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EDITOR's LETTER]사람과 시간이 만나 서사가 된 서울의 길
종로 뒷골목에 좋아하는 음식점 하나가 있습니다. 오래전 명절 때 집에 가지 못하면 찾던 곳입니다. 동그랑땡을 파는 그 집. 지금도 가끔 그곳에 갑니다. 얼마 전 그 음식점 인근 아는 카페 앞을 후배와 지나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배는 말했습니다. “아 저 여기 알아요. 엄마 아빠가 데이트하던 곳이라고 들었어요.” 순간 흠칫했습니다. 항상 젊은 후배들과 정서를 공유하며 살고 있다는 되지도 않을 자부심이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난 후배들의 부모들과 정서를 공유하고 있구나….’ 하긴 그전에 깨달아야 했습니다. 몇 년 전 영화 ‘1987’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더니 한 후배가 “우리 아버지도 눈물 흘리셨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아버지가 몇학번이냐고 물었더니 후배는 답했습니다. “87학번이요.” 친구네 쩝.

1980년대 종로는 젊음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서점·영화관·영어학원·음식점·카페·지하철 등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다 있었습니다. 당시 또 다른 거점은 신촌(이화여대앞 포함)이었습니다. 이랜드그룹의 출발이 이대앞 ‘잉글랜드’라는 촌스러운 이름의 옷가게였고 스타벅스 1호점이 이대 앞에 문을 연 것도 상징적입니다. 한 군데 더 있었습니다. ‘강남스타일’의 발원지 강남역입니다. 당시 뉴욕제과 앞은 종로서적만큼이나 붐볐습니다. 나이트클럽은 꽉찼습니다. 종로에 있던 어학원들은 근처에 터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소득 증가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 냈습니다. 1986년 2000달러대였던 국민소득은 이후 8년간 매년 1000달러씩 늘어납니다. 또 증가하는 대학 진학률은 소비와 유행의 중심층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길을 얘기합니다. 시대별 핫플레이스를 짚어 보고 변화의 법칙을 찾아보고자 했습니다. 한 시대의 문화적 코드를 함축했던 곳이 거점이 되는 과정을 따라가 봤습니다. 물론 그 길을 따라 돈도 움직였습니다.

1990년대에는 홍대입구와 압구정 로데오거리, 청담동 등으로 거점이 확산됩니다. 1990년대 초 한국의 국민소득은 1만 달러를 넘겼습니다. 정치적으로 민주화에 힘입어 잠재해 있던 자유의 열기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그 열기는 문화에 대한 욕망을 자극합니다. K팝의 원조라고 할수 있는 서태지가 등장했던 것도 1990년대 초입니다. 한국의 중산층은 1990년대 들어 1997년 외환 위기를 맞기 전까지 70%를 넘었습니다. 이는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욕구를 상징합니다. 상류층의 비율이 10%를 넘긴 것은 오렌지족 같은 새로운 소비층 탄생의 토대가 됩니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2000년대 초까지 한국 사회는 침체를 이어 갑니다. 이 시기 사람들은 차분해지고 싶었던 듯합니다. 장인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와 수제비집, 한정식집 정도가 유명했던 삼청동과 인사동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강남에서는 한적했던 가로수길이 갑자기 붐비기 시작합니다.

삼청동길·인사동길·가로수길의 특징은 높은 빌딩이 없다는 점입니다. 진화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현대 도시인들은 건물이 낮은 곳에 가면 편안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강원도 어느 읍내에 가면 느끼는 편안함. 이는 사바나 초원에서 탄생한 인류가 수십만 년간 살아온 삶의 터전과 유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급속한 경제 발전과 이 탑이 하루에 무너지는 외환 위기 충격 이후 사람들은 어쩌면 안식을 찾아 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초기 이 길의 주인이었던 장인과 예술가들은 월세를 더 내라는 건물주들의 요구에 밀려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한국 사회의 화두가 된 것도 이때입니다.
2010년대 한국 사회는 ‘길의 전성기’를 맞습니다.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육박하며 전국 ‘리단길’의 원조가 된 경리단길이 떴다 졌습니다. 성수동은 강남의 확산과 오래된 것의 재평가라는 트렌드가 만나 성지가 됩니다. 연남동은 홍대의 팽창과 외국인 학생들의 유입으로, 익선동은 오래된 동네에 기획의 힘이 더해져 핫플이 됐습니다. 이 밖에 세로수길·문래동길·망리단길·용리단길 등이 등장했습니다. 한국의 문화 산업이 폭발하는 시기와 맞아떨어집니다.

흔히들 상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술가와 장인이 움직이고 문화의 코드를 품고 시대의 상징이 된 곳을 돈만으로 계산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전쟁처럼 치른 두 개의 선거가 끝났습니다. 한국 사회는 마음의 여유를 찾을 시간이 필요한 듯합니다. 길은 장소와 장소를 이어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람과 시간을 이어 주기도 합니다. 선선한 초여름 밤, 각자의 시간을 찾아 각자의 길을 찾아가 보면 어떨까 합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