국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은행들 역시 대출은 막았지만, 시장 혼란에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부동산 이슈]
사진=한경DB
사진=한경DB
금융당국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대환대출 인프라를 개시하고 정책대출을 확대하는 한편, 은행권의 금리 인하 경쟁을 유도했다. 대출 한도를 낮추는 효과가 있는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 시기 역시 기존 7월에서 9월로 미뤘다.

그러나 7월부터 5대 은행이 20차례 이상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올리더니 9월 들어 유주택자에 대한 대출 규제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은행권은 주담대 대출을 무주택자로 제한하거나 일부 조건부 외에는 유주택자의 전세자금대출을 막고 있다. 2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으로 인해 무주택자조차 받을 수 있는 대출 한도가 이전보다 줄었다.
확 바뀐 대출 정책…‘영끌족’ 겨냥해 집값 잡는다
정부가 이처럼 발 빠르게 움직인 데는 급증한 가계대출 규모와 다시 불붙기 시작한 부동산 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7월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의 집값 상승을 두고 “지엽적이고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잔 등락”이라고 발언했지만, 올해 들어 서울 핵심 지역에서부터 시작된 오름세가 점차 다른 수도권 지역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경기 침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부는 가파른 가계대출 증가와 부동산 시세 상승에 대응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가계대출과 주택 시장은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중앙은행(Fed)을 비롯한 선진국 대부분이 기준금리 인하를 앞둔 상황에서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주택 시장의 불씨가 더 번질 가능성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조치가 당장은 효과를 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지난 몇 년간 주택 공급이 부족했던 데다, 상급지에 갈아타려는 수요도 여전해 이번 대출 규제 효과가 장기적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대출 규제, 우리은행에서 전 금융권으로

우리은행은 지난 9월 1일 서울 등 수도권에 집이 없는 사람에게만 전세자금대출(전세대출)을 내주겠다고 밝혔다. 또 주택을 한 채라도 보유하면 서울 등 수도권에 주택을 추가로 구입하기 위한 목적의 대출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주담대 만기는 최장 40년에서 30년으로 줄였다.

이 같은 결정은 전 금융권으로 확산했다. 은행 한 곳이 대출을 조이기 시작하면 다른 금융기관 대출 수요가 쏠리는 ‘풍선 효과’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 기관 역시 대출을 줄이라는 당국의 가이드에 따라야 하는 상황이라 신속하게 흐름에 올라타야 하는 입장이다.

우리은행을 기점으로 대출 여력이 있던 다른 시중은행은 물론 인터넷전문은행과 보험사도 대출 공급 차단에 나섰다. NH농협은행은 2주택 이상 다주택자에 대해 수도권 소재 주택 구입 목적의 자금 대출을 중단한다. 임대인 소유권 이전, 선순위채권 말소(감액), 주택 처분 조건 등 조건부 전세대출 역시 한시적으로 막는다. 즉,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 갭투자에 대출을 활용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뜻이다. 시중은행들이 가계대출을 조이면서 대출 문턱이 낮은 농협은행에 수요가 쏠리자 급하게 규제 카드를 꺼낸 것이란 분석이다.

보험사와 인터넷전문은행도 나섰다. 삼성생명은 9월 3일 기존에 주택을 보유한 사람에게 수도권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을 제한하라고 각 영업점에 통보했다. 삼성생명도 1주택자가 기존 주택을 처분하기로 하고 대출받는 형식의 ‘즉시처분조건부대출’도 해주지 않는다. 은행보다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높아 대출 수요가 제2금융권으로 넘어오기 시작하자 선제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카카오뱅크 역시 무주택자를 대상으로만 주담대를 실행하고 최장 만기를 50년에서 30년으로 축소한다.

연이은 신고가에 가슴 ‘철렁’

이처럼 금융권이 갑작스런 ‘대출 조이기’에 나설 만큼 주택 시장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8월 넷째 주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23주 연속 상승했다. 주간 가격 증감률은 8월 둘째 주 0.32%를 기록한 이래 셋째 주 0.28%, 넷째 주 0.26%로 둔화했다. 그럼에도 외곽 지역인 노원과 도봉이 뒤늦게 상승 지역에 합류했고 과천, 분당 등 경기도 주요 지역도 오름세를 굳히고 있다.
확 바뀐 대출 정책…‘영끌족’ 겨냥해 집값 잡는다
확 바뀐 대출 정책…‘영끌족’ 겨냥해 집값 잡는다
신고가도 이어졌다. 서울 강남권에서 촉발된 집값 상승세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신호가 보이고 있다.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전용면적 84㎡ 타입이 55억 원에 거래되며 화제를 모은 뒤에도 마용성(마포·용산·성동), 강동구, 광진구와 경기도 다산신도시, 인천 검단신도시 등 수도권 곳곳에서 역대 최고가가 등장했다.

지금까지 정부는 비교적 규제의 칼을 들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2022년 하반기부터 분양 시장이 급격히 냉각되면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인한 불안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주택 경기 문제로 분양 시장이 계속 얼어붙어 있으면, 만성적인 주택 공급 부족이 심화할 우려도 제기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을 제외한 전 지역을 규제지역에서 해제하고 특례보금자리론, 신생아특례대출을 비롯한 정책금융 상품을 적극 내놓는 등 부동산 시장에 마중물을 공급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 갔다.

연초부터 지속된 집값 상승에도 당장 규제에 나서기보다 대대적인 공급 대책을 내놓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미래 공급에 대한 기대감을 불어넣어 대기 수요의 주택 매수 심리를 잠재우려 했던 것이다. 8월 8일 발표된 ‘주택 공급 대책’은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그린벨트 해제, 오피스텔·빌라 등 비(非)아파트 시장 활성화 등 전방위적인 수도권 주택 공급 방안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공급 대책만으로는 불붙은 매수 심리를 식히지 못했다. 가계대출도 급증했다. 최근 시중은행이 일제히 금리를 올렸는데도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늘었다. 8월 29일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주담대(전세자금대출 포함) 잔액은 7월 말 대비 7조3234억 원 증가했다. 주담대 증가액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던 전월 7조5975억 원에 이어 또다시 7조 원을 돌파한 것이다.

대출 규제 효과는 일시적

정부의 이번 결정은 어느 정도 예상된 측면이 컸다. 성과를 내기까지 수년의 기간이 걸리는 주택 공급 대책이나 세법 개정이 필요한 과세 정책보다는 대출을 조절하는 것이 훨씬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방식이다. 정부는 이미 대출을 풀었다 조이는 방식으로 주택 시장에 개입한 적이 있다.

지난해 정부는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저리에 주담대를 제공하는 특례보금자리론을 출시했다. 그런데 이로 인해 집값이 오르자 같은 해 9월 소득 제한 없이 9억 원 이하 아파트에 대해 대출을 해주는 일반형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그러자 시장은 활기를 잃고 잠잠해졌다.

이번 대출 규제 역시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 것이란 전망이다. 무주택자들도 ‘스트레스 DSR’이라는 허들을 피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DSR은 주담대뿐 아니라 신용대출 등 차주의 모든 대출금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연소득 대비 얼마나 큰지 계산하는 엄격한 대출 규제 방식이다.

그중 스트레스 DSR은 변동금리 등을 적용받은 대출의 금리가 올라 원리금 상환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DSR 산정 시 가산금리(스트레스 금리)를 부과하게 된다. 따라서 일반적인 DSR보다 전체 대출 한도가 줄어든다. 올해 2월부터 6월까지 시행된 1단계 스트레스 DSR은 가산되는 스트레스 금리가 0.38%였다. 9월부터 시행된 2단계 스트레스 DSR은 스트레스 금리가 0.75%이며 수도권 주택에 대한 담보대출의 경우 1.2%가 부과된다.

2단계 스트레스 DSR은 높은 대출 한도를 통해 주택을 장만하는 일명 ‘영끌족’의 매수를 막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강영훈 부동산스터디 대표는 “이번 규제는 현금 여력이 충분한 매수자보다 금리가 조금 높더라도 더 많은 대출을 받아 공격적으로 시장에 진입하려는 수요자들의 주택 매수를 막는 데 더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며 “현 정부는 앞으로도 시장 움직임에 따라 조였다 풀었다 하는 식으로 대응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강 대표는 “최근의 집값 상승은 지난 몇 년간 고가 주택에 대해 대출 제한 등 규제가 집중되면서 상급지나 신축에 대한 수요가 해소되지 못하고 축적되면서 생긴 결과”라면서 “이 수요가 매수를 마치기 전까지는 다시 집값이 상승할 요인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갑작스런 대출 규제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진화에 나섰다. 2단계 스트레스 DSR 부과 등 가계대출 관리 기조는 이어 가되, 실수요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9월 4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신관에서 열린 가계대출 실수요자 및 전문가 현장간담회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
지난 9월 4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신관에서 열린 가계대출 실수요자 및 전문가 현장간담회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9월 4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사에서 열린 ‘가계대출 실수요자 및 전문가 현장간담회’에서 “갭투자 등 투기 수요 대출에 대해서는 심사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정상적인 주택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형태의 대출 실수요까지 제약받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히 관리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은행권에서 발생하는 주담대 상환액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대출 규모를 관리하면서도 실수요자에 대한 신규 자금도 충분히 공급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장 발언 이후 우리은행은 1주택자에 대한 전세대출을 허용하기로 했다. 기존에 보유한 주택이 있어도 수도권 지역으로 직장을 옮기거나 이혼 소송 중인 경우, 본인이나 가족이 1년 이상 치료를 위해 수도권 병원 통원이 필요한 경우 등에 한해서다. 이에 따라 다른 금융기관들도 기존 계획보다 완화된 대출 기준을 적용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민보름 한경비즈니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