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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제네시스 그안에 담긴 축적의 시간…독일차와 경쟁하는 첫 국산차로
[EDITOR's LETTER]아나크로니즘(anachronism). 가장 좋아하는 예술 용어입니다. 한글로 번역하면 ‘시대착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번역에는 단점이 있습니다. 긍정적 함의가 없습니다. 개인적 해석은 ‘작품에 녹아 있는 시간들’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위대한 작품 안에 여러 시간대가 뒤섞여 있다는 말입니다. 작품이 만들어진 과거, 우리 앞에 작품이 있는 현재, 그 사이를 이어 주는 긴 시간 등입니다. 전문가들이 가장 위대한 그림으로 꼽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라스 메니나스)’을 예로 들어볼까요.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이 그림이 눈 앞에 있다고 상상해 보시죠. 보고 있는 이 시간은 현재입니다. 이 그림이 그려진 것은 1656년, 과거입니다. 이후 365년간 이뤄진 수많은 지적이고 감성적 해석이 이 작품에는 녹아 들어가 있습니다. 이 수수께끼 같은 그림에 논쟁을 불러일으킨 대표적 인물이 미셸 푸코입니다. 저서 ‘말과 사물’ 발문으로 시녀들을 끌어들입니다.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이 그림은 누구를 위해 그렸을까. 왕의 서재에 걸리기 위해 그려진 그림입니다. 궁중화였지요. 하지만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오늘날처럼 미술관에 걸려 있어 많은 관람자가 보는 상황으로 해석했습니다. 궁정화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시한 겁니다. 그 작품이 그려진 시대의 관점에서 해석하지 않고 사람들 앞에 전시된 시점을 기준으로 해석했다는 얘기입니다. 푸코는 이를 근거로 이 그림에는 회화의 세 가지 요소인 화가·모델·관객이 모두 두 겹으로 그려져 있다며 이를 ‘고전주의식 재현의 재현’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프랑스 예술사가 다니엘
2022.09.24 06: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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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사람과 시간이 만나 서사가 된 서울의 길
[EDITOR's LETTER] 종로 뒷골목에 좋아하는 음식점 하나가 있습니다. 오래전 명절 때 집에 가지 못하면 찾던 곳입니다. 동그랑땡을 파는 그 집. 지금도 가끔 그곳에 갑니다. 얼마 전 그 음식점 인근 아는 카페 앞을 후배와 지나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배는 말했습니다. “아 저 여기 알아요. 엄마 아빠가 데이트하던 곳이라고 들었어요.” 순간 흠칫했습니다. 항상 젊은 후배들과 정서를 공유하며 살고 있다는 되지도 않을 자부심이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난 후배들의 부모들과 정서를 공유하고 있구나….’ 하긴 그전에 깨달아야 했습니다. 몇 년 전 영화 ‘1987’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더니 한 후배가 “우리 아버지도 눈물 흘리셨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아버지가 몇학번이냐고 물었더니 후배는 답했습니다. “87학번이요.” 친구네 쩝.1980년대 종로는 젊음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서점·영화관·영어학원·음식점·카페·지하철 등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다 있었습니다. 당시 또 다른 거점은 신촌(이화여대앞 포함)이었습니다. 이랜드그룹의 출발이 이대앞 ‘잉글랜드’라는 촌스러운 이름의 옷가게였고 스타벅스 1호점이 이대 앞에 문을 연 것도 상징적입니다. 한 군데 더 있었습니다. ‘강남스타일’의 발원지 강남역입니다. 당시 뉴욕제과 앞은 종로서적만큼이나 붐볐습니다. 나이트클럽은 꽉찼습니다. 종로에 있던 어학원들은 근처에 터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소득 증가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 냈습니다. 1986년 2000달러대였던 국민소득은 이후 8년간 매년 1000달러씩 늘어납니다.
2022.06.04 06: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