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 급식 예산 소동은 ‘외상으로 소 잡아먹어서’ 겪어야 할 재정 파탄의 시작에 불과하다. 정말 덩치가 큰 것은 연금들이다.
[경제산책] 재정 파탄 막기 위한 결단 내려야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프리덤팩토리 대표

1956년생. 1979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1988년 미국 일리노이대 경제학 박사. 2000년 숭실대 법학 박사. 1990년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1997년 자유기업센터 법경제실장. 2004년 자유경제원 원장.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현). 프리덤팩토리 대표(현).


무상 복지 시리즈가 결국 돈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공짜 밥이 달콤하기는 하지만 한정된 예산이라는 제약 조건을 피하지 못했다. 아니 그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 없다. 쓸 수 있는 돈은 정해져 있는데 밥 먹는 데 돈을 써대다 보니 다른 곳에 쓸 돈이 고갈되는 것은 당연하다. 급기야 지방정부들의 재정이 파탄에 이를 지경이 됐다. 조충훈 순천시장 겸 전국시군구청장협의회장은 연말이면 디폴트, 즉 지급불능 상태에 빠질 지방정부가 나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무상 급식 예산 편성 불가 방침도 같은 맥락에 서 있다.

이제 와 너도나도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재정 파탄 사태는 무상 복지 논쟁이 시작될 때 이미 예견됐던 것이다. 필자를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이 거듭 경고했었다. 국민들이 세금을 내기 싫어하는 상황에서 지출만 잔뜩 늘리면 결과는 누가 봐도 빤하지 않은가. 재정 파탄, 즉 정부의 부도 사태를 피할 수 없다. 그런데도 무상 복지 시리즈는 강행됐고 지금 우리는 재정 파탄 상태의 초입에 들어섰다.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는다.’ 앞날을 생각하지 않고 당장 입에 달다고 흥청망청 써대다간 머지않아 거지 신세가 된다는 것을 경고하는 속담이다. 그래도 우리가 개인일 때는 그럭저럭 책임 있게 살려고 노력한다. 신용 불량자가 되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 사람은 인내하며 책임 있게 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공공의 영역에 들어가면 사람들은 매우 무책임하게 변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세금 낼 생각을 하지 않고 받을 생각만 한다. 정치인들도 부자 증세만 부추길 뿐 국민 다수에게 세금 내라는 요구를 하지 못한다. 부자의 숫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부자 증세로 거둘 수 있는 세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그런다. 세금 내기 싫으면 복지도 받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책임 있는 시민의 자세다.

무상 급식 예산 소동은 ‘외상으로 소 잡아먹어서’ 겪어야 할 재정 파탄의 시작에 불과하다. 정말 덩치가 큰 것은 연금들이다. 한국의 연금은 납부 금액이 적은 데 비해 나중에 돌려받는 게 낸 것보다 훨씬 많은 구조로 돼 있다. 당장 문제가 되고 있는 공무원연금뿐만 아니라 군인연금·사학연금·국민연금이 모두 그렇다. 당초에 이런 구조를 만들었던 사람들은 20년, 30년 후의 일이니까 일단 인심이나 쓰자는 식으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외상이어서 쉽게 소를 잡아먹는 것이다. 그런데 그 20년, 30년 후가 이제 바로 코앞에 닥쳤다. 닥쳐 올 재정 파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작으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정권 차원에서 이제라도 고치겠다며 공무원연금을 깎겠다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공무원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쳐 있으니 관철될지 알 수 없다.

필자는 거의 확신한다. 이번 정권도 그리고 다음 정권도 단호한 개혁보다 또 다른 외상으로 재정 파탄 문제를 뒤로 미룰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10월 29일 국회 연설에서 재정 적자를 늘리는 데 국회가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재정 적자는 결국 국가 부채다. 한국도 이제 빚을 갚기 위해 또 다른 빚을 내는 돌려막기가 시작된 셈이다. 이렇게 가면 그리스·아르헨티나처럼 국가 부도에 이를 날도 머지않았다.

이제 희망은 국민의 자각뿐이다. 내핍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하는 국민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정치인들도 책임을 갖고 대한민국도 밝은 미래를 가질 수 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자각과 결단을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