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北 잇단 도발에 트럼프 ‘북한 완전 파괴’언급…11월 미·중 정상회담 ‘변곡점’
전쟁 암운 드리운 한반도의 앞날은
(사진)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한국경제신문)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한반도 정세가 ‘전쟁 위기’로 치닫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북한 완전 파괴’, ‘상상 밖의 보복’ 등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어선 비난을 주고받고 있다.

북한은 두 차례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6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미국은 ‘죽음의 백조’라고 불리는 전략폭격기 B-1B 랜서를 북방한계선(NLL) 넘어 북한 공해까지 띄웠다.

미 언론들은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고 한국에서는 미국이 주한 미군 및 미국인을 철수시키는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루머가 떠돌고 있다. 이제 한반도 전쟁은 시간만 남은 것처럼 보인다. 정말 전쟁은 가능한 일일까.

◆‘극한 대치 후 협상’ 반복되는 사이클

북핵과 관련해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가 있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고 핵 개발에 나서면서 북한과 미국은 정면충돌 위기로 치달았다.

남북회담장에서는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왔고 빌 클린턴 미 행정부는 영변 핵 시설 폭격을 준비했다. 1차 핵 위기는 북한의 핵 개발과 대북 지원을 맞바꾸는 제네바 합의로 봉합됐다.

하지만 2002년 10월 미 협상단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이 스스로 핵 개발 사실을 시인하면서 핵 위기가 재발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당시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에게 “북핵을 외교적으로 풀지 못하면 북한을 공습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언론에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며 선제공격 가능성을 시사했다. 일본과 한국에 대한 핵무장도 거론됐다. 위기는 중국의 개입으로 6자회담 체제가 만들어지면서 가라앉았다.
북핵 위기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핵·미사일 도발 위협→경고→도발 강행→국제사회·미국 단독 제재→자제→도발 위협’이라는 악순환을 철 지난 레코드판처럼 반복돼 왔다.

올 들어 북핵 사태가 이전과 다른 이유는 북한이 핵무기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미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은 7월 말 내부 보고서에서 “북한이 ICBM급 미사일과 여기에 탑재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결론지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8월 초 보도했다. 핵무기도 60여 기 보유하고 있다는 게 DIA의 결론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미 핵무기 보유국이며 남은 것은 사거리를 미 본토 전역으로 확대하거나 정확하게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하는 것 정도로 보고 있다.

미국의 대응은 ‘최고의 압박과 개입’이다. 주요 타깃은 북한과 중국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전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월 19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국을 방어하게 만든다면 북한을 완전 파괴할 수밖에 없다”고 발언했다.

미국이 북핵으로 위협받는다는 조건을 붙였지만 북한 민간인들까지 모두 학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다.

앞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도 “외교적 해법이 소진되면 남은 것은 군사적 옵션”이라고 경고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서울을 중대한 위협에 빠뜨리지 않는 군사 옵션”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군사행동 발언은 모두 ‘외교적 옵션이 소진된다면’ ‘미국과 미국의 동맹들이 위협받게 된다면’ 등의 조건을 달고 있다. 미국은 군사행동을 위한 레드라인을 설정하지 않고 있다. 군사행동까지 가기엔 아직 여지가 많다는 뜻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9월 25일 북핵 해결을 위해 전쟁 외에 아직 시도할 옵션이 많다고 보도했다. 경제제재 수준을 극대화할 군사력을 이용한 해상 봉쇄, 핵 능력을 무력화하는 사이버 공격, 김 위원장과 북한 엘리트 지도부를 심리적으로 격리할 정보전, 북한 발사 미사일에 대한 격추 등을 그런 옵션으로 꼽았다.

◆전술핵 카드에 中 움직일까 관심

미국의 대북 옵션 대부분은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북한의 최대 후원국인 중국을 압박해 북한을 비핵화 협상장으로 이끌어 내겠다는 전략이다. 대(對)중국 카드엔 경제·외교·안보 분야 카드들이 총동원되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끝장 제재’로 불리는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카드다. 프라이머리 보이콧(1차 제재)이 불법행위를 한 기업과 개인·단체·국가를 직접 제재하는 방식이라면 2차 제재는 이들과 거래한 제3자를 제재함으로써 제재 효과를 한 단계 더 높이는 방식이다.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즉 북한 교역량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을 겨냥한 제재 수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21일 유엔총회 행사 기간 동안 한·미·일 정상회담을 갖고 세컨더리 보이콧 제재 도입을 발표했다.

북한과 거래하거나 북한과 거래한 개인·기업·단체와 간접 거래해도 미국 금융망에서 퇴출시키는 내용을 담았다. 북한으로 들어가는 돈줄을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뉴욕타임스는 “북한이 이란과 달리 고립과 자력갱생에 익숙한 데다 제재가 강화될수록 북한과의 거래에서 더 많은 이익을 취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북 전문가들은 “이번 제재안은 1년 전에만 나왔어도 북핵 판을 바꿀 수 있는 엄청난 카드였을 것”이라며 “북한이 핵무기 완성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제재 때문에 중도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한 전술핵 무기 재배치 카드도 거론되고 있다. 한국 전술핵 배치는 일본과 대만으로 이어지는 핵무장 도미노의 출발점이다. 중국을 둘러싼 친미(親美) 국가들의 핵무장을 의미한다. 중국으로서는 안보적으로 민감한 카드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반도에 전술핵 재배치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는 지난 3월 처음 나왔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한국 대선에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전술핵 재배치의 필요성을 강조하던 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각의 주장에 불과했다. 넉 달 사이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그 사이 북한은 두 차례에 걸쳐 ICBM급 미사일을 발사했고 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NBC방송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인 9월 3일 긴급 국가안보회의(NSC)를 열고 전술핵 재배치와 한국·일본의 독자적 핵무장을 허용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백악관 참모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제타격을 포함한 여러 대북 옵션을 제시하면서 전술핵 재배치 검토 얘기가 나왔다는 설명이다.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완성할 때까지 극한 대치 국면이 계속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11월 방중과 내년 초 북한의 핵무기 완성 등이 큰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psj@hankyung.com